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7년 1월 30일은 조선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날일 것입니다.
평소 오랑캐라 낮춰보던 청나라에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세 번 절하고 아홉번 머리를 조아림)의 굴욕 속에 항복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청나라에 볼모로 붙잡힌 백성들은 항복 후 도성으로 돌아가는 인조를 향해 외쳤습니다. “임금님 임금님 우리를 버리고 어디로 가십니까.” 역사는 이 날의 치욕을 ‘삼전도의 굴욕사건’이라 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청나라는 항복의식이 벌어진 삼전도에 ‘청나라 황제 승첩비’를 세우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면서 ‘황제의 공적을 칭송하는 비문을 직접 쓰라’고 지시했습니다. 조선 조정은 패닉에 빠졌습니다. 아무도 글을 짓지 않겠다고 피했습니다. “한때의 굴욕을 참자”는 인조의 신신당부에 따라 글을 지어 청나라의 낙점을 받은 이는 백헌 이경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지은 삼전도비문은 두고두고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유림의 영수 송시열은 왜 이경석을 ‘오랑캐에 아부함으로써 오래오래 잘 먹고 잘 살았다’고 비아냥댔을까요. 후세의 박세당은 왜 그런 송시열을 ‘올빼미’라 비난했을까요. 삼전도 비문을 둘러싼 굴욕의 사연들을 되짚어 보겠습니다. ‘치욕’도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역사이니까요.
<관련포스팅>
삼전도비문의 내막(상) "황제의 음덕으로 살았습니다."
삼전도비문의 내막(하) '누가 올빼미고 누가 봉황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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