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사슴의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소록도(小鹿島)’란 이름이 붙었다.
그러나 1916년부터는 한센병 환자들이 강제로 격리된 ‘버림받은 섬’이다. 손발이 잘려나가고 얼굴이 문드러지는 한센병은 하늘이 내리는 가장 가혹한 전염병으로 치부됐다.
남성환자에게 정관수술을 시키는 ‘단종법(斷種法)’까지 공포했다. 사후엔 환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시신해부를 자행했고, 칼로 난도질된 시신은 화장장으로 보냈다. 천형(天刑)의 씨를 말려야 한다는 명목 아래 자행된 반인권의 행태들이었다.
1962년과 66년 이 버림받은 섬에 금발의 수녀 둘이 찾아왔다. 당시 소록도병원장이던 조창원씨는 ‘백로 두마리가 사뿐히 섬에 내려 앉았다’고 표현했다.
오스트리아 교구청 소속의 마리안느 스퇴거와 마가렛 피사렉 수녀였다. 꽃다운 20대 중반의 수녀들은 소록도를 사랑과 희망의 땅으로 바꿨다. 장갑도 끼지않고 짓물러가는 환자들의 손발가락에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았다. 피고름이 얼굴에 튀었지만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마스크와 장갑, 방역복까지 칭칭 동여매고 환자들을 다루던 의료진조차 처음엔 ‘미친 짓’이라고 만류했다.
마리안느 수녀는 훗날 “6000명 환자를 한사람 한사람 치료하려면 평생 이곳에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친부모와 친자식까지 외면한 환자들을 보살핀 두 수녀에게 ‘큰 할매(마리안느), 작은 할매(마가렛)’란 수식이 붙었다. 그저 숨은 곳에서 베품과 기적을 베풀었다. 모든 상과 인터뷰 제의를 거부했다. “그냥 할머니 자원봉사자가 하는 일인데 뭘…”이라 했다.
그러던 2005년 11월 21일 새벽 두 할매수녀는 작별인사도 없이 섬을 떠났다. 멀어지는 섬을 바라보며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 광주에 도착해서야 편지 한 장을 부쳤다.
“이제 천막을 접어야 할 때가 왔습니다.…제대로 일할 수 없고 부담을 줄 때는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이…우리의 잘못으로 마음 아프게 해드린 일에 대해 용서를 빕니다.”
본인들이 늙어서 도리어 환자들에게 부담을 줄까 두렵고, 환송회다 뭐다 해서 번거롭게 할까봐 그냥 떠난다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가 마음 아프게 행동한 것이 없는지 만약 있다면 용서를 빈다”는 내용까지 썼다. 떠나는 두 수녀의 손엔 40여 년 전 가져왔던 빛바랜 가방 하나씩 들려 있었다.
두 분 중 큰할매 마리안느 수녀(82)가 5월 중 소록도병원 개원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더 늦기 전에 모시고 싶다”는 전남 고흥군의 뜻이 가상하다.
다만 ‘작은 할매’ 마가렛 수녀(81)가 치매 때문에 올 수 없는 몸상태라니 안타깝기만 하다. 그래도 기억이 흐릿해진 마가렛 수녀지만 평생을 바친 소록도의 기억만큼은 또렷하다고 한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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