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쁠 텐데 한마디만…. 그거(숭례문 화재 현장) 발굴작업 해야 한다고…. 기록, 사진으로 반드시 남겨야 합니다.” 숭례문 화재 기사마감 탓에 눈코 뜰 새 없던 지난 11일 오후 5시쯤, 해외 출장 중이던 어느 문화재 전문가가 기자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국제전화를 걸어왔다. BBC 등을 통해 방영된 숭례문 화재 소식을 보고 노파심에서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다음날인 12일 문화재위원회는 사적·건축분과 합동회의를 열어 숭례문의 국보 유지를 결의하면서 “현장보존을 제대로 하고 절대 서두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러나 웬일인가. 13일 숭례문 화재 현장. 화재로 훼손된 부자재가 급히 반출됐다. 그날 오후 배기동 한양대 교수가 전화를 걸어왔다.
경향신문DB
“(부자재를) 쓰레기장으로 버리는 건 조상의 묘를 파헤치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왜 화재가 났는지, 어떻게 훼손됐는지, 화재 후의 모습이 어땠는지, 면밀하게 기록하고 실측해야 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떨렸다. 배교수뿐 아니라 모든 전문가들이 “문화재 훼손 현장은 훗날을 위한 연구자료이니 서둘러선 안된다”고 두 손 모아 기원했다. 그런데 일은 엉뚱하게 흘러갔다.
왜 문화유산 정책을 담당하는 문화재청에서 이런 일이 빚어진 걸까. 한바탕 폭풍이 몰아친 후. 문화재청 내부에서조차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문화재청이 ‘책임에서 빨리 벗어나려’ 사태의 조기수습만을 꾀하면서 무리수를 뒀다는 것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을 지낸 조유전 토지박물관장은 “발굴·조사 기관인 국립문화재연구소라는 조직을 갖고 있는 문화재청이 왜 연구소 조직을 처음부터 활용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워했다.
실제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조사 요원 2~3명을 급파, 문화재청의 정밀 조사 지시에 대비했지만, 문화재청의 지시는 끝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과정에서 폐부자재가 반출됐다는 것이다. 또 화재가 난 직후부터 “3년내 복원” 운운하면서 졸속의 냄새를 피운 것도, 90% 이상 살아남은 것으로 알려진 1층 누각에 대한 공개를 꺼리는 것도 모두 ‘가림행정’ ‘면피행정’의 단면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또 하나 명색이 문화유산을 다루는 문화재청인데도 일부 직원들의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얘기도 들린다. “1997년에 얹혀진 기와는 문화재의 가치가 없다”는 식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문화유산을 담당하는 관청이 할 소리가 아니다.
한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문화재청은 광화문을 1865년 고종 때 중건한 모습으로 복원한다는 계획을 세워 설계까지 마쳤다. 하지만 지난해 말 광화문 복원을 위한 발굴조사에서 태조 연간의 터(1395년)가 완벽하게 확인됐다. 그러자 청 일각에서는 복원에 차질을 빚었다는 이유로 광화문 터를 발굴한 국립문화재연구소를 원망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면서 “발굴단이 ‘붓질’로 살살 유구를 다루고 있다”고 발굴단의 세밀하고 철저한 조사를 비아냥댔다는 것이다. 사실이 아니길 바라지만 사실이라면 문화유산 관청 종사자가 할 소리가 아니다.
남의 눈의 티끌을 탓하기에 앞서 자기 눈의 들보를 빼는 반성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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