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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 역사

히틀러 생가와 중앙청 철거

‘평화,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 파시즘은 절대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숨져간 수백만이 일깨워준다.’

오스트리아의 국경도시인 브라우나우 암 인의 잘츠브르거 포르슈타트 15번가에 기념비가 하나 서있다.

아돌프 히틀러의 생가(사진)임을 알려주는 비석이다.

1889년 4월 세관원이던 아버지(알로이스 히틀러)가 게스트 하우스였던 3층짜리 노란색 건물의 방을 빌렸다. 이곳에서 히틀러를 낳았다.

비록 어린 히틀러가 불과 3년 살았을 뿐이지만 히틀러 생가로 유명해졌다.

나치시대 히틀러가 태어난 방은 성지가 됐고, 아돌프 히틀러 거리와, 아돌프 히틀러 광장까지 생겼다. 

1938년 히틀러의 개인비서 마틴 보르만은 이 집을 사들여 공공도서관으로 꾸몄다. 미군은 2차대전 막바지 독일군에 의해 파괴될 뻔 했던 생가를 지켰다.

생가는 집단포로수용소의 참상을 알리는 전시회의 공간으로 활용됐다가 1954년 이후 개인의 소유가 되었다. 그러나 유럽 전역의 신나치주의자가 참배하는 성지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 정부로서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1972년부터 집주인과 임대차 계약을 맺어 장애인 시설로 만들었다. 되도록 나치의 이미지와 동떨어지는 건물로 활용하려는 고육책이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2011년 정부가 이 건물을 장애인 편의시설로 리모델딩하려 하자 집주인이 극력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정부와 집주인의 분쟁 속에 5년이 지나도록 빈집으로 남았다.

소유주는 집을 사겠다는 정부의 제안을 막무가내로 거부했다. 그 사이 빈집은 극우세력들의 성소로 변모했다. 조바심이 난 정부는 극약처방을 썼다. 건물을 몰수하는 강제 수용 법안을 만든 것이다. 의회 역시 비슷한 입장이어서 법안통과가 유력시된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완전 철거 뒤 자선단체나 지방정부가 사용할 새 건물을 지을 방침이다.

하지만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나치추종자의 방문지로서 지역 이미지의 악화를 우려하는 주민들은 아예 슈퍼마켓이나 소방서 같은 건물로 환골탈태시키자고 주장한다. 제발 히틀러와 연관짓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외면한다고 가릴 수 있는 역사란 없다. 차라리 드러내놓고 나치 치하의 참상을 알리는 박물관 같은 상징물로 만들자는 요구도 있다. 어두운 역사도 역사라는 것이다. 1990년대 중앙청 철거를 둘러싼 논쟁과 어찌 그렇게 비슷한지 모르겠다.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