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짝퉁인가, 아니면 창조적 모방인가. 5세기 후반 신라에서는 고구려 기법을 모방한 금귀고리를 제작했고, 이 귀고리를 포항지역 귀족이 달았던 증거가 나왔다.
포항융합기술산업지구 진입도로 구간을 조사중인 화랑문화재연구원은 최근 포항 흥해읍 대련리 유적에서 황금으로 만든 금제굵은고리귀고리(金製太環耳飾) 1쌍을 비롯하여 금제가는고리귀고리(金製細環耳飾) 2쌍, 은제팔찌 1쌍 등의 장신구류와 다수의 토기를 발굴했다고 밝혔다.
포항 대련리에서 확인된 금제 귀고리. 고구려 기법을 모방한 신라산으로 추정된다. |화랑문화재연구원 제공
확인된 7기의 무덤 중에서 6기는 모두 도굴되었다. 그러나 가장 규모가 크고. 귀고리 등이 확인된 4호 무덤은 무너진 천장 덮개돌이 부장 유물들을 덮고 있는 바람에 천만다행으로 도굴을 피했다. 4호 무덤은 돌방 길이 5.3m, 너비 1.8m의 긴사각형이고, 주검받침(屍床)이 상하 2겹으로 겹쳐져 있다.
조헌철 화랑문화재연구원 조사원은 “밑부분 주검받침에서 금제가는귀고리 1쌍, 금제굵은귀고리 1쌍, 은제팔찌 1쌍이, 그리고 윗부분 주검받침에서는 금제가는귀고리 1쌍이 각각 출토됐다”고 전했다. 조 연구원은 “주검받침이 두 번에 걸쳐 조성됐고, 다수의 귀고리가 출토됐다”면서 “이로 미루어 보면 이 무덤은 3구 이상의 주검이 시간차를 두고 추가로 묻혔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4호무덤에서 출토된 또다른 금제가는고리 귀고리.|화랑문화재연구원 제공
특히 금제굵은귀고리의 형태가 주목거리였다. 굵은 귀고리는 중심고리 아래 중간 장식에 가로로 새김눈금띠(각목대)가 장식된 소환연접구체(작은 둥근 고리를 여러개 연접해서 만든 공 모양의 형태)와 원뿔형의 드리개가 결합돼 있다. 이와 유사한 형태의 귀고리는 충북 청원 상봉리, 서울 능동, 강릉 병산동 등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상봉리와 능동, 병산동 등지에서 확인된 귀고리들은 전형적인 고구려식이다. 고구려식 굵은 귀고리의 경우엔 소환연접구체에 새김눈금띠가 표현되지 않는다. 또 고구려식의 경우 드리개에 구체(공모양) 바로 아래 바둑알 모양의 원반 장식이 추가된다. 그러나 대련리 4호분에서 확인된 굵은귀고리는 새김눈금띠가 있고, 드리개에는 바둑알 모양의 장식이 없다.
고구려식과 고구려식을 모방해서 신라에서 만든 귀고리에 대한 검토의견. 양식이 좀 다르다. |화랑문화재연구원 제공
조헌철 연구원은 “따라서 포항에서 확인된 귀고리는 고구려 양식을 모방해서 신라가 제작한 제품”이라고 해석했다. 이한상 대전대 교수는 5세기대의 고구려·신라 관계에 주목했다. 광개토대왕 비문에 따르면 400년(광개토대왕 10년) 신라가 왜구의 침입을 받자 고구려는 5만 보기병을 파견, 왜병을 쫓아냈다. 이후 고구려와 신라는 여형여제(如兄如弟), 즉 형제국이 되었다. 아마 이 때 신라에서는 선진문물인 고구려풍이 유행했을 것이다.
고구려식과 고구려식을 모방해서 신라에서 만든 귀고리에 대한 검토의견. 양식이 좀 다르다. |화랑문화재연구원 제공
서울과 강원도, 충청도 지역에서 고구려 유물이 출토되는 것은 바로 5세기의 양상을 웅변해준다. 이한상 교수는 “이번 출토품은 신라가 당시만 해도 선진국인 고구려 양식을 모방해서 제작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게 보면 명품인 고구려산 제품을 신라에서 짝퉁으로 만든 것으로 볼 수 있고, 좋은 표현으로는 창조적인 모방품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출토된 유물 중에는 금제가는고리귀걸이도 있다. 각각 중심고리(主環)에 중간장식과 드리개가 결합된 구조였다. 이런 귀고리와 비슷한 형태는 천마총과 서봉총, 보문리 부부총, 창녕 송현동고분 등에서 출토된바 있다. 원통형 중간장식에는 줄무늬와 뚫새김(투각)을 했고, 드리개에는 넓은 나뭇잎형 장식 1매와 작고 오목한 형태의 나뭇잎 모양 장식 2매가 각각 달려있다. 중간장식은 귀걸이 고리와 드리개 가운데 부분을 이루는 장식이고, 드리개는 매달아 길게 늘이는 물건이다. 이와 함께 돌방 남쪽 끝의 껴묻거리 공간에서는 그릇받침, 긴목항아리, 굽다리접시 등 다양한 형식의 토기 수십 점이 출토됐다. 경향신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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