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8월20일 전남 신안 중도 앞바다에서 조업중이던 어부 최평호씨(당시 35살)의 그물에서 심상치않은 물건이 걸렸다. 청자꽃병을 비롯한 중국제 청자와 백자였다. 최씨는 이 물건들을 그냥 마루밑에 보관해 두었다. 6개월 뒤 초등학교 교사인 최평호씨의 동생이 ‘마루밑 중국제 청·백자 이야기’를 듣고 가만 있지 않았다.

40여년만에 회수된 신안선 유물들. 1980년대초 잠수부를 동원해서 건져올린 뒤 은닉해온 것들이다. |문화재청 제공

"심상치 않은 물건 같은데 신고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동생은 곧바로 신안군청에 중국제 청백자의 인양 사실을 알렸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신안선의 존재는 이렇게 알려졌다. 감정에 들어간 문화재관리국(문화재청의 전신)은 이 중국제 청·백자가 중국 송~원나라 시대의 것임을 확인했다. 

문화재관리국은 그때부터 1987년까지 11년동안 발굴작업을 이어갔다. 본격발굴작업 끝에 해저 20m에 가라앉은 난파선은 길이 34m, 폭 11m로 측정됐다. 발굴유물은 총 2만3502점에 달했고, 동전 800만개(28톤), 자단목(아열대산 최고급 가구 목재) 1017개, 선체조각 445개가 나왔다. 

그 많은 화물 중에 가장 큰 부피와 양을 차지한 것은 도자기와 동전, 자단목 원목이었다. 난파선에서 인양된 도자기는 무려 2만661점이었다. 청자가 1만2359점, 청백자·백자는 5303점에 달했다. 인양된 도자기는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완형의 신품들이었다. 

특히 관심을 모은 흑유자. 흑유자는 철분성분이 많은 흑갈색 유약을 입힌 도자이다. 해외에서 특히 인기를 끄는 유물이다.|문화재청 제공

같은 종류의 그릇을 10개나 20개씩 포개 끈으로 묶은 다음 나무상자에 넣어 포장한 것이었다. 이것은 난파선이 배가 상품을 싣고 가던 대형 무역선이라는 얘기였다. 

인양된 명문 목간을 보니 난파선은 1323년(고려 충숙왕 10년) 여름 원나라 경원(닝보·寧波)을 출발해서 일본 하카다(博多·후쿠오카)로 향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신안선에서 막대한 유물이 인양된다는 소식에 도굴범들이 몰려들었다. 정부 주도의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일반 어민들도 도굴의 유혹에 빠졌다. 아닌게 아니라 인양된 도자기 1점이 당시 돈으로 1240만원(당시 쌀한가마니 값은 1만원)에 팔았다는 기사가 나왔으니 눈이 뒤집힐만 했다. 

이번에 회수된 신안선 유물들. ‘청자 세발 향로’와 ‘청자 물소 모양 연적’(청자우형연적)이다. |문화재청 제공

어민들 가운데는 영농자금까지 대부받아 보물 건지기에 나선 이들도 있었다. 실제로 도자기 인양으로 떼부자가 된 어민이 다른 도굴범과 함께 수중작업에 나섰다가 익사하기도 했다. 감시선이 나타나자 도굴범들이 물속에 들어간 어민을 버리고 달아났기 때문이다. 발굴 기간인 12년동안 언론에 보도된 도굴건수만 100건이 넘는다. 

당시는 기본측량장비나 GPS같은 첨단장비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도굴꾼들은 잠수부를 태운 배를 몰고 단숨에 신안선이 난파된 지점을 목측으로 찾아냈다. 그야말로 신출귀몰의 눈썰미를 자랑한 것이다.

그때만 해도 수중 발굴 경험이 있는 전문가가 없었기 때문에 교도소에서 막 출감한 도굴범을 발굴대원으로 ‘초대’되는 촌극을 빚기도 했단다. 지금까지 적발되지 않은 신안선 유물이 정식보고된 유물의 양(2만4000여점)에 버금갈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그로부터 40여년이 훌쩍 지난 13일 대전지방경찰청과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이 신안선 근처의 앞바다(1981년 반경 2㎞ 해역이 사적 274호로 지정)에서 불법인양한 도굴문화재를 회수했다고 발표했다. 

즉 문화재청 사법단속반과 경찰은 1980년대초 잠수부를 고용해서 신안 앞바다에 매장되어 있던 청자접시 등 도자기 57점을 불법 인양해서 경기 평택의 자기 집에 은닉한 혐의로 ㄱ씨를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검거했다. 

한상진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장은 “검거된 ㄱ씨는 지난 40여 년 동안 도굴품들을 안방 장롱과 금고, 그리고 안방 등에 숨겨두었고, 일부는 오동나무 상자에, 일부는 에어캡(속칭 뽁뽁이)에 감싼채 보관해두고 있었다”고 전했다. 

한 반장은 “그러다 최근 경제적인 어려움에 시달리자 일본으로 반출하려다가 첩보를 입수한 경찰과 사범단속반에 적발됐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 ㄱ씨는 일본으로 도자기를 들고 가 브로커에게 구매를 타진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에 회수된 자기는 중국 저장성(浙江省) 용천요에서 만든 청자 46점을 비롯, 푸젠성(福建省)에서 생산한 백자 5점, 장시성(江西省) 경덕진요에서 제작한 백자 3점, 검은 유약을 바른 흑유자(黑釉瓷) 3점 등이다.

이중 특히 관심을 끄는 유물은 흑유자(철분성분이 많은 흑갈색 유약을 입힌 도자기)다. 흑유자 3점 중 1점은 푸젠성 건요(建窯)에서, 2점은 차양요(茶洋窯)에서 각각 제작됐다. 

이중 건요에서 생산한 사발인 흑유완(黑釉碗)은 검은 유약에 토끼털 모양이 남아 있다고 하여 ‘토호잔’이라고도 일컬어진다. 한상진 단속반장은 “흑유자는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높은 가격에 매매되는데 해외 유수경매의 시작가가 억대를 호가한다”고 전했다. 

한 반장은 “특히 일본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기 때문에 ㄱ씨가 일본 반출을 시도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밖에도 ‘청자 구름·용무늬 큰 접시’(청자첩화룡문대반)와 ‘청자 모란무늬병’(청자양각모란문량이병), ‘청자 물소 모양 연적’(청자우형연적) 등이 완벽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이번에 회수된 중국제 도자기들은 학술적인 가치와 전시·교육 자료로 활용도가 매우 높아 중세 동아시아 3국의 문화교류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경향신문 선임기자 

Posted by 이기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