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식용 금지를 신중하게 검토할 때가 아닌가요.” “개고기송은 이제 그만 불러주세요.”
최근 개고기와 관련된 뉴스가 두 건 올라왔네요. 첫번째는 애견인으로 알려진 문재인 대통령이 김부겸 국무총리로부터 유기 반려동물 관리체계와 관련한 보고를 받고 ‘개 식용 금지를 신중하게 검토할 때가 아니냐’고 언급한 건데요.
또하나는 축구스타 박지성씨가 “개고기송은 이제 그만 불러 달라”고 간청했다는 소식입니다. ‘개고기송’은 박지성씨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활약 당시(2005~2011) 맨유팬들이 부른 ‘박지성 응원가’를 일컫는데요.
■“리버풀 애들은 임대주택에서 쥐를 잡아먹거든…”
“Park~ Park~ (박지성~ 박지성~) where ever you may be (네가 어디에 있든) you eat dogs in your country (너희 나라에서는 개를 먹지) It could be worse, you could be scouse (네가 리버풀 애들이라면 더 심해질 수도 있어) eating rats in your council house(걔들은 임대 주택에서 쥐를 잡아먹거든…).”
전체적인 맥락은 전통의 라이벌인 리버풀 팀을 조롱하는 내용인데요. 그러나 아무래도 ‘개고기’ 가사가 ‘한국인 비하가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죠. 최근 맨유-울버햄프턴 전에서 맨유팬들이 황희찬 선수를 향해 뜬금없이 이 개고기송을 불렀답니다.
그러자 맨유의 글로벌 앰배서더로 활약중인 박지성씨는 맨유 구단의 ‘UTD 팟캐스트’ 인터뷰에서 그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박지성씨는 “선수 시절엔 내 자신만의 응원가라서 받아들였지만 한국에서 개고기 식용은 아주 오랜 과거의 풍습”이라면서 “(개고기송은) 한국인들에게 인종적인 모욕일 수 있다”고 자제를 촉구했습니다.
복날도 지났는데요. 현직 대통령과 세계적인 축구스타 출신, 두 분의 발언으로 다시 한 번 개고기, 즉 개식용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게 되었네요.
■국왕비서실에 발탁된 ‘개고기 주사’
사실 개와 개고기를 둘러싼 역사는 뿌리가 깊습니다. 먼저 조선조 중종(재위 1506~1544) 때의 일화를 먼저 전하죠. 이팽수라는 인물의 별명이 ‘가장주서(家獐注書)’였습니다. ‘가장’은 ‘개고기’를 뜻하고, ‘주서’는 정7품의 벼슬이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주사(6급·주무관)’ 정도 될까요. 한마디로 이팽수는 ‘개고기 주사’라는 별명을 들었던 겁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1534년(중종 29) 이팽수가 승정원 주서에 임명됐는데요. 그런데 <중종실록>의 사관이 발령기사를 전하면서 심상치않은 논평을 얹어놓습니다. 봉상시 참봉(지금의 9급)이던 이팽수가 고향 어른이자 당대의 권력가인 김안로(1481~1537)의 뒷배로 요직 중의 요직인 국왕비서실(승정원)의 7급으로 발탁됐다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팽수가 크고 살찐 개를 골라 개고기를 지극히 좋아하는 김안로에게 바쳤다는 겁니다. 그래서 김안로가 이팽수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청요직에 올랐다는거죠. 사관은 이 개고기 뇌물사건을 소개하면서 “사람들은 그런 이팽수를 ‘가장주서’(개고기 주사)라 불렀다”고 비아냥댑니다. 그런데 <중종실록>은 더욱 웃기는 일화를 얹어놓습니다.
봉상시 주부(정 6품)이던 진복창이라는 인물이 개고기 뇌물로 출세한 이팽수를 벤치마킹했는데요. 그 역시 김안로에게 ‘개고기 구이’로 접근했는데요.(1536년) <중종실록>은 “진복창은 좌중에게 김안로가 개고기를 좋아하는 사실을 자랑삼아 떠벌였다”고 기록합니다. 그러나 진복창은 발탁되지 못했는데요. 그 이유가 웃깁니다.
“진복창은 김안로의 최애요리인 ‘개고기 구이(견적·犬炙)’을 바쳤지만 발탁되지 못했다. 사람들이 ‘개고기 구이로 아부하는 실력이 이팽수보다 못했기 때문’이라고 수근댔다.”(<중종실록>)
권력자에게 앞다퉈 개고기 요리를 뇌물로 바치는 행위도 웃기지만, 개고기라면 사족을 못쓴 ‘개고기 애호가’가 있었다니 말입니다. 김안로야말로 빗나간 개고기 사랑의 전형이라 할 수 있겠네요.
■개고기 마니아였던 정약용과 박제가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어땠을까요. 1811년(순조 11) 다산은 흑산도에서 유배생활 중인 형(정약전·1758~1816)에게 ‘개고기 예찬론’을 펼친 편지를 보냅니다.
“(형님은) 짐승고기는 도무지 먹지 못하고 있다고 하는데…섬 안에 산개가 천마리도 넘을 텐데 저라면 닷새에 한마리씩은 삶아 먹을텐데….”
다산은 “1년 366일에 52마리의 개를 삶아 충분한 고기를 먹을 수 있는…흑산도에서 오히려 고달픔과 괴로움을 스스로 택하고 있다”고 형을 답답해했습니다. 다산의 편지에는 개의 사냥법과 요리법까지 아주 자세하게 설명했다.
“사방 가장자리에 쇠낫을 꽂은 덫을 만들어 그 안에 둔 미끼를 문 개를 잡습니다. 미끼를 문 개가 몸을 움직이면 찔리기 때문에 끝내는 걸리게 되어…. 달아매어 껍질을 벗기고 창자나 밥통 외에는 절대 씻지 말고 곧장 가마솥 속에 넣어서 맑은 물로 삶습니다. 삶은 뒤에는 일단 꺼내놓고 식초ㆍ장ㆍ기름ㆍ파로 양념을 하여 다시 볶고, 삶아서….”
그런데 다산은 편지의 말미에 뜬금없이 북학파 실학자 박제가(1750~1805)를 소환합니다.
“(말씀드린 요리법이) 바로 박초정(박제가의 호)의 개고기 요리법이라고 하는 겁니다.”
다산 때문에 초정 박제가 역시 다산처럼 ‘개고기 마니아’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됐습니다.
■정조 암살미수 사건에 연루된 개고기
왕실 잔치에도 개고기 요리가 올랐습니다. 정조(1776~1800)가 화성행차 도중에 베푼 혜경궁 홍씨(1735~1815)의 회갑연에 ‘개고기찜(狗烝)을 올린 기록(<원행을묘정리의궤>)이 있습니다. 이밖에도 개고기를 둘러싼 별의별 이야기가 실록 등의 사료에 등장합니다. 정조 즉위(1776년)와 함께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1735~1762)를 죽음으로 내몬 홍계희(1703~1771) 가문이 몰락하는데요. 그러자 ‘정조 시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데요.
그런데 거사 과정에서 웃지못할 일화를 남깁니다. 1777년(정조 1) 7월28일 정조의 이복동생 이찬(1759~1778)을 추대하는 반역의 무리는 대궐밖 ‘개잡는 집(屠狗家)’에서 개장국을 사먹고(買吃狗醬) 대궐로 잠입합니다. 말하자면 거사를 앞두고 보신탕집에서 개고기 파티로 ‘최후의 만찬’을 펼치며 결의를 다진 거죠. 그러나 거사는 실패로 돌아가죠. 임금이 밤새도록 책을 읽고 있던 존현각 지붕을 뚫고 시해할 작정이었지만 발각되고 말았죠. 그런데 미수에 그친 일당이 이튿날 모인 곳도 바로 최후의 개고기 파티로 결의를 다진 ‘개잡는 집’이었답니다. 일당은 이곳에서 다시금 거사계획을 세웠지만 도중에 일망타진됐죠.(<명의록>)
그럼 불교국가인 고려는 어땠을까요. <고려사>를 들춰보니 무척 냉소적인 기사가 보이네요.
“(무신) 김문비(생몰년 미상)는 항상 ‘개를 구워서(燎狗)’ 대나무 조각으로 개털을 긁어 버리고 즐겼다. 만년에는 온몸에 종기가 나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대나무 조각으로 자기 몸을 긁게 하다가 죽어갔다.”는 겁니다.
■개고기 식용으로 추태부린 외국인
개고기 식용으로 물의를 빚은 외교관의 추태가 이유원(1814~1888)의 <임하필기>에 나와있네요.
즉 연행사(사신)의 명을 받고 연경(베이징)에 파견된 심상규(1766~1838)는 때마침 복날이 다가오자 개고기가 생각났답니다. 그러나 당시 청나라 사람들은 개고기를 먹지 않았답니다. 이유가 있었는데요.
청나라를 건국한 태조(누루하치·1616~1626)를 둘러싼 전설 때문이었다는데요. 즉 누루하치가 전쟁에서 불에 타 죽을 지경이었는데 개가 나타나 온몸에 물을 적셔 살려냈다는 겁니다. 그래서 청나라에서는 개가 죽으면 땅에 묻어주는 풍습이 생겼다는데요.
그러나 입이 근질근질했던 심상규는 “복날이니 삶은 개고기를 팔라”고 요청했습니다. 당연히 연경 사람들이 깜짝 놀라 팔지 않았겠죠. 하지만 심상규는 개의치 않고, 그릇을 빌려다 개고기를 삶았습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연경 사람들은 “개고기를 삶은 그릇을 모두 내다 버렸다”고 합니다. 외교관이 남의 나라 땅에 특사로 가서 혐오식품을 스스로 해먹은 꼴이 된거죠. 나라망신 톡톡히 시킨겁니다.
■2700년 된 복날 개고기의 유래
그렇지만 개고기를 먹는 풍습을 전한 사람들이 다름아닌 중국인들이었습니다.
복날의 유래는 기원전 675년(진나라 덕공 2)까지 올라가는데요. “덕공 2년, 복일(伏日)을 정해 개를 잡아 열독(熱毒), 즉 사람을 해치는 뜨거운 독기를 제거했다.(以狗禦蠱)”는 <사기> ‘진본기’의 기록이 있습니다. <사기>의 주석서인 <사기집해>와 <사기정의> 등은 복날의 기원을 흥미롭게 풀어놓았는데요.
“초복에 제사를 재낼 때 개를 읍(邑)의 4문 앞에 걸어놓았다.(祠社책狗邑四門也) 사람을 해치는 열독과 악한 기운을 물리치려고 개를 걸어놓는 것이다.”
여기서 언급된 ‘책(책)’은 기둥에 묶어놓고 찔러 죽이는 고대의 형벌 중 하나인데요. 한마디로 ‘십자가형’이죠.
잔인하죠. 지금부터 2700년 전 진나라 사람들이 성의 4대문에 개를 못박아 걸어두어 열독과 악기를 물리쳤다는 거니까요.
그러나 이것은 까마득한 옛날,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1960~70년대 국내에서도 개를 매달아놓고 몽둥이도 때려 죽이는 일이 있었습니다. 청와대 인근 산동네인 청운동에 살던 제가 실제로 심심치않게 목격했는데요. 지금도 죽어가는 개들의 비명소리가 귓전을 때릴 정도로 충격적이었습니다.
■이열치열의 보양식
그렇다면 왜 복날에 하필 개를 잡았던 걸까요.
초복은 하지가 지난 뒤 세번째 경일(庚日)이고, 중복은 네번째 경일이며, 말복은 입추 뒤 첫번째 경일입니다. 그런데 천간(天干)의 하나인 ‘경’은 오행으로 치면 쇠(金)에 해당하구요. 오행은 서로 대립하면서도 균형을 이루는데 불(火)이 쇠(金)를 녹이기(克) 때문에 ‘화극금(火克金)’이라 합니다. 그러니까 쇠의 기운이 강한 경일에는 화기가 강한 음식을 먹어서 눌러줘야 하는거구요.
그런데 개는 태양, 양기를 가리키는 ‘양(陽)’을 뜻하는 ‘가축(狗陽畜)’이라 합니다. 그러니 개가 이열치열에 딱 맞는 음식인 거죠. 다른 해석도 있답니다. 가을철을 상징하는 금(金)의 기운이 나오려다가 아직 물러나지 못한 여름의 화(火)를 만나 바싹 엎드려 복종(伏)한다는 뜻이라는 겁니다. ‘엎드릴 복(伏)’를 보면 사람 인(人)변에 개 견(犬)자 잖습니까.
그리고 복날의 기원이 진나라에서 시작됐지만 개고기를 먹는 풍습은 꽤나 오래된 것 같습니다.
<예기> ‘월령’이나 <식경>은 “음력 7월에는 음식으로 마(삼)과 개고기를 먹는다.(食麻與犬)”고 했습니다. <논어>는 “제사에 개고기를 쓴다”고 했고, <소학>은 “제사와 손님 접대에 군자는 소를 쓰고, 대부는 양, 선비는 개를 쓴다”고 했습니다. 한나라를 세운 한고조 유방(기원전 202~195)은 젊었을 때 ‘개고기 요리’를 사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방을 도와 천하통일의 일등공신이 된 번쾌(?~기원전 189)의 원래 직업은 ‘개백정’이었습니다.
아마도 젊은 시절 백수건달이었던 유방은 번쾌가 잡은 개고기를 먹었겠죠. 번쾌는 훗날 ‘유방의 부인(여 태후)’의 여동생인 여수와 결혼했는데요.(<사기> ‘번역등관열전’>) ‘개백정 번쾌’의 깜짝 출세기입니다.
■몬도가네의 유래는 ‘개같은 세상’
개고기를 흔히 ‘보신탕’이라 했죠. 아닌게 아니라 <동의보감>은 “개고기는 성질이 따뜻하고 독이 없고, 오장을 편하게 한다. 혈맥을 조절하고 장과 위를 튼튼하게 한다. 골수를 충족시켜 허리·무릎을 따뜻하게 하고 양도(陽道)를 일으켜 기력을 증진시킨다”고 설명했습니다. 한마디로 정력에 좋다는 뜻이어서 2700년 가까이 사랑을 받아온 것 같아요.
아직 개식용을 찬성하는 쪽도 그렇게 만만치만은 않다는 여론조사가 발표되었더라구요.
그러나 최근들어 좀체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보신탕 문화가 요즘들어 급격하게 쇠퇴일로에 접어든 것 같아요. 아무래도 개를 사람과 더불어 사는 반려동물로 여기는 풍조가 대세를 이뤄가고 있습니다. 강아지를 직접 키우고 있거나, 혹은 키우고 있는 이들을 친지나 이웃으로 두고 있는데요. 그런 반려동물을 식용으로 먹는다? 이건 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한가지 첨언할게요. ‘몬도가네’라는 용어 있죠. 1962년 이탈리아의 다큐멘터리 영화 제목(‘몬도카네·Mondo cane’)에서 따온 말인데요. 세계 각국의 괴기적인 문화현상을 고발한 영화라는데요. 흥미로운 것은 이 ‘몬도카네’는 우리 말로 ‘개의 세계’, 혹은 ‘개 같은 세상’이라는 뜻이라네요. 경향신문 히스토리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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