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통해 전래된 서양의 천문시계(아스트롤라베·이슬람에서 고안된 천문시계)를 조선식으로 해석한 이가 있다. 실학자 유금(1741~1788)이다.
역시 실학자인 유득공(1748~1807)의 숙부이자 당대 학술·예술·과학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실학자이자 발명가다. 이 유금이라는 분이 1787년(정조 11년)에 만든 천문관측도구가 바로 혼개통헌의(渾蓋通憲儀)이다. ‘혼개통헌의’는 천체를 관측하는 기구라는 뜻이다.
유금이 만든 혼개통헌의는 해시계와 별시계를 하나의 원판형의기(천체의 운동을 관측하는 기구)에 통합해서 표현한 천문관측기구이다.
정조시대 실학자 유금이 재작한 천문기구인 ‘혼개통헌의’. 해시계와 별시계를 하나의 원판형의기(천체의 운동을 관측하는 기구)에 통합해서 표현한 천문관측기구이다.|문화재청 제공
그런데 이 천문기구는 1930년대 일본인 도기야(磨谷)가 대구에서 구입해 일본으로 반출해갔다가 2007년 과학문화재 연구의 대가인 고 전상운 교수(1926~2018)의 노력으로 70여년만에 환수됐다.
문화재청은 바로 이 18세기 천체관측기구인 ‘혼천개통헌의’(보물 제 2032호) 등 10건을 보물로 지정했다고 26일 밝혔다.
‘혼개통헌의’는 별의 위치와 시간을 확인하는 원반형의 모체판(母體板)과 별의 관측지점을 알려주는 여러 모양의 침을 가진 T자 모양의 ‘성좌판(星座板)’으로 구성됐다.
모체판 앞뒷면에 걸쳐 ‘건륭 정미년에 약암 윤선생(실명미상)을 위해 만들다(乾隆 丁未 爲約菴 尹先生製)’라는 명문과 더불어 ‘유씨금(柳氏琴)’이라는 인장이 새겨져 있다. 실학자이자 발명가인 유금이 ‘약암(約菴)’이라는 호를 쓴 윤 선생을 위해 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유금은 이때 밤 시간에 특정한 별을 관찰하는 ‘규형(窺衡)’, 별의 고도(위치)를 확인하는 ‘정시척(定時尺)’도 함께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면 혼개통헌의를 사용하려면 반드시 규형과 정시척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인문의 ‘강산무진도’. 18세기 후반~19세기 초 궁중화원으로 이름을 떨친 이인문이 그린 총길이 8.5m에 달하는 긴 두루마리 형식의 그림이다.
즉 혼개통헌의는 먼저 규형과 정시척을 이용해 별의 각도를 잰 다음 각도만큼 성좌판을 돌려 별의 위치와 시각을 확인하는 원리이다. 그러나 현재는 모체판과 성좌판만 남아 있다.
모체판은 앞면 중심에 하늘의 북극을 상징하는 구멍에 핀으로 성좌판을 끼워 회전하도록 만들어졌다. 외곽을 24등분하여 맨 위에 시계방향으로 시각을 새겼고 바깥쪽부터 남회귀선, 적도, 북회귀선의 동심원, 위쪽에 지평좌표원을 새겼다.
뒷면의 윗부분에는 ‘북극출지 38도’란 위도를 새겼다. 이는 곧 서울(한양)의 위도 36.5도에 해당한다. 모체판과 성좌판에는 북극성, 직녀자리, 견우자리, 처녀자리, 천칭자리, 뱀주인자리, 안드로메다, 오리온, 페가수스 등 계절별 주요 별자리가 표시돼있다.
‘도기 연유인화문 항아리 일괄’(보물 제2028호)은 통일신라 8세기에 제작된 것이다. 뼈항아리(골호·骨壺) 계열의 통일신라 연유도기 항아리 중 가장 크고 문양소재가 화려하다.|문화재청 제공
그밖에 알파드(바다뱀자리의 가장 밝은 별), 프로시온(작은개자리에 속한 별) 등 한반도 하늘에서 주로 관측되는 별자리 사이에 있는 작은 별들의 위치도 표시했을 정도로 섬세하다. 이는 유금의 ‘혼개통헌의’가 중국의 영향을 받았지만 조선 실정에 맞는 조선식 천문시계였다는 반증이다.
유금의 ‘혼개통헌의’는 서양의 관측기기인 아스트롤라베를 받아들여 동아시아에서 제작된 유일무이한 천문 도구이다. 또한 서양 천문학과 기하학을 이해하고 소화한 조선 지식인들의 창의적인 성과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또한, 제작 원리와 정밀도에 있어서도 18세기 조선의 수학과 천문학 수준을 알려주는 소중한 과학 문화재라 할 수 있다.
‘완주 갈동 출토 동검동과 거푸집 일괄’(보물 제2033호)은 2003년 갈동 1호 토광묘에서 출토된 거푸집 2점이다. 한 점은 한쪽 면에만 세형동검의 거푸집을 새겼고, 다른 한 점은 동검(칼)과 동과(꺽창)가 각각 양면에 새겨져 있다.
문화재청은 이 ‘혼개통헌의’ 외에도 ‘이인문 필 강산무진도’, ‘구미 대둔사 삼장보살도’, ‘고창 선운사 참당암 석조지장보살좌상’ 등 고려~조선 시대 회화와 불교문화재, 전적, 초기 철기 시대 거푸집과 청동거울, 통일신라 시대 도기(陶器) 등을 보물로 지정했다.
‘이인문 필 강산무진도’(보물 제2029호)는 18세기 후반~19세기 초 궁중화원으로 이름을 떨친 이인문(1745~1821)이 그린 총길이 8.5m에 달하는 긴 두루마리 형식의 그림이다.
단원 김홍도(1745~1806?)와 동갑내기 화원인 이인문은 세차례 북경 연행(燕行)을 다녀오며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역대 화법을 절충해 산수·인물·화조 등 다양한 소재에 재능을 발휘했다. 이 그림은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소장했던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유행한 전통적 화제인 ‘강산무진(江山無盡)’을 주제로 끝없이 이어지는 대자연의 경관을 형상화했다. 웅장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서 그린 것이다.
이밖에 보물 제2025호 ‘구미 대둔사 삼장보살도’는 1740년(영조 16년)에 영산회상도, 제석도, 현왕도, 아미타불도와 함께 조성되어 대둔사에 봉안된 작품이다. 이 중 삼장보살도만 유일하게 전해오고 있다.
‘김천 직지사 괘불도’(보물 제2026호)는 1803년(순조 3년)에 제작된 괘불로, 현재까지 알려진 19세기 괘불 중 시기가 가장 빠르고 규모도 가장 큰 작품이다.
‘도은선생 시집 권 1~2’(보물 제2027호)는 고려 말 문인 도은 이숭인(1347~1392)의 문집 5권 가운데 권 1~2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금속활자로 간행했다. 1406년(태종 6년) 태종 임금이 이숭인에게 이조판서를 추증하고, ‘문충(文忠)’이라는 시호를 내린 후 그의 문집을 간행하라는 명을 내렸다. 이에 변계량(1369∼1430)이 편집하고 권근(1352∼1409)이 서문을 지어 간행한 것이 ‘도은선생시집’이다.
‘도기 연유인화문 항아리 일괄’(보물 제2028호)은 통일신라 8세기에 제작된 것이다. 대호(大壺·큰 항아리)와 소호(小壺·작은 항아리) 등 2점으로 구성됐다. 뼈항아리(골호·骨壺) 계열의 통일신라 연유도기 항아리 중 가장 크고 문양소재가 화려하며, 통일신라 시대 연유도기의 제작과정을 잘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보물 제2030호 신편유취대동시림 권9~11, 31~39.|문화재청 제공
보물 제2030호가 된 ‘신편유취대동시림 권9~11, 31~39’는 총 70권 중 권9~11 및 권31~30에 해당하는 책이다. 1542년(중종 37년) 무렵에 쓰인 금속활자인 ‘병자자(丙子字)’로 간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판본이다. 이 판본은 16세기 우리나라 시문집 간행의 과정을 살펴보는데 중요한 서책이다. ‘신편유취대동시림’은 조선 중종 연간의 문신인 유희령(1480~1552)이 고대로부터 당시까지의 우리나라 문인들의 시를 모은 70권의 시선집이다. 기존에 간행된 시문집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시기적으로는 고대로부터 당대까지 왕실, 여성, 승려, 귀화인 등의 작품을 모았다.
‘고창 선운사 참당암 석조지장보살좌상’(보물 제2031호)은 고려 말~조선 초에 유행한 두건을 쓴 지장보살좌상이다. 온화한 표정과 불룩한 입술, 양쪽에서 드리워져서 여의두(고사리 모양의 문양 장식) 형태로 마무리 진 띠 장식, 둥근 보주를 든 모습 그리고 치마를 묶은 띠 매듭 등은 고려 말기 조각 양식을 충실하게 반영했다.
‘완주 갈동 출토 동검동과 거푸집 일괄’(보물 제2033호)은 2003년 갈동 1호 토광묘에서 출토된 거푸집 2점이다. 한 점은 한쪽 면에만 세형동검의 거푸집을 새겼고, 다른 한 점은 동검(칼)과 동과(꺽창)가 각각 양면에 새겨져 있다. 기원전 2세기 무렵 초기 철기 시대 호남 지역의 청동기 제작 문화를 알려주는 유물이다.
‘완주 갈동 출토 정문경 일괄(보물 제2034호)은 초기 철기 시대인 기원전 2세기경에 사용된 2점의 청동제 거울이다. 정식 발굴조사에 의해 출토된 보기 드문 사례다. 2007년 전북 완주군 이서면 반교리의 갈동 5호와 7호 토광묘에서 각각 한 점씩 출토됐다. 한반도에서 지금까지 출토된 정문경은 약 60점이다. 이중 완주 갈동에서 확인된 정문경 2점은 초기 철기 시대의 늦은 시기를 대표할 수 있는 거울로 판단된다. 경향신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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