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몸통도 작고 종자도 천한데(汝質至묘族至賤) 어찌 사람만 보면 침을 그리 흘리는고.(何爲逢人輒流涎)…제가 무슨 현자라고 혈식을 하는고(血食豈由賢).”
모기 하면 주로 인용되는 다산 정약용의 시(‘얄미운 모기·憎蚊’)이다. 자기 몸 무게의 2~3배인 최고 10㎎까지 피를 빨아들이는 모기가 얄미울 수밖에 없다.
모기는 혈액의 원활한 섭취를 위해 사람의 피부에 타액을 주입한다. 이 때문에 견딜 수 없게 가려워지는 것이다. 이 순간 바이러스와 말라리아 원충 등이 동반 주입된다.
1년에 100만명이 넘는 사람이 모기가 옮기는 학질 때문에 죽는다니 백해무익하다는 오명이 붙을 수밖에 없다. 모기 잡으려고 칼까지 뽑았다는 ‘견문발검(見蚊拔劍)’의 사자성어가 나올만 하다.
하지만 모기가 죽음을 무릅쓰고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이유가 있다.
어미의 본능 때문이다. 모기는 평상시 꽃의 꿀이나 나무의 수액을 빨아먹고 산다. 수컷은 그렇게 평생을 살아간다. 그러나 암컷은 다르다.
산란철만 되면 흡혈귀로 변한다. 정자를 받은 암컷은 온혈동물의 피를 찾아 헤매기 시작한다. 포유류·조류의 피에 든 단백질과 철분이 알의 성숙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무자비한 손사냥을 감수하면서까지 사람의 피를 갈구하는 애처로운 날갯짓에서 암컷모기의 모정을 엿볼 수 있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피를 채우고 나서야 100~200개의 알을 낳을 수 있다.
인간은 바로 ‘죽음을 무릅쓴 모정’을 발휘하는 모기를 퇴치하느라 별의별 수를 다 쓰고 있으니 참으로 비정한 동물이란 생각이 든다.
최근 경찰이 모기가 빨아먹은 용의자의 피에서 유전자(DNA)를 채취·분석하는 수사기법을 도입했다. 김영삼 경기북부경찰청 검시관이 발표한 ‘모기 수사’의 원리는 간단하다.
몸무게의 2~3배나 되는 피를 빨아들이는 모기의 동작은 현격하게 둔해진다. 현장에서 106.7m 정도가 보통이고 길어봐야 170m 이상은 날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폐쇄된 범죄현장에서 발견된 흡혈모기는 범인의 피를 머금고 있는 결정적인 증거동물이 되는 셈이다. 실제로 이탈리아와 핀란드에서는 모기의 DNA를 분석해서 살인범을 체포한 경우도 있다. 얄미운 모기가 범인잡는 수사관으로 거듭날 판이다. 모기의 화려한 부활이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여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졸지에 사기꾼이 된 파스칼 (0) | 2016.07.21 |
---|---|
외교행낭과 반기문 (0) | 2016.07.21 |
‘축알못’ 펠레의 지긋지긋한 저주 (0) | 2016.07.11 |
탐사선 주노, 목성의 정체 벗긴다 (0) | 2016.07.07 |
오바마의 일중독, 박근혜의 일중독 (0) | 2016.07.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