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대왕비 신묘년 기사의 숨은 주인공은 ‘반파’이다.”
최연식 동국대 교수는 최근 한국목간학회가 주최하는 정기발표회에서 ‘영락 6년 고구려의 백제침공 배경과 역사적 의미’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최 교수는 논문에서 한국과 일본 학계가 해석을 두고 대립한 고구려 광개토왕비 기록 ‘이왜이신묘년래도□파백잔□□신라이위신민’(而倭以辛卯年來渡□破百殘□□新羅以爲臣民)의 의미에 대한 독특한 접근법을 제시한다.
이 문구는 지금까지도 “왜가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와 백제 □□ 신라를 깨뜨리고 신민으로 삼았다”로 해석됐다. 일본 학계는 이 대목을 두고 고대에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활용했다.
광개토대왕 비문에서 치열한 논쟁을 불렀던 신묘년(391년) 기록. ‘이왜이신묘년래도□파백잔□□신라이위신민’(而倭以辛卯年來渡□破百殘□□新羅以爲臣民) 중 ‘□파’ 부분을 ‘반파’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반파는 한반도 남부지역에 있는 지방을 가리킬 수 있다는 것이다. |최연식 교수 논문에서
그러나 국내 학자들은 “왜가 신묘년에 (침공해) 오자 (고구려가) 바다를 건너 깨뜨렸다. 백제는 신라를 침략해 신민으로 삼았다”는 등으로 해석했다.
왜를 침략의 주체로 보지 않고 백제의 역할을 강조하는 해석이지만 이 또한 문법적으로 매끄럽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최 교수는 “고구려가 백제를 침공한 이유가 명확하게 드러나기 위해서는 백제가 목적어가 아닌 주어가 돼야 하고, 이럴 경우 ‘백잔’(百殘, 백제)은 파(破, 깨뜨리다)의 목적어로 볼 수 없다”며 “‘백잔’이 ‘파’의 목적어가 아니라면, □파는 명사·수동·피동·동명사가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래도’(來渡)의 다음에 장소가 온다는 것을 고려하면 □파는 지명일 가능성이 크다”며 “‘파’ 음이 들어가는 고대 지명으로는 ‘반파’가 있는데, ‘파’ 앞글자를 ‘반’으로 읽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최 교수는 ‘□파’가 지명인 ‘반파’라면 신묘년조 기사는 “왜가 신묘년에 반파로 건너오자, 백제는 신라를 (공격해) 신민으로 삼았다”로 해석된다면서 “반파는 남해안 지역에 있었고, 신라와 적대적 관계를 유지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최교수는 “반파는 포상8국(가야시대 낙동강 하류 및 지금의 경상남도 남해안일대에 있던 8개의 소국)과 동일한 정치세력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최 교수는 “광개토대왕비문의 ‘신묘년’ 기사의 숨은 주인공은 ‘반파’”라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반파는 대립하고 있던 가라가 신라를 끌어들이자 이에 대항하기 위해 왜와 백제를 끌어들여 신라를 공격한 것으로 생각된다”면서 “왜와 백제의 공격을 받게 된 신라는 고구려에 지원을 요청하고 이를 통해 한반도와 주변 세력이 모두 참여하는 국제적 대립구도가 형성됐다”고 보았다. 경향신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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