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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외교행낭과 반기문

1948~63년 두 차례나 주한 미대사관 문정관으로 근무했던 그레고리 헨더슨은 한국문화재 수집광이었다.

헨더슨은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된 1962년 이후 가야~조선시대에 이르는 보물급 문화재 1000여점을 아무런 제지없이 반출해갔다. 외교행낭을 이용한 것이다.

1984년 7월 9t짜리 트레일러를 단 소련의 트럭이 스위스 국경선에 도착했다. 외교 분쟁이 일어났다.

소련측은 외교행랑이라 했고, 스위스측은 ‘9t짜리 행낭이 어디 있냐’고 반격했다. 트럭은 지루한 실랑이 끝에 서독으로 향하지만 그곳에서도 11일간이나 옥신각신했다.

서독은 “스스로 움직이는 자동차(트레일러)가 어떻게 외교행낭일 수 있냐”고 주장했다. 결국 ‘9t 외교행랑’은 본에 있는 소련의 공관 안에서 세관검사를 받았다. 트레일러 안에는 207개의 포장물이 든 여러 개의 상자가 들어 있었다.

그러나 서독은 포장물의 내용물을 검사할 수 없었다. ‘외교행낭은 개봉하거나 유치(留置)할 수 없다’(제27조 3항)는 ‘외교관계에 관한 빈 협약’ 때문이었다. 이는 국가를 대표하는 외교사절에게 부여하는 ‘불가침 특권’이다.

본래 ‘외교행낭은 외교서류 또는 공용 물품만을 넣은 포장물’(제27조 4항)이다. 사적 혹은 불법적인 용도로 이용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본국의 독재자에게 상납할 진상품이나, 마약을 불법거래하고 마련한 자금을 외교행낭으로 보내는 사례가 심심찮게 보도된다.

1984년 런던 스텐스테드 공항에서는 기상천외한 외교행낭 상자가 적발됐다. 납치 후 마취된 나이지리아인이 상자속에 누워있었다. 나이지리아가 영국으로 망명한 알하지 딕코 전 운수장관을 납치한 뒤 본국에 송환하려던 것이다. 겉면에 외교행낭이라는 정식명칭이 없었던게 검색의 빌미가 됐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외교행낭으로 김종필 전 국무총리(사진)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 구설에 올랐다. ‘한국 방문 때 감사했으며 내년 1월에 뵙겠으니 지도 편달 부탁드린다’는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국제기구 수장이 관례상 보내는 감사편지는 통상 외교행낭으로 전달된다”고 해명했다. 차기 유력 대권후보로 거론되는 인사, 그것도 국제기구 수장이므로 일거수 일투족에 조심 또 조심해야 할 것 같다.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