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쇼윈도 부부’ 원앙의 수난
원앙계(鴛鴦契)라는 말이 있다. 송나라 강왕 때(재위 기원전 329~286)까지 유래가 올라간다.
설화집인 <수신기>에 따르면 강왕의 시종 중에 한빙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런데 한빙의 부인인 하씨는 절세미인이었다.
강왕은 하씨 부인에게 눈독을 들여 결국 강제로 빼앗았다. 그러나 한빙과 하씨 부인은 서로를 잊지 못했다. 한방이 스스로 목숨을 끊자 아내 하씨도 “제발 남편과 합장시켜달라”는 유언을 남긴채 자결했다.
하지만 질투심이 발동한 강왕은 훗날 두 남녀를 합장시키지 않았다. 마주 보는 곳에 무덤을 만들었다. ‘너희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룻밤 사이 두 무덤에서 커다란 나무 두 그루가 자라더니 급기야 뿌리와 가지가 엉켜붙었다.
또 원앙 한 쌍이 나무 위에 집을 짓고 구슬피 울었다. 사람들은 원앙을 부부의 영혼이라 여겼고, 나무를 상사수(相思樹)라 했다. 이후 원앙계는 금슬좋은 부부관계를 일컫는 말로 통용됐다.
이뿐이 아니다. 원앙와(瓦)는 암키와·수키와의 조합을, 원앙대(隊)는 2열 종대의 행군 모습을, 원앙몽(夢)은 남녀가 서로 화합하는 꿈을 가리킨다.
덩굴로 자라서 노란 꽃과 흰꽃으로 마주하며 쌍으로 피는 꽃을 원앙초(草)라 한다. 원앙이 서식하는 물가를 일컫는 원앙저(渚)는 미인들이 많이 모인 곳을 비유한다.
성호 이익은 “오로지 원앙에서만 남편과 아내의 절조를 볼 수 있다”(<성호사설>)고 했다.
1982년 예쁜 겉모습과 ‘원앙=금슬’의 스토리텔링, 그리고 희소성 덕분에 천연기념물(327호)로까지 지정됐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착각이었다. 사람들은 원앙의 아름다운 겉모습에 2300년 이상 속아 살았던 것이다. 원앙은 오히려 금슬과는 상극이다.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병원 부장에 따르면 수컷들은 암컷의 낙점을 받으려고 온갖 아양을 다 떤다.
그러나 교미가 끝나 암컷이 알을 품게 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 다른 암컷을 찾아 헤맨다. 이것이 해마다 반복된다.
원앙으로서는 종족번식을 위한 몸부림이지만 금슬의 상징으로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에게는 배신이 아닐 수 없다. 그야말로 난교를 밥먹듯 하는 바람둥이이자 쇼윈도 부부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어느덧 각지에 사육농가들이 생길 정도로 흔해졌다.
최근 서울대공원이 키웠던 원앙 101마리가 모두 살처분됐다. 음성판정을 받은 원앙도 52마리에 달했지만 횡액을 피할 수 없었다. AI(조류인플루엔자)를 쉽게 퍼뜨릴 수 있는 오리류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쉽게 사육될 정도로 개체수도 급증했으니 차제에 천연기념물에서 해제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말까지 나온다. 원앙을 둘러싼 환상이 깨졌기 때문일까. 바야흐로 원앙에게 수난의 역사가 시작되고 있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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