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필라바스투의 왕자로 태어난 석가모니 부처가 출가한 것은 29살 때였다.
어느 날 궁궐 밖에서 밭갈이하는 농부, 새에게 잡혀먹는 벌레, 쇠약한 노인을 보고 큰 충격에 빠진 게 계기가 됐다. 아버지는 아들의 고뇌를 눈치채고 혼인을 하도록 했다. 그러나 자식까지 낳은 석가는 생로병사라는 인간의 고뇌에서 결국 빠져나오지 못해 출가의 길을 택했다. 속세와의 인연을 끊은 석가는 불면과 단식, 결가부좌 등 처절한 고행으로 깨달음을 구했다.
석가의 출가는 세상의 번뇌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를 깨우치려는 혹독한 수행의 과정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출가의 의미는 퇴색한다. 자발적인 출가가 아니라 의지할 곳이 없거나, 세금과 징집을 모면하거나, 살 길이 없는 자들의 도피수단이 된 것이다.
조선시대 땐 “병역을 피해 중이 된 자들이 전국적으로 40만명에 이르고(1479년), 저(중)들은 쌀을 훔쳐먹는 도적들(1616년)”이라는 극언을 듣기도 했다. 그럼에도 진정한 깨달음을 좇은 출가자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졌다. 종단에 따라, 시대상황에 따라 출가자격도 차이가 있고, 변하기도 한다. 계율서인 <마하승기율>은 13살과 70살을 출가의 상하한 나이로 정했다.
불교 최대종단인 조계종은 만 50살로 제한한 출가 상한 나이를 늘린다는 방침을 세웠다. 2007년까지 매년 300명 이상이던 출가자수가 지난해 205명으로 급감한 것 때문이다.
이러다 100명대로 떨어질 판이니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절에 가면 그래도 배는 곯지 않았던’ 시절에서 벗어난 때문인지, 5~7년 걸리는 혹독한 수행과정 때문인지 정확한 이유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조계종의 ‘은퇴자 특수 출가제도’는 전문성을 갖춘 은퇴자들을 겨냥한다.
평균 53살이 은퇴나이라고 하니 출가를 진지하게 고민할 이들이 제법 생길 것 같다. 아직 정확한 세부방안을 마련하지 않았지만 엄격한 출가절차를 대폭 줄일 것 같다.
그러나 넘어야 할 벽이 있다. ‘조계종 승려는 출가 독신이어야 한다’(종헌 3장9조)는 규정이다.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고 와야 한다는 뜻이다. 선거권과 피선거권도 받지 못할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욕심과 인연을 다 끊어야 출가할 수 있다는 것이니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한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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