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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정유라의 말(言)과 말(馬)

1412년 칠성군 윤저가 태종이 주최한 연회에서 감히 임금을 향해 ‘후궁을 그만 들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아무리 임금이 ‘과인의 잘잘못을 한번 고해보라’고 상을 차려준 자리였지만 ‘제발 여자 좀 작작 밝히라’는 직격탄을 날렸으니 분위기가 일순 싸해졌다.

 

그러나 태종은 “신하의 도리를 다했다”는 칭찬과 함께 임금의 애마, 즉 안장 얹은 말 한 필을 하사했다.

 

윤저는 손사래를 쳤지만 태종은 “사양 마라. 받았다가 내일 다른 사람에게 넘겨도 된다”고 권했다.

 

윤저는 한마디 직언의 대가로 ‘대통령 전용 승용차’를 선물로 받은 것이다. 심지어 ‘기분이다. 까짓것 되팔아도 좋다’는 허락까지 얻었으니….


차가 없던 시절 말 한 필의 가치는 지금의 최고급 승용차에 비견될 수 있다.

 

왕·귀족들은 앞다퉈 좋은 말을 구해 온갖 치장에 정성을 쏟았고, 승마라는 스포츠로 잘 키운 애마를 뽐냈다. 그러니 승마는 왕·귀족·부자 스포츠의 이미지를 쉽게 벗어날 수 없다.

 

굳이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손녀인 자라 필립스의 예를 들 필요도 없겠다.

 

수십억~수백억원짜리 명마를 구입해야 올림픽 메달을 딸 수 있다니 ‘흙수저’가 어찌 감히 도전하겠는가.

 

게다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조카(고려대)를 비롯해 최순실씨의 딸(정유라·이화여대)과 조카(장시호·연세대) 등도 이른바 명문대에 합격한 이력을 보라.

 

돈많고 권력있는 자들이라며 한 번 쯤은 군침을 흘릴만한 스포츠임이 틀림없다.

 

이 대목에서 네로 황제가 떠오른다. 그리스 여행중 올림피아 축제의 승마경주에 출전했지만 낙마했다.

 

그러나 주최측은 낙마한 황제를 우승자로 선포했다. 네로는 그 보답으로 그리스에 대한 대대적인 면세 조치로 화답했다. 

 

말은 사람의 4살 지능지수를 갖고 있다. 주인과 교감을 나눈 말은 뭔가 다르다.

 

숨을 몰아쉬며 버티다가 주인이 도착하고 나서 비로소 편안히 눈을 감는 말이 있다. 반면에 주인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죽는 말도 있다. 이것은 주인과 말이 교감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정유라씨에게 삼성 돈으로 10억원이 넘는 말을 구입했다는 소식이 들린다.(사진)

 

새삼 이런 생각이 든다. ‘능력없는 부모를 탓해. 돈도 능력이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철없는 이에게 십수억원 짜리 명마가 무슨 소용일까.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