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시대(stone age)하면 떠오르는 도구는 역시 석기, 즉 돌이다. 그러나 돌 말고도 하나 더붙여야 할 것이 있으니 바로 나무다.
물론 인류는 처음에는 돌도끼 같은 도구를 이용했지만 점차 효용성 증대에 골몰하게 됐다.
독일 쉐닝겐 구석기 유적에서 거의 완형에 가까운 10여점의 나무창이 쏟아졌다. 석기시대는 흔히 ‘돌의 시대’로 알려졌지만 ‘도구가 나무’의 시대, 즉 ‘석 목기 시대’라 일컬어질만 하다. |전곡선사박물관 제공
그래서 사용한 것이 나무이다. 특히 사냥도구의 관점에서 창의 등장은 획기적이었다.
창의 발명으로 사냥꾼은 안전한 곳에서 사냥감을 향해 창을 던질 수 있게 됐다. 게다가 가볍고 날카로운 창의 찌르개는 살상력을 높였다. 석기시대가 아니라 ‘석·목기 시대’라 일컬어져야 하지 않을까.
고인류가 사용한 가장 오래된 나무창은 중기 구석기 시대 초입인 42만년전 유적인 영국의 클락토니안에서 보였다. 주목(朱木)으로 만든 38㎝ 짜리 부러진 창이 그것이다.
쉐닝겐에서 출토된 나무창을 복원한 모습.|전곡선사박물관 제공
그러나 가장 유명한 유적은 독일 쉐닝겐에 있다. 쉐닝겐의 갈탄 광산은 40만년전 존재한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와 네안데르탈인의 유적으로 알려진 곳이다.
그런데 이곳 호수에서 말과 사슴, 코끼리 뼈조각 수천점과 함께 거의 완형으로 보존된 10여점의 나무창이 발견됐다. 물론 이 나무창은 석기로 다듬어진 것들이었다.
바야흐로 ‘돌과 나무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최첨단 무기였던 것이다. 이 첨단 나무창으로 말 등 야생동물들을 사냥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돌로 다듬어진 창이 창조된 중기 구석기 시대 이후 다양한 형태의 ‘돌+나무’ 발명품이 등장했다.
구석기인들이 쉐닝겐에서 나무창으로 야생마를 사냥하는 모습을 재현했다.|전곡선사박물관 제공
석기에 슴베(칼과 살촉 등에서 자루나 살대 속에 들어가는 부분)를 만들어 나무에 꽂은 찌르개와 긁개, 자르개 등의 도구가 제작됐다. 후기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 들어 사냥이 확대되면서 나무의 탄성은 석촉 달린 화살을 더 멀리, 더 정확히 날아가게 했다.
전곡선사박물관이 지난달 29일부터 내년 9월까지 개최하는 <돌과 나무의 시대> 특별전은 그동안 석기를 중심으로 조명되었던 선사시대가 실은 ‘돌과 나무의 시대’였다는 것에 주목한 전시회라 할 수 있다.
선사시대 사람들이 돌과 나무로 이룬 도구와 기술의 이야기이다. 선사시대 주먹도끼에서 청동검과 쇠톱, 그리고 현대 기기까지 인간의 손으로 사용하는 100여점의 도구가 전시의 첫장을 연다.
돌과 나무를 결합해서 만든 간도끼. |전곡선사박물관 제공
인류가 같은 목적으로 어떻게 도구를 발전시켰는지 일별할 수 있다. 이어 ‘나무를 다듬는 석기’ 코너에서는 인류가 나무를 더 정밀하게 다듬기 위해 어떻게 석기를 가공하였는지 보여준다. 주먹도끼·홈날석기·긁개 등 단지 깨진 돌이라 생각했던 각 석기들은 실제로는 가공을 위한 최적의 모양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석기, 자루를 만나다’ 코너는 보다 강한 도구를 향한 인류의 염원이 돌+나무의 결합으로 이뤄지는 과정을 살핀다. 날카롭게 가공한 석기는 나무손잡이(자루)를 만나 인간신체의 외부 영역으로 도구를 확장시켰고, 더 큰 도구를 만들고 더 멀리 더 정확하게 사냥할 수 있게 됐다.
독일의 실험고고학자인 울프하인과 전곡선사박물관이 함께 선사시대 통나무 배를 복원 재현했다. |전곡선사박물관 제공
아무래도 이번 전시의 초점은 돌보다는 새롭게 조명되는 ‘나무 도구’라 할 수 있다. 사실 나무유물은 쉽게 썩는 도구이기 때문에 남아있는 예가 별로 없다. 이번 특별전의 특징은 썩어 없어진 선사시대 나무유물의 제작 기술을 실험고고학으로 복원했다는 것이다.
전곡선사박물관과 독일의 실험고고학자인 울프 하인이 선사시대의 도구와 기술을 바탕으로 복원한 통나무배와 뗏목도 함께 공개된다. 복원된 통나무 배는 50년 된 큰 잣나무를 통째로 가공한 것이다. 이한용 전곡선사박물관장은 “이 복원프로젝트는 그동안 진행한 실험 고고학의 성과를 집대성한 결정체”라면서 “통나무배는 지난 10월 한탄강에서 직접 띄워 그 효용성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경향신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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