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는 1500년 전 신라판 ‘이모티콘’이라 했고, 혹자는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펭수’라 했다. 지난해 12월초 경북 경산 소월리에서 출토된 ‘3면 인면(사람 얼굴) 항아리’를 두고 참새 입방앗거리로 수근댄 표현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토기 항아리 3면에는 다양한 표정의 얼굴 무늬를 만들어놓았다.
경산 소월리에서 확인된 ‘3면 인면 모양 토기 항아리’. 다양한 표정의 얼굴이어서 신라판 ‘이모티콘’이나 ‘신라판 펭수’라는 우스갯소리로 표현됐다. 손환일 서화문화연구소장은 ‘이 얼굴을 1500년전 백성들을 수탈한 가혹한 세리의 표정’으로 해석했다.
그런데 이 항아리에 새겨진 3면의 얼굴이 이모티콘이나 펭수와 같이 귀엽고 선한 캐릭터가 아니라 혹정을 일삼는 ‘세리(稅吏·세금을 징수하는 관리)의 3단 표정’이라는 추론이 제시됐다. 서예 연구자인 손환일 서화문화연구소장은 4월 말 발행될 학술지(<한국고대사탐구> 제34집)에 게재될 논문(‘경산 소월리 출토 목간의 내용과 서체’)에서 “소월리 유적은 1500년 전인 6세기 후반 주민들이 곡식을 주는 지신(地神)에게 수확량의 40%를 뜯어간 세리들의 수탈을 고하는 고사의식을 치른 곳으로 추정된다”는 견해를 밝혔다.
소월리 구덩이의 출토모습. ‘3면 인면 항아리’와 시루, 명문목간 등이 정연하게 나왔다. 손환일 소장은 수확량의 40%를 뜯어간 세리들을 땅의 신, 즉 지신에게 고하는 고사를 지낸 뒤 매납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화랑문화재연구원 제공
추론의 근거는 무엇일까. 우선 출토 당시의 매납 상황을 돌이켜보자. ‘3면 인면 항아리’는 신라 토지제도인 결부제(結負制)에 따라 수확량 등을 기록한 명문목간, 그리고 용도를 알 수 없는 싸리나무 다발 등과 함께 묻혀있었다. 유물 가운데는 시루도 보였는데, ‘3면 인면 항이리’와 맞춰보니 꼭 맞았다.
연구자들은 “소월리 유적은 제사유적이며, 명문목간은 마을 주변에 저수지를 쌓아 마련한 전답을 토대로 세금을 걷기위한 기초자료를 적은 것”이라고 추정했다. 하지만 싸리나무 다발의 해석을 두고는 역부족이다. ‘싸리비로 사용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있었다. 그러나 폐기된 유물을 묻은 쓰레기 유적이라면 모르되 만약 제사유적이라면 싸리비는 어울리지 않는 매납품이다.
명문목간을 수습하기 직전의 모습. 목간은 신라 토지제도인 결부제에 따라 수확량을 조사하고 세금을 걷는 용도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화랑문화재연구원 제공
손환일 소장의 논문은 바로 이 싸리나무 다발과 명문목간의 내용을 연결시켰다. 즉 출토된 명문목간은 고을 단위로 생산된 곡식 산출량을 ‘결(結)’과 ‘부(負)’ 단위로 기록한 문서이다. ‘결부(結負)’는 면적당 산출량을 기준으로 표시한 토지면적 단위이다.
논문은 “이번에 출토된 명문목간 가운데 ‘논 13결 30부에서 5결40부를 거뒀다’고 해석할만한 내용이 등장한다”고 밝혔다. 논 13결 30부에서 5결40부를 거둬갔다면 대략 40% 가량을 세금으로 뜯어갔다는 얘기다. <한국민족대백과>에 따르면 삼국시대 ‘1결(結)’은 대략 1만5447.5㎡(4681평)로 계산된다. ‘1부(負)’는 1결의 100분의 1(대략 154㎡)로 추정된다. 여기서 ‘질 부(負)’는 ‘짐을 등에 진다’는 의미의 한자다.
논 13결 30부 가운데 ‘5결40부’를 거둬갔다는 내용이 담긴 목간.
논문은 “한 사람이 등에 지는 단위인 1부는 곡식 한 가마니, 즉 40㎏을 기준으로 한다”면서 “1마지기(논 200평·660㎡)의 소출량은 평균 4.3짐(가마니)에 해당한다”고 계산했다.
그렇다면 소월리 목간에 나오는 ‘논 13결 30부’는 약 6만2300평(311마지기·소출량은 5만3200㎏)에 해당되며, 세금으로 낸 ‘5결40부’는 약 2만5300평(126마지기·2만1672㎏)에 해당된다. 명문목간 중에는 신라 중앙정부가 소월리 인근에 둑(堤)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손환일 소장은 “그렇게 쌓은 둑(제방)을 주민들에게 제공한 대가로 생산량의 40%를 거둬갔다는 것이니 가혹한 세금이라 할 수 있다”고 풀이했다.
논문은 목간·인면토기 등과 공반된 ‘싸리나무 다발’에도 심오한 뜻이 있다고 풀었다. 즉 세리의 혹정을 꾸짖는 ‘징벌의 회초리’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회초리’와 관련된 고사는 전국시대 조나라의 두 대들보인 염파와 인상여의 ‘문경지교(刎頸之交)’가 있다. 즉 평소 인상여를 시기 질투하며 앙앙불락하던 염파가 인상여의 진심을 알아차리고는 ‘웃통을 벗고 가시나무 채찍을 짊어지고(肉袒負荊)’ 용서를 빌었다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죽음도 함께 할 친구’(刎頸之交)가 됐다.(<사기> ‘염파·인상여 열전’)
논문은 소월리에서 출토된 ‘싸리나무 다발’이 “회초리로 지신(地神)께서 세리를 좀 꾸짖어 바른 길로 인도해달라”는 염원을 담고 있다고 보았다. 손환일 소장의 논문은 이와같은 근거를 제시하며 소월리 유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소월리 주민들은 곡식을 주는 지신(地神)에게 세리(稅吏)들의 수탈을 고하는 고사를 지냈다. 고사의 제물로 세금 징수를 위하여 곡식의 산출량을 조사한 목간과, 세리의 혹정을 징벌하는 의미인 회초리(싸리나무 다발), 세리의 얼굴을 토기에 새긴 ‘3면 인면 항아리’, 지신에게 봉헌한 시루의 음식(떡과 밥) 등이 쓰였다. 고사를 지낸 뒤에는 이런 제물을 구덩이에 매납했다.”
논문은 경산 소월리의 지정학적 위치에 주목한다. 경산은 내륙으로 진출하는 길목이어서 많은 군량미를 충당해야 했고, 그 때문에 곡식의 가혹한 갹출이 자행됐다는 것이다.
손환일 소장은 “‘3면 인면 항아리’는 세금을 걷는 세리의 3단 표정을 담은 것”이라며 “1면은 흡족한 표정, 2면은 평상적인 표정, 3단은 화를 내는 표정이 아니냐”고 해석했다. ‘흡족한 표정’은 세금을 많이 낸 사람에게, ‘평상적인 표정’은 세금을 적당하게 낸 사람에게, ‘화를 내는 표정’은 세금을 적게 낸 사람에게 지은 것이라는 가설이다. 논문은 또 귀와 머리의 정수리에 크게 뚫린 구멍에도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 “‘세리의 귀로 백성의 원성을 잘 듣고, 머리로 빨리 깨달아라’는 뜻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손환일 소장은 “결국 이 항아리의 ‘3단 표정’은 6세기 당시 신라 세리들의 가증스런 면상을 그대로 표현한 것일 수 있다”고 추정했다. 경향신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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