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의 술을 담았을까. 아니면 물을 담았을까. 또 술을 과하게 마시지말라는 뜻으로 제작한 계영배(戒盈杯)에 숨어있다는 사이펀의 원리는 무엇일까.
국보 제91호 ‘기마인물형토기’는 1924년 경주 금령총에서 발굴된, 신라를 대표하는 유물중 하나이다. 주인과 하인이 각각 말을 탄 모습인 토기 인물상은 신라인의 의복과 말갖춤 등 당시 생활모습을 정교하게 표현한 걸작이다. 이 인물은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말을 탄 사람을 형상화한 조각처럼 보인다.
백자 청화철채 산모양 연적의 물길을 찍은 모습.|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그러나 이 유물은 물이나 술을 따라 마실 수 있는 주전자의 기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더욱 더 관심을 모았다.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가 ‘빛의 과학, 문화재의 비밀을 밝히다’ 특별전을 준비하면서 기마인물형 토기를 컴퓨터 단층(CT)촬영으로 확인한 결과 신라시대 주전자의 실체를 밝혀냈다.
이영범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CT 촬영결과 인물 뒤에 있는 깔대기 모양의 구멍 안에 물이나 술을 넣고 다시 말 가슴에 있는 대롱을 통하여 물을 따를 수 있는 주전자로 제작된 것임을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또한 말 내부의 체적을 계측한 결과 240㏄ 정도의 액체를 담을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당초 8월 24일부터 개막예정이었다가 코로나 19로 연기된 ‘빛의 과학, 문화재의 비밀을 밝히다’ 특별전의 비대면 전시를 시작했다.
신라 금귀고리의 현미경 이미지. 누금기법을 흔히 미시의 금알갱이라 일컫는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배기동 국립박물관장은 1일 “당초 11월15일까지 예정된 특별전 준비는 모두 끝냈지만 코로나 19 재유행으로 무기연기했다”면서 “그래도 비대면 학교교육에 당장 활용할 수 있도록 ‘문화재 속 과학과 역사 탐구자료’를 공개했다”고 말했다. 특별전 영상 자료는 누리집(https://www.museum.go.kr/site/main/exhiSpecialTheme/view/specialGallery?exhiSpThemId=554845&listType=gallery)으로 공개했다.
이번 특별전은 국보 제78호 금동반가사유상 등 57건 67점을 중심으로 ‘첨단과학으로 밝혀낸 문화재의 숨겨진 비밀’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이영범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 학예연구사는 “문화재 속에 담긴 중요한 정보를 자연과학 측면에서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고 전했다.
국보 제91호 기마인물형 토기의 CT 3D 이미지와 CT 단면 이미지. 깔대기 모양의 구멍 안에 물이나 술을 넣고 마시는 주전자 용도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온라인 영상에서는 기마인물형 토기는 물론 ‘미시의 알갱이’라는 삼국시대 누금기법과, CT촬영을 통해 고려청자의 비밀, 그리고 조선시대 연적의 물길을 알아본다. 또 현미경으로 들여다 본 국보 제89호 금제띠고리의 세부모습과 국보 제78호 금동반가사유상을 과학적으로 검진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밖에 ‘사이펀의 원리’가 적용됐다는 계영배 유물을 들여다본다. 계영배는 술이 일정한 한도에 차오르면 새어나가도록 만든 잔이다. 술을 과하게 마시지 말라는 경계가 담겨있는 술잔이다. 잔의 70% 이상 술을 채우면 모두 밑으로 흘러내려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는 상징적 의미도 지닌다.
조선의 거상 임상옥(1779∼1855)은 늘 이 계영배를 옆에 두고 끝없이 솟구치는 과욕을 다스리면서 큰 재산을 모았다고 한다. 계영배에는 잔을 기울이지 않고도 구부러진 관을 이용하여 액체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게 하는 사이펀의 원리가 담겨 있다. 사이펀(siphon)이란 옮기기 위험하거나 힘든 액체를 기압차와 중력을 이용하여 쉽게 다른 곳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 연통형의 관을 말한다.
특별전에서는 또 1971년 무령왕릉 발굴 때 왕과 왕비의 머리, 가슴, 허리 부분을 중심으로 출토된 유리구슬을 엑스선 형광분석기(XRF)로 분석한 결과를 보여준다. 즉 유리구슬들은 산화나트륨(Na2O)을 융제로 사용한 소다 유리임이 드러났다. 또한 다양한 색상을 나타내기 위하여 청색·주황색·적색은 구리, 황색·녹색은 납, 자색은 철과 망간 성분의 착색제를 사용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조선시대 목조석가불좌상을 CT 촬영한 결과 다양한 종이나 직물로 보이는 것과 후령통(복장물을 담은 통)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유혜선 보존과학부장은 “우리 문화재를 과학적인 시선으로 분석하고 해석하여 기존의 작품 감상으로 이루어지는 특별전과는 전혀 다르게 인식될 것”이라고 밝혔다. 경향신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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