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남편들은 ‘오징어’라는 소리를 곧잘 듣습니다. 그래서 뭐냐고 물었더니 ‘못생긴 남자’라는 뜻이랍니다. 왜 하필 ‘오징어냐’고 또 물으니 평면적이고 윤곽도 뚜렷하지 않는 오징어를 닮았으니 그런 소리를 들어도 싸다는 것입니다. 하기야 고금을 통틀어 오징어 이미지는 좋지 않습니다. 그 어원이 ‘까마귀 도적’ 즉 오적어(烏賊魚)에서 비롯된 것부터가 그렇습니다. 게다가 먹물로 바다를 흐리게 해서 먹이를 잡는다는 비열한 이미지까지 더해졌습니다. 그뿐이 아니라 오징어 먹물로 글씨를 쓰면 처음엔 선명하다가 시간이 흐르면 그 흔적이 떨어져나가 나중엔 빈종이로 변한다는 소리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징어 먹물은 ‘사기계약’ ‘거짓약속’의 대명사가 됐습니다.
하지만 오징어는 억울합니다. 그렇게까지 폄훼될 동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선 오징어는 맛도 좋습니다. 건강에도 그만입니다. 남자의 정력에도, 여성의 월경을 통하게 하는데도 좋답니다. 대체 오징어가 인간에게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주인공인 송중기와 비교해서 ‘오징어 아닌 남편’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안구정화를 위해 드라마 전후 30분간은 눈앞에서 얼쩡대지 말라는 말도 있답니다. 그럴 용의는 있습니다. 다만 한가지만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오징어는 못생겼지만 씹을수록 맛이 난다는 사실을…. 이번 주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주제는 ‘송중기 앞을 얼쩡거리는 오징어 남편의 비애’입니다. 오징어 이야기를 하는 김에 사람을 짐승에 비유해서 욕하고 비난하는 일을 역사적으로 더 찾아보았습니다. 악인의 대명사로 종종 인용됐던 올빼미입니다. 역사적으로 후백제를 세운 견훤과, 천재문인이자 풍운아인 허균, 그리고 노론의 영수였던 송시열 등이 올빼미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 사연 또한 곁들이겠습니다.
오징어는 이른바 ‘국민간식’이라 할 수 있겠다. 국내에서 소비되는 해산물 가운데 명태와 더불어 부동의 1, 2위를 다투고 있다니 말이다.
저 구수한 오징어의 맛을 누가 거부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 명성에 걸맞은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으니 오징어가 사람이라면 매우 억울할 듯 싶다. 요즘엔 아예 못생긴 사람을 ‘오징어’라 한다니 이 무슨 망발이란 말인가. 왜 못생긴 남자를 오징어라 하는지 봤더니 이런 답이 나온다. 오징어처럼 평면적이며, 오징어처럼 윤곽이 뚜렷하지 않은 인물이니 그런 대접을 받아도 싸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징어 폄훼’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약전·정약용은 오징어 박사
오징어 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정약전(1758~1816)·정약용(1762~1836) 형제라 할 수 있는데, 그들 역시 오징어를 백안시했다. 예컨대 정씨(정재원) 집안의 둘째인 정약전은 흑산도 유배시절에 쓴 <자산어보>에서 오징어의 어원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중국 남북조 시절(557~589) 심회원의 <남월지>에 오적어(오징어)의 어원이 나온다. 오징어는 까마귀(烏)를 즐겨 먹는다. 매일 물 위에 떠있다가 까마귀를 현혹시킨다. 즉 날아가던 까마귀는 오징어가 죽어 물이 둥둥 떠다니는 줄 알고 달려들어 쪼려 한다. 그렇지만 그 순간 오징어가 잽싸게 낚아챈 뒤 물 속으로 들어가버린다. 그래서 ‘까마귀 도적’이라는 뜻의 오적(烏賊)이라고 했다.”
그래서 ‘오적어’란 이름을 얻었고, 이것이 오징어가 됐다는 것이다. <자산어보>는 오징어의 생김새 또한 구체적으로 정리한다.
“등에 긴 뼈가 있다. 살은 매우 무르고 연하며, 알이 있다. 주머니 속에 먹물을 가득 채우고 있다. 누군가 침입하면 곧 먹물을 내뿜어서 현혹시킨다. 그 먹물로 글씨를 쓰면 그 색깔이 매우 윤기가 있다. 그러나 오래되면 벗겨져서 흔적이 없어진다. 그러나 바닷물에 넣으면 먹의 흔적이 되살아난다고 한다.”
넷째인 다산 정약용은 1801년(순조 1년) ‘오징어 노래(오적어행)’라는 동물우화를 시로 옮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익을 탐하는 오징어의 유혹을 백로가 끝내 거부하는 내용을 담은 풍자시다. 이 시는 오징어가 백로에게 “자네나 나나 물고기를 잡아먹는 건 마찬가진데 뭐 그리 청백한 척 하얀 자태를 드러내느냐”고 비아냥대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면서 “난(오징어는) 먹물을 뿜어서 고기를 속여 잡아먹어 배가 부른데 그대(백로)는 고운 자태를 뽐내느라 다른 물고기가 다 피해가니 늘 배고플 수 밖에 없다”고 조롱했다. 오징어의 ‘염장 지르는’ 충고는 계속된다.
“자네(백로)는 까마귀 옷을 빌려입고, 하얀 본색을 감추고 적당하게 살게. 그래야 물고기를 산더미같이 잡아 처자식을 먹일 게 아닌가.”
오징어의 조롱섞인 유혹을 보다못한 백로가 쏟아붙인다.
“네 말도 일리는 있다마는(汝言亦有理) 하늘이 나에게 결백함을 주었으며(天旣賦予以潔白) 내가 보기에도 더러운 곳 없는 난데(予亦自視無塵滓) 어찌하여 그 작은 밥통 하나 채우자고(豈爲充玆一寸소) 얼굴과 모양을 그렇게야 바꾸겠나(變易形貌乃如是) 고기가 오면 먹고 달아나면 쫓지 않고(魚來則食去不追) 꼿꼿이 서 있으며 천명대로 살 뿐이지.(我惟直立天命俟)”
다산의 동물 우화시는 오징어가 화를 내고 먹물을 뿜으면서 “멍청하구나. 너야말로 굶어죽어 마땅할 것(愚哉汝鷺當餓死)’이라는 저주에 퍼부으면서 끝난다. 당시 다산은 셋째형인 정약종이 연루된 책롱(冊籠)사건 때문에 곤경에 처했다. 책롱사건이란 최필공이라는 천주교 신자가 정약종의 책롱(책을 넣어두는 농짝)을 옮기다가 발각된 사건이다.
당시 책롱 안에는 천주교 서적과, 성물, 중국인 신부 주문모의 편지 등이 들어있었다. 다산을 비롯한 정씨 형제들은 연좌를 피할 수 없었다. 이에 다산의 지인들이 몇가지 계책을 세워 도와주려 했지만 다산은 끝내 거절했다. 이 사건으로 정약종은 참수 당했고, 다산과 약전은 유배를 당했다. 결국 혼탁한 세상에서도 절조를 지키며 살아가겠다는 다산의 의지가 ‘오징어와 백로의 우화’ 속에 녹아 있는 것이다. 오징어는 먹물로 바다를 흐리게 해서 물고기를 잡는 비겁한 반칙의 동물로 형상화한 것이다.
■‘오징어 먹물 같은…’
다산의 또다른 시들에도 오징어가 곧잘 등장한다.
“묵은 약속 자연히 오징어 먹물 되어버려(宿約自然成적墨) 마음이야 누구인들 농어 순채 생각 없으리.(本心誰不憶로蓴)”(<다산시문집> ‘하일견흥 8수·유하정’)
“남은 더위는 이제 이제는 다 깨어 가는 취기와 같도다.(殘暑今如醉欲醒) 늙은이 언약은 오적묵의 서약이 될까 걱정이요(老約恐成題적誓).”(<다산시문집> ‘송파수작’)
두 편의 시에 등장하는 ‘오징어 먹물’, 즉 오적묵(烏賊墨) 또한 오징어로서는 그리 탐탁치 않은 표현이다. 예전 중국의 강동 사람들은 흔히 먹물 대신 이 오징어 먹통을 써서 계약서를 작성하고 물품을 거래했다. 그런데 이것은 사기였다. 오징어 먹물은 쓸 때는 그 빛깔이 뚜렷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다 말라서 떨어진다. 해가 바뀌면 남는 것은 빈종이뿐이다. 따라서 ‘오적묵’은 ’거짓 약속’, 혹은 ‘사기 계약’을 지칭하는 고사이다.
다산은 강진 유배생활 중에 지은 ‘탐진농가첩’의 첫머리에 오징어 먹물로 ‘탐진농가(耽津農歌)’ 4글자를 쓰면서 “신선한 먹물로 껄끄러운 종이에 쓰면 글자는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고 특별히 강조하기도 했다. 하기야 <자산어보>를 보면 말라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오징어 먹물 글씨를 바닷물에 넣으면 다시 먹의 흔적이 되살아난다고 했다. 그러니 <지봉유설>은 “사람을 간사하게 속이는 자가 오징어 먹물을 쓴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오징어의 다른 명칭이 ‘흑어’ 혹은 ‘묵어’라 해서 내심 속이 까만 인물을 지칭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오징어는 뱃속의 피와 쓸개가 새까맣기가 먹과 같다. 공격을 받으면 먹을 갑자기 내뿜어 흑어라고 한다. 어부들은 동(銅)으로 오징어 모양을 만들고 그 다리를 모두 갈고리로 하면 진짜 오징어가 착각해서 스스로 와서 갈고리에 걸린다. 도리어 사람은 먹을 토하는 오징어를 잡아버린다.”(서유구의 <임원경제지> ‘전어지’)
오징어의 ‘먹물사기’에 사람도 사기로 맞서서 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요즘에도 밝은 빛을 좋아하는 오징어를 역이용해서 잡는다. 즉 야밤을 훤히 밝히는 집어등을 내걸고, 수십개의 낚시가 촘촘히 달려있는 형광의 인공 미끼를 물속에 드리워 잡는 것이다. 오징어는 불빛에 반사되는 인공미끼를 착각해서 끌어안다가 낚시에 걸린다.
■그래도 감미로운 오징어 맛
그런데 아무리 먹물 좀 뿜어댄다고 해서, 이목구비가 뚜렷하지 않다고 해서, 혹은 지나치게 평면적이라 해서 너무 오징어를 폄훼하는 것은 아닐까.
오징어의 맛을 과연 잊을 수 있을까. <자산어보>는 “그 맛이 감미로워 회나 포로 먹으면 좋다”고 칭찬했다. 오죽했으면 1452년(문종 2년) 조선을 방문한 명나라 사신이 가장 먹고싶어했던 해산물이 오징어여서 무려 2000마리를 선물로 건넸다는 기록이 있다.(<문종실록>) 안정복의 <순암집>은 뇌물로 바친 오징어 한 포를 되돌려 준 어느 사대부가 청렴한 관리로 칭송받은 일을 기록해놓기도 했다. 임금에게 진상할 양질의 오징어를 구하려고 전라·경상도 관찰사들이 동분서주했다는 기록도 있다.
예컨대 1472년, 성종 임금은 너무 무리하지 말고 각 도의 처지에 맞는 진상품만을 올려보내라는 명령을 내린다. 전라·경상도 해안에서 잡히는 오징어가 제주도산보다는 작아서 큰 오징어를 얻어 진상하려 하니 그 폐단이 컸다는 것이다. 각 도가 경쟁적으로 큰 오징어를 보내느라 백성들에게 폐단을 끼치는 등 골머리를 썩였다는 방증이다. 1630년(인조 8년) <인조실록>을 보면 진풍정(임금 혹은 왕후를 위한 잔치상) 때 쓸 오징어를 진상하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아직 제철이 아니어서 할 수 없이 다른 물고기로 대체한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오징어는 1478년(성종 9년) 마른 전복, 마른 문어 등과 함께 중국 황제가 요구한 진상품 명목에도 들어있을만큼 고금을 통틀어 사랑을 받았던 먹을거리였음을 알 수 있다.
■정력과 월경에 좋은 오징어뼈
다른 것 다 제쳐두고 맥주엔 치킨이라지만, 곁에 오징어와 땅콩을 곁들여야 금상첨화가 아닌가.
어떤 자료를 보니, 불포화지방산이 들어있는 땅콩을 곁들이면 마른 오징어 속에 함유된 콜레스테롤의 양을 낮춘다니 맛은 물론이고 건강에도 좋다는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오징어는 구수한 맛 뿐이 아니라 몸을 돌보는데도 특효로 꼽혔다.
<자산어보>는 “오징어의 뼈는 곧잘 상처를 아물게 하고 새 살이 나게 한다. 뼈는 또한 말의 상처와 당나귀의 등창을 다스린다. 오징어 뼈가 아니면 고치지 못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동양 최고의 의학서인 <동의보감>의 가르침은 심금을 울린다.
“오징어뼈의 성질은 미지근하고 맛이 짜며 독이 없다. 기운을 돕고 의지를 강하게 한다. 여성의 누혈(淚血·월경이 아닌데 피가 나오는 증상)과 월경을 통하게 한다. 오래 먹으면 정액을 더해주고 자식을 낳게 한다.”
송나라 당신미(唐愼微)의 의학서인 <증류본초> 역시 “오징어 뼈는 하나 뿐인데 부인의 누혈에 주된 치료약”이라고 했으며, 명나라 의서인 <의학입문>은 “황색이 되도록 물에 삶아 껍질을 제거하고 가늘게 갈아 잘 저어서 불순물을 제거한 뒤 햇볕에 말려 사용한다”고 했다.
■오징어를 위한 변명
요컨대 오징어를 허투루 여겨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요즘의 남자들은 배우 송중기와 강동원 같은 꽃미남 배우들과 무시로 비교되면서 ‘오징어’ 소리를 듣기 일쑤다. 요즘의 대세 드라마인 <태양의 후예> 시청을 위해 남편이 반드시 지켜야 할 룰이 있다고 한다. 이른바 ‘앞 뒤 30분 출입금지룰’이란다. 즉 드라마 시작 30분 전, 끝난 뒤 30분 뒤까지 부인의 앞에 얼씬거리지 말라는 것이다. 송중기를 맞이하기 전에 안구를 정화하고, 송중기를 맞이한 뒤의 여운을 느껴야 하는데 웬 ‘오징어’ 남편이 눈앞에서 얼쩡거리면 기분이 잡친다나 어쩐다나.
하기야 송중기 같은 꽃미남 배우와 비교한다면 오징어 아닌 남편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지당한 말씀이다. 그래서 자리를 흔쾌히 비켜주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가지는 알아주면 좋겠다. 비록 오징어는 못생겼지만 씹을수록 구수한 맛을 내지 않는가.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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