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오황디(소황제·小皇帝)’는 1979년 시작된 중국의 1가정 1자녀 정책의 산물이다.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의 격동기를 겪은 부모세대는 가난과 무지를 대물림하지 않으려고 하나 뿐인 ‘금쪽같은 내 새끼’를 꼬마황제로 떠받들며 키웠다.
이 정책은 중국 사회의 근간을 뿌리채 바꿔놓으며 갖가지 에피소드와 신조어를 양산했다. 예컨대 샤오황디에겐 지갑이 6개나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친·외가 할머니·할아버지 4명과 부모 2명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자녀)에게 따로 용돈을 챙겨준다는 뜻이다.
집안에서만큼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성장한 샤오황디지만 막상 사회에 진출하면 웨광쭈(月光族)로 전락하기 일쑤다.
웨광쭈는 매달(月) 타는 월급을 자신 만을 위해 몽땅 써버리는(光) 사람들(族)을 가리킨다. 샤오황디로 자란 버릇을 버리지 못한채 흥청망청한다는 소리다.
이렇게 ‘일단 쓰고, 즐기고 보자’면서 빚에 쪼들리고 대출 상환에 허덕여 결국 팡누(房奴·집의 노예), 처누(車奴·차의 노예), 카누(잡奴·카드의 노예)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또 하나 생긴 신조어가 취직을 해도 여전히 부모를 의지하며 생활하는 컨라오쭈(입口변+肯老族)다. 또 온실 속에서 자란 딸기가 스트레스에 매우 약하다는 뜻의 차오메이쭈(草매族)라는 용어도 있다.
샤오황디로 자라오다가 사회에 진출한 뒤 아무리 동분서주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람들을 뜻하는 번번쭈(奔奔族)도 있다.
중국인들은 축구와 같은 단체종목에서 유달리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샤오황디로 자란 젊은이들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과보호 속에서 자란 선수들이 이기적인 플레이를 펼치고 어려움에 닥쳤을 때도 쉽게 포기해버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의 샤오황디는 그저 나약함의 대명사 만은 아니다. 이들이 자원봉사로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0년 상하이 엑스포 등의 국가적인 행사에 참여하면서 이타주의와 애국심을 몸으로 채득하게 됐다는 것이다.
얼추 4억명으로 추산될 정도가 된 중국의 샤오황디 세대는 이제 나약함의 대명사 만은 아니다. 이들이 자원봉사로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0년 상하이 엑스포 등의 국가적인 행사에 참여하면서 이타주의와 애국심은 물론 세계를 향한 개방성까지 몸으로 채득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렇게 변한 샤오황디들을 ‘냐오차오(鳥巢)세대’나 ‘하이바오(海寶)세대’라 표현한다. 새둥지(鳥巢) 모양의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 모습과 상하이시의 마스코트(海寶)에서 따온 용어들이다. 요즘엔 샤오황디 세대를 80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 즉 80허우(後)와 90년 이후 출생자인 90허우(後)로 세분화한다.
과도기 속에서 자라 30대 성인이 된 ‘80허우’에 비해 ‘90허우’는 좀더 개방적이면서 좀더 이성적인 애국심을 표출하는 세대라 한다. 어쨌든 중국이 35년 만에 1가장 1자녀 정책을 폐기한다고 발표함으로써 이제 ‘샤오황디’는 역사의 한 페이지 속에 남을 용어가 됐다. 9000만쌍이 두자녀를 가질 권리를 획득했다니 이젠 출산 빅뱅인가. ‘1가정 2자녀’의 중국은 어떤 미래를 그리게 될까.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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