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연천군 삼곶리. 야트막한 구릉으로 올라가는 입구를 군 부대 포클레인이 마구 헤집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요?”

“아, 지뢰탐지용 보호둑을 마련하는 겁니다.”

바로 앞에 수풀이 무성한 지형이 있었다.
 

연천 횡산리 용암대지. 임진강·한탄강 지역에는 이런 구석기 전기유물들이 널려있다. 연천/박재찬기자


“수풀이 무성한 곳은 절대 가지 말라”는 것은 민통선 이북지역에서는 불문율. 미확인 지뢰지대 때문이다. 수풀이 무성한 곳에 있는 문제의 미확인 지뢰를 탐지하려고, 바로 앞에 둑 같은 것을 쌓아 위험에 대비하려는 작업이다.

하지만 고고학자들은 못마땅해한다. 이어진 구릉 위가 구석기 유물이 흩어진 곳. 따라서 유물 산포지를 마구 파헤치는 것은 엄연한 불법인지라 군 부대의 작업을 보면 자신의 가슴을 마구 파헤치는 것 같다.

포클레인의 굉음을 뒤로 한 채 구릉으로 올라가는 기자의 마음은 왠지 편치 않다. 넓은 구릉. 높은 지역인데 넓고 평탄한 지형이다.

동행한 한국국방문화재연구원의 조사원들은 제집 안마당 돌아다니듯 구석기 유물을 찾아 다선다. 하지만 지뢰 노이로제에 시달리는 기자의 마음은 뜨악하기만 하다.

5분도 안됐는데, 조사원들은 구석기유물을 한아름씩 채집했다.

“이건 돌로 만든 대패이고, 이건 몸돌이고요. 어 이건 긁개네.”

그런데 저 편에서 고함이 들린다.

“이것 보세요.”

유태용씨(한국국방문화재연구원 학예실장)가 소리친다. 조사원들이 달려가더니 환호성을 지른다.

“이건 전형적인 주먹도끼네. 축하해요.”

“이런 걸 찾아야 진짜 찾았다고 하는거죠.”

유태용씨가 우쭐댄다. 그럴 만도 했다. 그가 찾은 것은 전형적인 ‘아슐리안형 주먹도끼’였기 때문이다.

시간을 돌려 1977년 4월. 미 공군 예후대에 근무하던 그레그 보웬 병사는 한국인 애인과 함께 연천군 전곡리 한탄강변을 산책하고 있었다. 애리조나 주립대에서 고고학을 전공했던 그였다. 애인(훗날 부인이 된 이상미씨)이 돌 하나를 주워 보웬에게 보여줬다.

보웬은 소리쳤다.

“내가 뭘 발견했는지 봐!”

2005년 28년 만에 전곡리를 찾은 보웬의 회고.

“평소에도 구석기 유물에 관심이 많아 특이한 지형이 있으면 자세히 관찰했죠. 그런데 이곳에서 주운 돌을 보니 틀림없이 사람이 깎은 흔적이 있었어요.”

그는 범상치 않은 이 돌을 이듬해인 1978년 김원용 서울대 교수에게 보여주었다. 이 주먹도끼가 바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였던 것이다.

이 발견은 고고학계의 혁명이었다. 대표적인 전기 구석기 유물인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는 프랑스 생 타슐 유적에서 처음 발견돼 이런 이름을 얻게 되었다. 150만년 전부터 10만년 전까지 사용됐던 구석기였다. 그런데 그때까지만 해도 모비우스의 학설이라 하여 이런 아슐리안형 석기문화는 유럽과 아프리카에만 있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런데 동아시아, 그것도 한반도 전곡리에서 아슐리안형 도끼가 나온 것이다. 철통 같던 모비우스의 가설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 전곡리 유적은 훗날 구석기학의 최고 권위자 존 데즈먼드 클라크 버틀리대 교수가 “전기 구석기에 해당되는 유적”이라고 판정함으로써 세계 고고학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전곡리 유적은 그후 세계고고학지도에 당당히 등재됐을 뿐 아니라 미국 고고학 전공서적에도 포함됐다.
2001년 화산재 분석과 현무암에 대한 연대측정 결과 가장 오래된 석기면의 연대는 30만년 전이라는 추정이 나왔다. 한반도에서 전기 구석기 유적이 발견됐다는 소식은 일본 학계의 초조감을 드러냈다.

한반도보다 일본 구석기 역사가 늦을 수 없다’는 그 초조감은 결국 2004년 저 유명한 후지무라의 구석기유적 조작사건으로 파국을 치닫는다. 이 사건으로 일본 구석기 역사가 70만년 전에서 후지무라 사건 이후 7만년 전(가네도리 유적)으로 뚝 떨어졌다.

그런데 24만평에 달하는 전곡리 유적뿐 아니라 임진강·한탄강 유역은 지금도 손쉽게 채집할 수 있을 정도로 구석기 유적이 널려 있는 곳이다. 임진강 중류지역만 해도 기자가 목격한 지역을 포함해서 연천 횡산리(11곳)와 삼곶리(5곳), 강내리(2곳) 등 무려 18곳에 구석기 유적이 흩어져 있다. 임진강·한탄강 유역은 30만년 전 구석기인들의 터전이었던 것이다.

강변을 따라 적당히 솟아있는 넓은 용암대지가 보인다면 ‘아! 저건 구석기 유적이야’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정도다. 왜일까. 왜 이 지역에서 구석기 유적이 많이 보일까.

전곡리 유적 발굴과 보존에 평생을 바쳐온 배기동 한양대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임진강·한탄강 유역은 50만년 전 철원·평강에서 분출한 현무암이 흘러내려 평평한 대지를 이루고 있는 곳이죠. 이곳은 강이 흐르고 낮은 산지와 평야가 모자이크 같이 펼쳐져 있어서 인류가 생활하기 좋은 지형환경이 됐어요.”

사람이 살기 좋은 강가인 데다 현무암으로 융기된 지반 위의 퇴적층 또한 훼손 없이 남아 있어 구석기 시대 유적이 널려 있는 것이다. 거기에 6·25 전쟁 이후 사람의 발길이 뜸한 곳이라는 점도 특기할 만한 사항.

그러면 30만년 전 이곳에 터전을 잡은 사람들은 누구일까. 한 마디로 말하면 전곡리와 횡산리, 삼곶리에 살았던 이들은 현생인류는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들은 엄밀히 말하면 고인류였다.

배기동 교수는 “한반도에는 전기 구석기 중엽쯤 고인류, 즉 호모 에렉투스(직립원인)가 들어와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고 있다. 물론 화석인류가 발견되지 않아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중국 베이징 교외 저우커우뎬(周口店)의 석회암 동굴에서 50만년 전의 원인(북경원인)이 발견된 점으로 보면 적어도 비슷한 시기가 아닐까.

그렇게 한반도에 첫 발을 내디딘 고인류는 임진강·한탄강 유역을 풍미했던 30만년 전에는 나름대로 풍요로운 삶을 살았을 것이다. 자르개와 긁개, 밀개로 갓 잡은 동물의 가죽을 자르고 벗기고 다듬어 뼈를 바른 뒤 요리를 해서 먹었을 것이다. 겨울엔 추위를 막으려 바람막이 움막을 지었을 것이고 먹이와 기후에 따라 이동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지금의 인류와는 상관이 없다. 1987년 버클리의 유전학자들인 앨런 윌슨과 레베카 칸, 마크 스톤킹 등은 현생인류의 미토콘드리아 DNA 서열을 분석했다. 그런데 놀라운 결론에 도달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60억명의 조상은 15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살았던 한 여인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밝혀냈으니 말이다. 학계는 60억 인류의 어머니를 ‘미토콘드리아 이브’라 칭한다.

결국 아프리카의 반대편,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 임진강·한탄강 유역은 ‘우리’ 뿐 아니라 우리와 비슷한, 그러나 우리와는 전혀 다른 ‘사람’의 역사도 품고 있는 것이다. 구불구불한 만큼 수많은 사연을 담고 있는 임진강·한탄강에는 이렇게 인류 진화를 둘러싼 재미있는 수수께끼가 묻혀 있다.

〈이기환 선임기자/연천 군남에서〉

Posted by 이기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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