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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탐사선 주노, 목성의 정체 벗긴다

그리스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주피터(제우스)는 천하의 바람둥이였다.

7번째 아내인 주노(헤라)의 감시망을 피해 이 여자 저 여자를 탐했다.

그런 주피터가 어느 날 이오라는 여인과 사랑에 빠진다.

주피터는 아내의 눈을 피하려고 이오를 암소로 변신시킨 뒤 짙은 구름을 깔아 감춰둔다.

그러나 질투의 화신이 된 아내의 촉은 놀라웠다. ‘구름속 암소’가 된 이오를 기어코 찾아내 처절한 복수극을 펼친다.

목성의 강력한 자기장을 피하기 위해 북극지방으로 접근해 남극쪽으로 나오는 방식으로 나오는 주노.

 

태양계 5번째 행성인 목성을 ‘주피터’, 그 목성을 탐사하는 우주선을 ‘주노’라 각각 이름 붙인 것은 절묘한 어휘선택이었다.
목성은 수많은 여인을 거느린 주피터처럼 무려 67개의 위성을 두고 있으니까….

게다가 지금까지는 목성을 그저 먼발치에서 바라볼 뿐이었다.

지구보다 14배가 강한 자기장, 내부의 핵에서 뿜어져 나오는 극악의 방사선, 여기에 지구보다 318배에 이르는 엄청난 질량에 따른 강력한 중력 등…. 쉽게 다가갈 수 없는 환경이다.

전파 망원경도 통하지 않는다. 전파가 두꺼운 기체가 방어막을 치고 있는 목성의 대기에 반사되지 않고, 그대로 흡수되기 때문이다. 마치 주피터가 자신과 애인의 애정행각을 가리려고 구름을 깔아놓은 격이다.

 

지난 1995년 목성궤도에 진입한 갈릴레오 탐사선 역시 멀리서 목성계 전체를 조망하는 수준에 그쳤다. 지금까지 가스행성인 목성의 내부 정체를 알 길이 없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지난 2011년 발사한 목성 무인탐사선의 이름을 ‘주노’라 한 것이다.

‘구름 속 남편의 바람끼’를 귀신같이 잡아낸 주노처럼 목성의 정체도 밝혀달라는 간절한 바람이 담겨있다. 200㎏의 티타늄을 장착한 ‘주노’는 목성이 뿜어내는 엄청난 양의 자기장과 방사선을 마침내 뚫어냈다. 4년 11개월, 28억㎞를 달린 끝에 목성궤도에 안착한 ‘주노’를 향해 환호성이 터졌다.

 

‘주노, 목성에 온 걸 환영한다(Juno, welcome to Jupiter).

주노는 향후 20개월간 남북극 5000㎞ 상공에서 37번 공전하면서 목성을 속속들이 관측할 것이다. 태양계 형성 초기의 비밀을 간직한 목성의 대기와 물의 양, 고체성분, 질량분포 등….

수십억년간 감춰온 남편(주피터)의 정체를 주노에 의해 낱낱이 공개될 판이다.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