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아인슈타인이 100년 전 예견한 중력파가 마침내 검출됐다. 세계과학계는 우주를 보는 새로운 창이 열렸다고 흥분했다.
이후 수많은 전문가들이 중력파 검출의 의미를 열심히 설명했다. 하지만 너무 어려워서 눈에 침침하도록 들여다봐도 역불급이었다. 필자도 머리나쁨을 한탄하면서 깊은 절망에 빠졌다.
그러다 어떤 책에서 다소간 위안이 되는 구절을 찾았다. 아인슈타인도 중력이론(일반상대성 이론)을 체계화하는데 8년 이상 걸렸으며, 그 이론을 이해한 과학자가 전세계를 통틀어 12명도 안된다는 대목이었다. 무릎을 쳤다. 그래, 연작이 홍곡의 뜻을 그리 쉽게 알 수 있겠는가.
그렇게 고차원의 이야기를 고작 원고지 몇 장으로 정리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래도 중력파를 필자 같은 문외한의 눈높이에서 설명할 수는 있지 않을까. 도전해보기로 했다. 팔자에 없는 관련 책들을 눈이 빠져라 읽고, 마침 <중력파> 책을 낸 오정근 박사의 도움도 받았다.
만약 어린아이가 쇠공 곁에 있으면 시공간의 휘어짐 때문에 쇠공을 향해 기울어지는데, 이것이 바로 중력이라 했다.
또한 쇠공의 질량이 커지면 커질수록 시공간의 휘어짐은 더욱 커지며, 그것이 극한대로 가면 시간과 거리는 물론 빛까지도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블랙홀의 개념이다.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차이
먼저 뉴턴의 만유인력(중력)의 법칙과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은 무엇이 다른가. 뉴턴은 중력이란 사과가 지구로 떨어지는 것처럼 두 물체가 서로 잡아당기는 ‘힘’ 때문에 생긴다고 설명했다. 힘과 힘의 작용이라 한 것이다. 뉴턴은 또한 시간과 공간은 절대적이라 했다. 어떤 경우든 시공간은 바뀔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중력은 ‘힘’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시공간도 바뀔 수 있다고 했다.
즉 질량을 가진 물체 때문에 시공간이 휘어지며, 그 시공간을 따라 가는 빛도 휘어진다고 생각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아이들이 콩콩 뛰며 노는 트램펄린을 연상시켜보자. 트램펄린(우주공간) 위에 쇠공(태양 등)을 놓는다 치자. 그러면 쇠공이 닿는 면은 움푹 들어갈 것이고, 닿는 면을 따라 곡선이 그려질 것이다. 이 곡면이 바로 아인슈타인이 설명하는 시간과 공간의 휘어짐이다. 이 시공간을 따라가는 빛도 휘어질 것이다.
만약 개미가 이 곡선면을 따라 간다면 직선면보다 거리는 길어지고, 시간은 느려질 것이다. 또한 쇠공 가까이 어린아이가 서있다고 치면 그 아이는 경사면을 따라 기울어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다. 중력이 ‘힘’ 때문이 아니라 쇠공이 만들어낸 ‘시공간의 휘어짐’ 때문에 생긴다는 것이다.
■뉴턴의 법칙은 우주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쇠공의 질량이 커지면 커질수록 중력도 커져 시간과 공간의 휘어짐 정도도 커질 것이다.
물론 아인슈타인 때문에 뉴턴의 법칙이 폐기되는 것은 아니다. 중력의 세기가 크지 않을 경우 뉴턴의 법칙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중력의 세기가 강한 우주에서는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만 통한다. 아인슈타인은 인류의 시야를 4차원, 즉 우주의 세계로 넓힌 것이다.
과학계는 지난 100년간 중력의 세기에 따라 시공간의 흐름이 달라지고 빛이 휜다는 것 등 아인슈타인의 가설을 하나하나 증명해왔다. 하지만 한가지 남아있는 과제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중력파’였다.
트램펄린 위에 쇠공을 던진다고 치자. 그러면 주변으로 파문이 생길 것이다. 이것이 아인슈타인이 예견한 중력파다.
■태초에는 빛이 없었다
만약 우주의 탄생(빅뱅)과, 별의 사멸 과정(블랙홀 충돌 및 합병·초신성 폭발·중성자별의 맥동) 등 격변이 일어나면 어찌 되는가. 엄청난 중력파 물결이 우주에 퍼질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지구까지 도달하는 중력파 크기가 극미했기 때문에 관찰하기 어려웠다. 이번에 감지된 중력파도 13억 광년 떨어진 블랙홀 충돌 때 발생한 것인데, 그 크기는 10의 21거듭제곱분의 1(10의 -21제곱)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중력파로 대체 무엇을 볼 수 있단 말인가. 인류는 지금까지 빛, 전파, X선을 탐지하는 전자기파 천문학으로 우주를 관측했다.
하지만 전자기파는 본질적으로 물질을 통과하기 어려운 속성을 갖고 있다. 예컨대 빅뱅 때 발생한 엄청난 에너지층이 빛과 같은 전자기파를 가둬버린다. 인류가 빅뱅으로 방출된 전자기파를 관측하는 데는 성공했다지만, 그것은 빅뱅 후 에너지가 식어버린 뒤, 즉 38만년 뒤의 빛이었다. 두터운 에너지 층이 걷힌 뒤에야 빛과 같은 전자기파가 발산한 것이다. 인류는 우주 탄생 후 38만 뒤의 빛만 보고 있는 것이다. 그 뿐인가. 빛까지도 빨려 들어가는 엄청난 중력이 작용하는 블랙홀의 전자기파도 물론 관측할 수 없다.
■중력파로 우주의 오케스트라를 듣는다
그러나 중력파는 우주나 별의 생성과 사멸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 우주로 퍼진다. 중력파는 전자기파와 달리 어떤 물질의 간섭도 받지않는다. 그러니 인류는 이 중력파의 파형으로 다양한 우주현상을 이해하고, 그것을 소리로도 변환시킬 수 있다. 예컨대 중력파 망원경으로 빅뱅의 원시중력파를 찾아낸다면 어찌 되는가. 빅뱅~38만년 사이의 과정, 즉 우주탄생의 순간을 읽을 수 있다. 빅뱅 뿐이 아니다. 블랙홀 충돌, 초신성 폭발, 중성자별 맥동 등 같은 다양한 우주 현상도 오케스트라의 음향처럼 감상할 수 있다. 블랙홀 내부까지 관측할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 우리는 중력파가 전하는 파동과 소리를 통해, 즉 우주라는 지휘자가 연주하는 다양한 우주현상(블랙홀 합병 혹은 충돌, 초신성 폭발, 중성자별 맥동 등)의 소리와 파동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오케스트라의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비올라 등 다양한 악기의 연주를 듣는 것처럼 말이다.
■중력파는 밥을 먹여준다
그렇다면 또 궁금증이 생긴다. 중력파가 밥먹여 주는가. 오정근 박사는 “먹여줄 수 있다”고 한다. 전자기파가 지금의 통신혁명을 일으켰지 않은가. 중력과 중력파의 힘을 이해하고 조절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모른다는 거다. 전파통신이 도달하지 못하는 그 어떤 곳도 중력파 통신이라면 도달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한가지 더. 수많은 과학자들이 아인슈타인이 내준 중력파 수수께끼에 100년을 매달렸다는 것과, 미국이 지난 1992년 정식으로 시작된 중력파 검출 프로젝트에 1조원 넘게 투자했다는 것이 놀라울 지경이다.
일식현상 관측으로 빛이 휘어진다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아서 에딩턴의 말이 심금을 울린다. “중력파는 생각의 속도로 퍼진다.” 아인슈타인도 늘상 문제 해결을 위해 방안을 서성이며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한다. “잠시 생각해보지.” 경향신문 논설위원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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