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도 또 하나의 백제다.’ 10세기 쯤 편찬된 <관세음응험기>은 “백제 무광왕(무왕·재위 600~641)이 지모밀지(익산 금마면)로 천도하여 사찰을 경영했는데, 그 때가 정관 13년(639년)이었다”고 기록했다.
익산 미륵사지에 건립되어 10일 개관하는 국립익산박물관. 백제관련 유물 3만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국립익산박물관 제공
물론 <삼국사기> 등 정사에는 천도 기록이 없지만 익산이 최소한 백제 말기에 별도(別都) 혹은 행정수도였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서동(무왕)과 선화공주의 사연을 담았고, 삼국시대 최대의 가람을 갖춘 미륵사, 주변의 익산토성과 제석사지, 또한 무왕 부부묘가 확실한 쌍릉 등 많은 백제 유적들이 분포하고 있다. 지명 이름이 왕궁리(王宮里)라는 점도 심상치 않은 대목이다. 무엇보다 익산에서는 수많은 백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백제의 역사를 흔히 한성백제(기원전 18~기원후 475)와 웅진백제(475~538), 사비백제(538~660) 등으로 구분하지만 ‘익산 백제’도 당연히 끼워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명 존재해왔다. 이미 2015년 익산이 공주, 부여 등과 함께 ‘백제역사유적지구’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바 있지 않은가.
국립익산박물관 상설실 배치도. 상설실에는 국보·보물 3건 11점을 포함한 3000여점의 전시품을 선보인다. |국립익산박물관 제공
그러한 여론을 반영하듯 ‘익산 백제’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보존·전시·교육하는 국립익산박물관이 지난 10일 개관했다. 2015년 12월 미륵사지유물전시관이 국립으로 전환된 지 4년1개월 만이다. 미륵사지 남서편에 자리한 국립익산박물관은 연면적 7500㎡, 전시실 면적 2100㎡의 규모이다. 주변 경관을 해치지 않도록 지하 2층, 지상 1층 규모로 건립한 유적 밀착형 박물관을 자랑한다.
1917년 익산 쌍릉 대왕릉에서 출토된 나무관. 공주 무령왕릉과 부여 능산리 고분군의 나무관 재료와 같은 일본산 금송을 썼다. 대왕릉은 최근 인골에 대한 성분 분석결과 무왕의 무덤으로 사실상 확인됐다. |국립익산박물관 제공
국립익산박물관은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 쌍릉 등 익산 문화권에서 확인된 백제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수집, 보존할 계획이다. 미륵사지 출토품 2만3000여점을 비롯해 전북 서북부의 각종 유적에서 출토된 약 3만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개관과 함께 최초로 공개되는 자료들이 많다.
미륵사지 석탑 심주석의 사리구멍 안에서 발견된 직물에는 비단과 금사(금실), 자수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번에 처음 공개된다. |국립익산박물관 제공
특히 미륵사지 석탑 사리장엄구의 공양품을 감쌌던 보자기로 추정되는 비단 직물과 금실이 주목거리다. 또 제석사지 목탑이나 금당 안에 안치되었을 흙으로 빚은 승려상의 머리도 눈에 띈다. 또한 미륵사터 석탑이 백제 멸망 이후인 통일신라시대에도 보수됐음을 알려주는 ‘백사(伯士)’명 납석제 항아리도 나온다.
1917년 발굴된 지 102년 만에 다시 공개되는 쌍릉 대왕릉의 나무관 등도 관람객들 눈길을 사로잡을 것이다. 특히 쌍릉 대왕릉의 나무관은 대왕릉에서 직접 떼어 온 봉토의 토층 및 실제 크기의 돌방무덤과 함께 전시실 안에 설치됐다. 또 1965년 석탑 보수공사 중 발견된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국보 제123호·국립전주박물관), 익산 입점리 고분군 금동관모, 원수리 출토 순금제불상 등 다른 지역에서 보관·전시되던 자료들도 고향으로 돌아와 관람객을 맞이한다.
제석사지 페기장에서 출토된 흙으로 빚은 승려상의 머리부분. 눈을 감고 미간을 찌푸리며 비탄에 빠진 표정이다.|국립익산박물관 제공
개관기념 특별전(‘사리장엄-탑 속 또 하나의 세계’)이 10일부터 3월29일까지 열린다. 특별전은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장엄(국보 제327호), 이성계 발원 사리장엄 등 역대 왕실과 귀족 등이 발원한 사리장엄 9구를 포함하여 총 15구를 한자리에 모았다.
전시품 중 국보·보물이 19건에 이르며, 광주 서오층석탑에서 출토된 30여과의 진신사리도 친견할 수 있다. 특히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따로 전시되어 있던 경주 감은사지 서탑 사리장엄 외함(보물 제366호)과 동탑 사리장엄 외함(보물 제1359호)이 나란히 진열된다.
상설전시실에는 국보·보물 3건 11점을 포함한 3000여점의 전시품을 선보인다. 상설전시실은 모두 3개의 실로 구성됐다. 1실에서는 백제의 마지막 왕궁으로 주목받는 왕궁리 유적과 백제의 왕실사원인 제석사지, 백제 최대 규모의 돌방무덤인 쌍릉에서 출토된 자료들을 소개한다. 미륵사를 집중 소개하는 2실에서는 삼국시대 최대의 불교사원인 미륵사지의 역사와 설화, 토목과 건축, 생산과 경제, 예불과 강경 등 다양한 면모를 소개한다. 특히 미륵사지 석탑 출토 사리장엄구는 별도 전시공간으로 꾸며 관람의 집중도를 높였다. 이와함께 미륵사지 석탑을 주제로 한 현대미술 작품을 함께 설치했다. 3실에서는 익산문화권의 특성을 부각한다. 금강 하류에 위치한 익산의 지리적 특성과 교통로를 통한 문물 교류의 증거를 토기나 도자기, 금동관, 금동신발, 청동기 등 다양한 유물을 소개한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토기. ‘大伯士奉聖(대백사봉성)’이라는 글자가 음각되어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대백사’는 통일신라의 여러 금석문에 자주 등장하는 장인(匠人)에 대한 호칭이다. |국립익산박물관 제공
최경환 국립익산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박물관은 익산시와 협력하여 ‘미륵사지 관광지 조성계획’에 따라 미륵사지 남쪽(10만8743㎡) 지역에 전통문화체험관, 자연지형 녹지, 광장, 주차장 등을 마련할 계획”이라면서 “새 박물관과 연계한 각종 교육 및 문화행사가 가능한 복합문화단지를 조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상효 국립익산박물관장은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석탑인 미륵사지 석탑과 그곳에서 출토된 사리장엄구를 중심으로, 고도 익산의 역사와 문화를 국내외 관람객에게 널리 전시·교육하여, 지역 주민들에게 행복과 만족을 드리는 문화기관으로 만들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고대사원과 사리장엄구를 브랜드화한 새 박물관이 보석의 도시, 익산의 새로운 문화 거점이 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라고 말했다. 경향신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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