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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래자 思來者

빨려 들어가는 저 눈동자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이제부터 저도 유튜브를 시작하겠습니다. 제목은 <이기환 기자의 ‘hi-story’>입니다.  고고학과 역사 분야를 이야기로 풀어주는 '흔적의 역사' 이기환 기자의 짧은 콘텐츠 ‘하이-스토리’입니다. 역사를 'history'(히스토리)라 하지만, 본디 역사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친근한 이미지로 역사 이야기를 풀어주는 '하이-스토리'로 정했습니다. 

첫 번째 주제는 ‘이 빨려들어가는 눈동자의 주인공, 상남자 은진미륵의 명예회복’ 이야기입니다.  

가까이서 찍은 은진미륵의 눈. 밑에서 보기에는 조각해놓은 눈동자를 검은 색으로 채색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막상 올라가보니 원판 화강암을 파내고 흑색 점판암으로 조각한 눈동자와 내외안각 주름을 정교하게 끼워넣었다.| 최선주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실장 제공

이 빨려들어가는 듯한 눈은 누구의 눈일까요?

충남 관촉사 경내에 있는 거대 불상 보셨나요? 흔히 은진미륵이라고들 하는데요, 높이가 18.12미터로 한국에서 가장 큰 불상이죠. 흔히들 이 불상을 못난이라 손가락질 합니다. 아마 교과서에서도 그렇게 배웠을 겁니다. 왜 이런 얼평을 당했을가요. 아마도 한국고고미술사학계의 개척자라는 김원룡 전 서울대 교수의 평가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김원룡 선생은 1978년에 쓴 한국미의 탐구에서 이렇게 얼평 했어요.

 2007년 은진미륵 정비복원을 위해 전문가들이 아파트 6층 높이의 은진미륵 얼굴부분까지 올라가 실사하고 있다.

“은진미륵은 3등신에, 전신의 반쯤 되는 거대한 삼각형 얼굴은 턱이 넓어 일자로 다문 입, 넓적한 코와 함께 가장 미련한 타입으로 만들고 있다…한국 최악의 졸작이다.”라고.

아니 그냥 못생겼다고 하더라도 다 알아들을텐데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한국최악의 졸작 운운했을가요. 예전에 옥상에서 떨어진 매주덩어리해서 옥떨메하는 말이 있는데, 아재개그로 치면 옥떨메겠죠.

이런 평가가 나왔을까. 바로 꽃미남하고 비교했기 때문이죠.

그 꽃미남은 통일신라시대 8세기 조성된 석굴암 본존불하고 비교했기 때문이죠. 석굴암 본존불을 두고 김원룡 교수는 ‘완벽한 신체비율, 비불비인(非佛非人)의 표정, 불타의 신비와 자애’ 라고 극찬했어요. 그런 기준에서 고려 광종 때 조성된 은진미륵은 조각품도 아니고, 한낱 돌기둥으로 폄훼되어 ‘최악의 졸작’이니 ‘못난이 불상’이니 하는 혹평을 가한거죠.

은진미륵은 그렇게 못난이 불상이라는 어찌보면 불격모독을 당한채 1000년 이상 서있었죠. 그저 서있을 뿐이었죠.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불상이고, 제작연대(고려 광종 968년)를 알 수 있는 불상이라는 것 때문에 보물로 대접해준 겁니다. 그러나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2018년 문화재위원회 국보 심의위원회에서

은진미륵의 위용. 높이가 18,12m, 둘레가 9m, 귀와 미간의 길이만 각 1.8m, 이마에 쓴 보관의 높이는 2.43m에 달한다. 


만장일치로 국보 승격이 결정되었는데요.

그 이유가 무얼까요. 

마침 기자에게 국립중앙박물관 최선주 학예연구실장이 보내준 사진이 단서가 들 것 같군요. 최실장은 지난 2007년 은진미륵의 정비사업에 전문가로 참여해서 비계를 설치해놓고 아파트 6층 높이의 은진미륵 얼굴 부위까지 올라갔는데요.

은진미륵의 눈과 마주친 순간 최선주 학예연구관은 숨이 멎는 듯했답니다. 밑에서 보기엔 눈을 원판 돌(화강암)에 새긴 뒤 눈동자를 검은 색으로 칠한 것처럼 보였는데 막상 올라와보니 그게 아니었다는 겁니다. 원판 화강암과는 별도로 까만색 점판암에 눈동자와 내외안각 주름을 조각해놓고는 원판 화강암에 조각해놓은 눈동자 부분에 정교하게 끼워맞춘 것이죠.

눈동자도 눈동자지만 동양인에게만 보인다는 눈동자 양옆에 주름까지 그렸다는 그 디테일 표현을 보게된거죠.

최선주 실장은 이렇게 눈동자와 눈동자 주름까지 정교하게 조각한 은진미륵이 어째서 한국 최악의 졸작이냐고 이의를 제기합니다.

그림  은진미륵은 흔히 통일신라시대의 걸작 석굴암 본존불과 비교됐다. ‘꽃미남’인 석굴암 본존불에 비해 삼등신에 얼큰이, 패테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채 ‘못난이 불상’ 소리를 들었다.

학계에서도 은진미륵을 두고 평가가 달라졌다고 하는데요. 

삼등신 얼큰이에 패테, 즉 패션테러라는 혹평 대신 “거대하고 묵중한 괴체(塊體)로 단순화됐지만 양감이 느껴지고…강한 원초적인 힘이 보인다”는 평이 요즘에는 지배적입니다, 비록 석굴암 본존불 같은 꽃미남은 아니지만 남자라면 남성미 물신 풍기는 상남자 캐릭터를 갖게 된거죠. 요즘 이것을 부케라 하나요? 어찌보면 다양한 캐릭터를 인정하는 시대흐름에 은진미륵이 당당하게 합류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은진미륵은 석굴암 본존불과 얼평을 당해 못난이로 폄훼됐다. 최근에는 상남자로 거듭났다.


전 최근 오랜만에 은진미륵을 친견했습니다. 논산은 1983년 훈련소 입소 때문에 가보고 처음 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당시 훈련소를 향해서는 소변도 안본다고 했는데, 그 덕분일까요.

오랜만에 가본 겁니다. 하지만 가본김에 최애 드라마인 미스토 션사인 촬영 세트도 보았는데 나름 좋다라구요. 훈련소하고 바로 붙어있는데 마침 훈련병들이 마스크 끼고 훈련받고 귀대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40여 년 전의 추억을 소환했습니다. 코로나 19가 재유행해서 어디 갈 곳이 없으실 것 같은데 은진미륵을 친견해보면 어떨까요. 못난이에서 상남자 부캐를 받은 은진미륵의 매력에 빠져봅시다. 경향신문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