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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아름다운 강산'을 부를 자격

신중현씨의 ‘아름다운 강산’을 건전가요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다.

 

암울했던 유신체제의 와중에 ‘하늘은 파랗게…손잡고 나가자…새 희망을…’ 운운하는 희망가를 불렀으니 그렇게 생각할만도 하다.

 

하지만 이 곡이 1975년 신씨의 또다른 대표곡인 ‘미인’ 등과 함께 금지곡으로 낙인찍힌 사실을 아는 이는 적다. 대체 무슨 곡절인가.

 

신중현씨는 토속적인 한국록을 만들자는 뜻에서 그룹이름을 '신중현과 엽전들'이라 했다. 

1970년대 초 연예인협회 그룹사운드 분과장이던 신중현씨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박정희 대통령) 각하를 위한 노래를 한번 만들어 달라”는 청와대의 전화였다. 그러나 오로지 ‘한국적인 록’만 정신을 쏟았던 신중현에게는 뜬금없는 요구였다. 단번에 거절했다.

“생리에 맞지 않는 곡입니다. 제가 할 일이 아닙니다.”

이번에는 집권당인 공화당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힘없는 대중음악가가 버티기 힘든 압력이 계속 됐다.

 

그래도 ‘각하 찬양’의 곡은 차마 쓸 수 없었다. 차라리 멋들어진 ‘대한민국 찬양’의 노래를 만들자고 생각했다. 신씨는 꼬박 일주일 협회 사무실에 틀어박혀 새 곡에 매달렸다.

 

마침내 불후의 명곡인 ‘아름다운 강산’이 탄생했다. 그룹 ‘더 멘’ 시절이었다. 1972년 완성된 곡을 TV에서 선보이기로 했다.

 

그러나 장발이 문제였다. 궁리 끝에 묘안이 나왔다.

 

‘귀만 보이면 된다’는게 단속기준이니 머리핀을 꽂아 머리단을 올리면 되는 게 아닌가. 대신 리드싱어인 박광수씨만 삭발을 단행했다. 당시 MBC PD도 대단했다.

 

‘아름다운 강산’의 연주 모습을 장장 18분간 방영했다. 심지어 머리핀 꽂은 모습까지 화면에 잡았다.

 

김추자씨가 부른 '거짓말이야'의 댄스모습. 손가락으로 찌르는 안무를 보고, 북한의 고정간첩에게 보내는 신호라는 등의 헛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반항의 몸짓이었다. 시쳇말로 ‘머리 좀 깎으라니까 배코 친’ 격이었다. ‘더 멘’을 해체한 뒤 이듬해(1973년) 결성한 그룹 이름을 ‘신중현과 엽전들’이라 지었다.

한국인을 가장 비하한 이름(엽전)으로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래 가장 토속적인 한국의 록이다. 그 맛 좀 봐라’는 뜻이었다.

전통의 5음계(궁상각치우)만을 사용한 각설이 타령조의 ‘미인’이 탄생했다.

 

100만장이 팔린 ‘미인’은 시중에서 ‘한번 하고 두번 하고 자꾸만 하고 싶네’하는 선정적인 가사로 바뀌더니 급기야 박정희 정권의 장기집권을 꼬집는 풍자로 탈바꿈했다. 정권의 입장에서 눈엣가시였다.

미운털이 박힌 신중현씨는 1975년 대마초 흡연 혐의로 철퇴를 맞았고, 그의 곡 22곡이 금지곡으로 지정됐다. ‘미인’의 표면적인 금지 사유는 ‘퇴폐’와 ‘가사저속’이었다. 

‘거짓말이야’는 창법저속과 불신감 조장으로 금지됐다. 김추자씨 특유의 창법이 퇴폐적이고 저속하며, ‘거짓말이야’를 외침으로써 불신감을 조장했다는 것이다.

 

특히 김추자씨의 손동작이 북한의 고정간첩에게 보내는 신호라는 웃지못할 이야기도 파다하게 퍼졌다. 김정미씨가 부른 ‘담배꽁초’는 수준이하의 가삿말을 문제삼았는데, 공식적인 이유는 ‘치졸’이라 했다.

엊그제 친박단체의 집회에서 ‘아름다운 강산’이 연주되자 신중현씨의 아들 신대철씨가 SNS에 분노의 글을 남겼다.

‘박사모, 어버이연합 따위가 불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고심 끝에 만든 가사 가운데 ‘손잡고 가보자 달려보자, 저 광야로. 우리들 모여서 말 해보자. 새 희망을’ ‘오늘도 너를 만나러 가야지 말해야지…영원한 이곳에 우리의 새꿈을 만들어 보고파’를 떠올려보자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신대철씨의 말마따나 ‘아름다운 강산’은 민주주의의 실현을 꿈꾸는 이들이 모여 새희망을 만들어가는 노래임이 틀림없다. 다음번 촛불집회 때 신대철씨의 ‘아름다운 강산’을 들어보고 싶다.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