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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돌수저라도 물어라" 흙수저 부모의 외침

신분사회를 상징하는 ‘수저론’은 서양의 산물이다.

 

영어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born with a silver spoon in his mouth)’에서 유래했다.

1700년 이전까지 사람들은 개인 수저를 들고 다니며 밥을 먹었다.

 

은수저는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는 멤버십의 표현 쯤으로 치부됐다. 훗날 상류계층임을 인증하는 여권과 운전면허, 신용카드의 구실까지 했다.

 

록밴드 CCR이 발표한 1969년 작 '‘Fortunate Son’. '행운아' 혹은 '신의 아들' 쯤으로 번역된다. 가사 중 '은수저'가 나오는데 특권층의 자녀를 가리킨다.

1969년 미국의 록밴드 CCR이 발표한 ‘Fortunate Son’의 가사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금수저 흙수저’를 연상시킨다. 
 

‘어떤 이는 날 때부터 은수저를 들고 태어나지…난 아냐. 백만장자의 아들 아냐. 장군의 아들 아냐. 상원의원의 아들 아냐. 신의 아들 아냐.’

 

가만 보면 ‘Fortunate Son’은 행운아 혹은 신의 아들로 번역할 수 있겠다.

이 곡의 작사·작곡가인 존 포거티는 1968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의 아들과 리처드 닉슨의 딸

이 결혼하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 당대 미국은 베트남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었다.

 
“지도층은 미국을 위한 성전에 나서야 한다고 젊은이들을 다그쳤다. 참전이 젊은이들의 덕목이 되었고, 어느덧 미국민의 80%가 전쟁을 지지했다. 그러나 정작 징집영장을 받은 이들이 누구였던가. 우리는 그걸 깨닫지 못하는 사이 전쟁터로 행하고 있다.”


 

포거티는 힘없는 시민들만 전쟁에 내몰고 자신들은 오불관언하며 호의호식하는 ‘은수저’들을 맹비난한다.    

 

“왜 참전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모른채 전쟁터로 나갑니다. 난 화가 벌컥 나서 침상에 앉아 곡을 썼습니다. ‘난 아니야. 난 아이야.’ ‘난 상원의원의 아들이 아니야. 단 20분 만에 곡을 만들었습니다.”

 

반전문화의 아이콘이 된 이 곡은 잡지 ‘롤링스톤즈’가 선정한 ‘500대 명반’ 중 99위에 랭크됐다.

조선에서도 금수저보다는 은수저 언급이 많았다. 은은 항균에 좋은 특성을 갖고 있고, 맹독에 반응해서 색이 변하기 때문에 임금의 수라상에 올려졌다. 독살을 막기 위함이었다. 

1988년 앤 리처즈 텍사스주 재무장관은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공화당의 조지 부시를 겨냥해서 이렇게 쏘아붙였다.

 

“가련한 부시! 말릴 수 없어요. 은발을 입에 물고 태어났거든요.(Poor George. he can’t help it. He was born with a silver foot in his mouth)”

 

영어에서 put one’s foot in one’s mouth는 ‘실수를 연발한다’ ‘멍청하다’는 뜻을 갖고 있다.

 

리처즈는 ‘은수저’ 자리에 ‘은발’을 언급함으로써 부시가 명문가 출신이지만 보고 배운게 없어 멍청한 실수만 연발한다고 풍자한 것이다.

 

그런 서양의 은수저가 한국에서 금수저로 바뀌었다.

 

그것도 모자라 금(소득 상위 1%)·은(3%)·동(7.5%)·흙수저(그 이하)로 세분화됐다.

 

한국사회가 역전불허의 ‘넘사벽’ 신분 사회로 세분화·고착화했음을 웅변해준다. 아직 국립국어원의 표준

국어대사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단어들이니 신조어가 틀림없다.

 

최근 돌잔치 선물로 ‘금수저’가 유행이라고 한다. 전통적인 돌선물인 금반지를 앞섰다고 한다. 이유가 실소를 자아낸다.

 

어차피 못난 부모를 만나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못한 아기 아닌가.

 

그러니 돌잔치에서라도 금수저를 물게 해준다는 눈물겨운 뜻이 담겼다. ‘금수저’가 아닌 ‘돌수저’를 물린 부모의 애틋한 마음을 아기가 알게 될까.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