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값영어’. 소설가 안정효씨의 명언이죠. 어쭙잖은 영어의 오·남용을 일컬어 ‘꼴값영어’라 했습니다.
남의 동네 이야기 할 것도 없죠. 지금은 바뀐 것 같은데, 제가 사는 파주의 공식 표어가 ‘G&G’였어요.
저는 이 표어에 무슨 심오한 뜻이 있는 줄 알았는데요. 참 어이가 없더군요. 그냥 ‘Good and Great’의 약자를 썼다네요. 그럴바엔 ‘좋고 위대한 파주’라 했으면 차라리 좋을 뻔 했습니다. 하기야 뭐 ‘G&G’ 뿐이겠습니다.
요즘 세상을 살다보면 ‘꼴값영어’의 명언이 수시로 튀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꼴값 영어와 얼굴값 영어
최근 ‘영어’ 때문에 홍역을 앓고 있는 도시가 있습니다. 바로 ‘다이나믹’을 ‘브랜드슬로건’으로 삼고, ‘그린 스마트 도시’를 표방한 부산광역시입니다. 시민단체인 한글문화연대가 17개 지방자치단체의 최근 2개월치 보도자료를 검토한 결과를 발표했는데요.
부산시가 외국어 남용 자료의 비율(6월 75%, 7월 74.7%)이 단연 1위를 차지했는데요.
낱말 1000개 가운데 부산의 외국어 사용 횟수(6월 15.37회, 7월 16.07회)는 울산(6월 2.78회, 7월 2.61회)의 거의 6배에 이르렀답니다.
부산에서는 기존의 명칭에 별칭을 달거나 아예 새롭게 바꾼 다이아몬드브릿지(광안대교)와 문탠로드(달맞이길) 등은 단적인 예에 불과하구요. 새롭게 들어섰거나 들어설 건물이나 시설물의 명칭을 볼까요. 센텀시티, 마린시티, 에코델타시티, 휴먼브릿지, 금빛노을브릿지, 사상리버브릿지, 감동나룻길리버워크 등 현란합니다. 이게 과연 ‘꼴값’ 아닌 ‘얼굴값’ 제대로 하는 영어일까요.
그런 부산에서 ‘영어 상용’을 둘러싸고 거센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부산시가 부산교육청과 함께 이른바 ‘영어상용도시’ 정책을 밀어붙이자 국어(76개) 및 시민(34개)단체가 연합체를 만들어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데요. 부산시는 ‘영어 상용화(Common Language)’는 영어를 공식언어로 쓰는 ‘영어 공용화(Official Language)’가 아니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어요.
“특정 영역에서 영어가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겁니다. 15분 생활권 내 영어교육 인프라를 구축함으로써 영어 학습의 일상화를 꾀하고, 해외 관련 부서의 한글 공문서 가운데 번역이 필요한 경우 영어를 병기하기로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국어 및 시민단체들은 “이른바 ‘영어상용도시’ 정책은 많은 도시에서 실패한 ‘영어마을’을 확대하는 정책에 불과할 뿐”이라고 비판합니다. 이들 단체는 “서울시에서 2003년 공문서를 영문으로 만들고 간부들이 영어회의를 추진했던 영어공용화 정책, 서울 서초구가 2008~2009년 시행한 공무원 영어회의 등은 이미 실패한 실험”이라고 밝혔습니다.
■‘쉬크’와 ‘잇 걸’
저는 지금 부산에서 벌어지고 있는 심상치않는 논쟁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듭니다.
영어가 과연 뭐기에 100년이 넘도록 지겹도록 설왕설래 하고 있을까요. 일단 일제강점기인 1920~30년대로 돌아가봅시다.
“모던뽀이’는 ‘시크’해야 하고 ‘모던껄’은 ‘잇트’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1931년식 첨단인이 마땅히 가져야 할 현대성이다. ‘스마트’한 것을 자랑하는 ‘모던’은 비록 나팔 바지는 못 입었을 망정, 단발 양장은 못했을 망정 신감각적 ‘에로’, ‘그로’를 이해치 못해서야 될 뻔한 일이냐.”(<동광> 1931년 6월1일자)
1920~30년대 불어닥친 영어 열풍의 단면을 보여주는 기사입니다. 오죽하면 당대 신문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신조어를 풀이한 ‘신어해설’(1931년 3월9일)란을 신설했을까요. 그럼 <동광> 잡지에 소개된 ‘시크(chic)’라는 단어를 볼까요.
국립국어원이 지난 2004년 펴낸 ‘신어(新語)’ 자료집에 ‘멋있고 세련되다’는 신어로 소개됐죠. 그러나 <동광> 잡지를 보면 자그만치 91년 전에 등장한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죠.
“‘쉬-크’는 멋쟁이 하이칼라를 의미한다. 쉬-크는 외형 만이 아니라 시대정신을 이해하는 빈틈없는 근대인을 가리킨다. 내면이 빈약한 모던보이, 모던걸에 반해 ‘쉬크보이’, ‘쉬크걸’은 훌륭한 신사숙녀이다.”(동아일보 1931년 4월13일 ‘신어해설’)
■‘에로’와 ‘그로’, ‘구리-무’와 ‘다꾸씨’
‘모던 걸의 덕목’이라는 ‘잇트(It)’는 어떤 뜻일까요. 동아일보는 ‘원래는 여성의 성적 매력을 가리키는 말”이라 풀이했어요.
사실은 ‘It’는 1927년 미국에서 개봉된 영화의 제목입니다. 대형백화점 판매원인 여주인공(클라라 바우·1905~1960)이 ‘It’로 사장의 마음을 흔들어 성공한다는 이야기를 담았는데요. 그 때 유행된 표현이 ‘잇트 걸’(It girl)입니다. ‘It’는 이때부터 ‘섹시한 여성(혹은 남성)’의 상징어가 됐죠. 그럼 1920~30년대 첨단인이 알아야 했던 ‘에로’는 ‘에로틱’, ‘그로’는 무슨 신조어일까요.
“가장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유행어가 ‘에로틱’의 약어인 ‘에로’다. ‘그로’는 ‘그로테스크’(grotesque)의 줄임말이다. 생활에 권태를 느끼는 현대인(1920~30년대)들이 ‘괴기스러운 것’을 찾는 경향이 있어서 생긴 신조어다.”(동아일보 1931년 3월9·16일)
재미있는 것은 약 한 달 뒤에 독자가 다시 ‘에로와 그로의 뜻이 뭐냐’고 묻는데요. 이때 담당 기자는 “정말 옛날 양반이시다”고 농섞인 핀잔을 던진 뒤 ‘에로는 정사(情事), 그로는 괴기’라 친절하게 가르쳐줍니다. 그 시대에 ‘에로’ ‘그로’를 모르면 ‘꼰대’ 소리를 들었던 겁니다. 이때 유행한 영어 표현이 어째 이상하죠. ’에로’ ’그로’는 물론 ‘모보’(모던보이) ‘모껄’(모던걸) 처럼 줄임말을 남발하고 있어요. 어쩐지 ‘왜색’이 짙은 것 같아요.
<별건곤> 1930년 5월1일자에 주요한(1900~1979)은 왜색 영어의 창궐을 개탄하는 글을 씁니다.
“지금 ‘신문 잡지사에 외국어만 쓰니 무식한 사람이야 어디 쓸 수가 있냐’는 항의편지가 온다…게다가 일본어의 영향으로…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럿셀’을 ‘라세루’라 한다…‘구리-무’(크림), ‘기로’(킬로), ‘다꾸씨’(택시), ‘밧데리’(배터리), ‘화스토’(퍼스트), ‘보인또’(포인트) ‘시구나루’(시그널), ‘마구네슈무’(마그네슘)….”
이떻습니까. 1920~30년대 조선에서도 ‘꼴값영어’의 향기가 물씬 풍겼죠.
■보성고보 학생들의 등교거부투쟁
이 대목에서 근본적인 궁금증이 듭니다. 아니 우리나라 영어교육이 어땠기에 이렇게 100년이 넘도록 이 모양 이 꼴이라는 것일까요. 동아일보 1920년 5월12일자 그 해답의 실마리가 나옵니다.
“보성고보 3학년 학생 45명이 지난 7일부터 등교하지 않는다. 일본인은 ‘원래’ 영어발음이 불량한데 영어교사인 전중용승(田中龍勝)이 가르치는 발음대로 영어를 배워서는 도저히 세상에 나가 활용할 수 없으니…”
요컨대 보성고 3학년 학생들이 “영어발음이 형편없는 일본인 영어선생 말고 (발음이 좋은) 조선인 영어 선생을 바꿔달라”면서 등교거부 투쟁을 벌인 겁니다.
학교측은 “전중용승’, 즉 다나카 선생도 명색이 제국대 영문과 출신이고, 조선인이나 일본인이나 영국인이나 미국인이 아닌 것은 마찬가지 아니냐”고 설득했지만 소용없었죠.
어떻습니까. “일본인들은 원래 발음이 좋지않다”는 보성고보 학생들의 ‘팩폭’이 재미있죠.
■‘어쩌다 영어몰입식 교육’
그렇습니다. 사실 조선 학생들의 영어 실력은 동북아 3국 가운데 으뜸이었습니다.
시작은 가장 늦었죠. 1882년 미국과 수호통상조약을 맺을 때 청나라인의 통역을 써야 했던 아픈 기억이 있었구요. 1883년 미국을 방문한 조선 사절단(보빙사)이 선진문물에 흠뻑 빠졌는데, 이때 ‘영어’의 필요성을 절감했죠.
그래서 1886년(고종 23년) 왕립 영어학교(육영공원)을 세우고, 원어민(미국인) 교사 3명을 초빙했죠.
그 이들이 호머 헐버트(1863~1949)와 델젤 벙커(1853~1932), 조지 길모어(1858~?)입니다.
조선어를 몰랐던 이 세 선생은 어쩔 수 없이 영어 뿐 아니라, 수학·자연과학·만국지리 등 모든 과목을 원어로 가르칠 수밖에 없었죠. ‘어쩌다 영어몰입식 교육’이 된 겁니다. 그럼에도 조선인 학생들의 수학능력이 대단했답니다.
헐버트는 “조선 학생들의 영어 구사 능력은 중국이나 일본보다 훨씬 뛰어났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는데요. 그럴만도 했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교사는 한국어를, 학생들은 영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수업을 시작했는데요. 단 10개월 만에 학생들이 무려 3000단어를 외웠다는 겁니다.
1890년대 조선을 방문한 영국인 아놀드 새비지 란도(1865~1924)는 “19살 조선 청년이 f랑 p의 발음도 구분 못하더니, 두달이 지난 지금은 하루에 단어를 200개씩 외우고, 영어 해석과 회화도 완벽하다. 굉장히 너무 놀랍다.”고 감탄했답니다. 왕립학교 뿐 아니라 배재·이화학당 등 미국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에서도 자연스레 ‘원어민 영어교육’이 이뤄졌죠.
왕립학교는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9년 만인 1895년(고종 22) 문을 닫는데요. 그러나 갑오개혁(1894~95)에 따라 과거제·신분제가 폐지되면서 모든 백성에게 균등하게 적용되는 근대식 교육기관이 설치되죠.
그때부터 외국어, 특히 영어가 신분상승과 출세의 지름길로 각광을 받았습니다.
■독립신문에 실린 첫 영어과외광고
저는 독립신문에서 당대의 영어 열풍과 관련된 광고 몇편을 보았는데요.
“영국 선비 하나가 특별히 밤이면 몇시간씩 가르치려 하니…조용히 영어를 공부하려는 사람들은…”(1898년 7월4일), “월전(7월4일) 광고했던 영어 가르치는 사람이 9월1일 오후 8시부터 9시까지 가르칠터이니…교사의 월급은 다 선급이요…다만 며칠만 배웠더라도 월급은 한달 셈으로 할 터…”(1898년 8월26일)라는 내용이 실려있더라구요.
영국인 원어민 강사가 독립신문에 낸 사상 첫 영어과외광고라 할 수 있죠.
■‘을노ㅇ브’(Love), ‘으라이쓰’(Rice)
이와같은 영어열풍을 반영하듯 다양한 영어교재가 출간됩니다.
종두법을 도입한 의사이자 국어학자인 지석영(1855~1935)의 <아학편>(1908년)이 대표적입니다. 이 책은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아동용 한자학습 교재인 <아학편>을 영어교재로 다듬은 건데요.
지석영의 <아학편>은 한자를 공통문자로 중심에 놓고 동아시아 3국의 자국어를 병기했습니다. 한자의 음과 훈은 물론 각 한자에 대응하는 중국어·일본어·영어의 발음까지 한글로 표기해놓은 겁니다. 한글자의 한자를 배우면 4개 국어를 배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구요. 한자 한 글자마다 붙인 영어와 우리말 발음을 되도록 소리나는 대로 표기하려 애썼다는 것이 흥미롭죠.
‘F’는 ‘에프’가 아닌 ‘에ㅍ후’로, ‘V’는 ‘브이’ 대신 ‘ㅇ뷔’로 표기했다. ‘R’이나 ‘L’자가 어두에 나오면 ‘으’나 ‘을’을 선행시켜 표기했습니다. 예컨대 ‘Ruler’는 ‘으룰러’, ‘Rice’는 ‘으라이쓰’라 했어요. 혀를 말아야 하는 영어의 ‘알’(R) 발음을 ‘으ㄹ’로 표기한 겁니다. ‘L’은 ‘엘’로 표기되지만 어두에 나오면 ‘을’이 됩니다. 그래서 ‘Love’는 ‘을노ㅇ브’가 되는 겁니다.
이런 영어교육의 결과였을까요. 일본외교관 시노부 준페이(信夫淳平·1871~1962)는 “한국인은 동양의 언어학자다. 주한 영국대사가 본국정부에 ‘서울에 외국인이 들어온지 14년도 안됐지만 조선인들의 언어능력은 중국·일본인이 절대 따르지 못할 정도’라고 보고했는데,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한반도>·1901년)라고 혀를 내둘렀습니다.
■시험용으로 전락한 영어교육
그러나 이렇게 ‘동양의 어학자’라는 찬사를 받았던 한국인의 영어실력은 한일병합으로 끝장나고 말았습니다.
초대 총독인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1852~1919)는 1911년 8월 1차 조선교육령을 제정하면서 필수과목이던 영어를 선택과목으로 격하시켰습니다. 가르치는 언어도 일본어로 정했죠. 1919년 3·1운동 이후 이른바 문화정치를 채택하죠.
대학설립을 허용하고 영어와 독일어 등 외국어교육을 중등학교에서도 실시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영어는 여전히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수험용이었죠. 그것도 보성고보 학생들의 말마따나 원래 발음이 좋지않은 다나카 같은 일본인 교사가 수험용 문법과 독해 위주로 가르치니 어찌 됐겠습니까.
선교사이자 교육가인 호러스 언더우드(1890~1951)는 1925년 “서울에서 가장 훌륭한 영어 교사는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기보다는 대학입시에 통과하기 위한 퍼즐과 트릭을 마스터하는 사람이어야 했다”고 토로했습니다.
지금까지 100년 이상 진행되어온 잘못된 영어교육의 역사를 짚어보았는데요.
■시민 전체를 영어 전사로?
이쯤에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봅니다.
최근 부산시의 ‘영어상용도시’ 계획이 과연 100년 이상 이어진 영어교육의 잘못을 극복하는 ‘신의 한수’로 작용할까요.
과연 부산시민 전체가 영어를 술술 잘 해야 이른바 글로벌 시민으로서 자격을 갖추게 된다는 걸까요. 그래서 부산시 어느 곳에서나 영어가 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는 건가요. 그럼 다시 한가지 묻고 싶은데요.
다른 지자체에서 시도된 영어마을 사업은 물론 공문서를 영어로 작성하고, 회의를 영어로만 진행했던 갖가지 시도는 왜 실패로 돌아갔을까요. 지자체 차원에서 사업을 추진, 혹은 강행했기 때문입니다.
요즘이 어떤 세상입니까. 물론 교과 과정에서 영어몰입식 교육을 하든, 어쩌든 이른바 ‘글로벌’ 기준에 맞게 가르칠 필요는 있을 겁니다. 그러나 사회에 나와서는 어떻습니까. 영어가 더 필요한 사람은 더 심화된 교육을 받으면 됩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합니다. 지자체가 나서서 시민 전체를 ‘영어 전사(戰士)’로 만들려고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시장과 교육감이 나서고, 시 전체가 나서면 특별히 영어가 필요 없는 공무원들까지 ‘무능한 사람’으로 찍히지 않겠습니까.
외국물 좀 먹었다고 해서 우리 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암’ ‘암’ 하면서 혀를 꼬는 사람들만 대접 받을 수 있죠. 물론 글을 제대로 된 영어로 외국에 알리는 사람도 있어야죠. 그러나 멋진 표현의 우리 말로 글을 쓰는 사람이 우선 필요합니다.
그리고 시장을 비롯한 시 차원에서 자꾸 ‘영어, 영어’하면 어찌 될까요. 가뜩이나 판을 치는 국적 불명의 영어가 풍년을 이루게 되겠죠. 아무리 ‘공용(Official)’이 아니라 ‘상용(Common)’이라고 주장해봐야 부산시 차원에서 나선다면 자연스레 ‘Official(공무)’, 즉 ‘공무상’과 ‘공용’이 되는 거니까요. 벌써 외국어 오·남용 1위 도시가 되었다면서요. 대한민국 제2의 도시가 자칫 ‘꼴값영어’가 판치는 도시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경향신문 히스토리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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