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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가 넘쳐났던 세종 시대의 감옥…성군의 치세에 무슨 일이? ‘3m 가량의 높은 담장에 남녀가 구분되어 있는 옥사….’ 얼마 전에 조선시대 감옥을 주제로 한 논문이 발표됐다. 이은석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장이 국립문화재연구소가 펴내는 학술지( 54호 4권)에 발표한 논문(‘조선시대 지방 옥 구조에 관한 고찰’)이다. 발굴유적과 고지도를 비교분석한 논문인데, 그중 감옥의 형태가 원형이고, 남녀 옥사가 구분된 구조라는 것이 필자의 눈길이 쏠렸다. 우선 ‘원형감옥’ 이야기를 해보자. ■감옥은 왜 원형으로 지었을까 지금까지의 발굴과 고지도, 사진 등을 통해 분석한 조선시대 감옥은 모두 원형 감옥이었다. 조선시대 원형 감옥이 표시된 고지도는 109곳 146매에 달한다. 1914년까지 유지된 공주옥의 옛사진을 봐도 원형감옥이다. 또 1997년 발굴된 경주옥도, 2003~2004..
“세밀가귀!”…0.3㎜ 극초정밀 예술에 중국이 열광했다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칠-아시아를 칠하다’ 특별전(~3월20일)에 출품된 ‘나전칠 국화넝쿨 무늬합’을 보고 유명한 사자성어를 떠올렸습니다. ‘세밀가귀(細密可貴)’입니다. 그것은 1123년(인종 원년) 고려를 방문한 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의 나전솜씨는 세밀하여 귀하다(螺鈿之工 細密可貴)”()고 찬사를 보낸 것에서 비롯된 성어입니다. ‘나전’이란 무엇일까요. 조개와 전복, 소라 등의 속껍데기를 다양한 모양으로 얇게 가공한 뒤 그릇 등에 붙여 장식하는 공예기술입니다. 보통 칠을 한 기물 위에 나전을 붙이므로 ‘나전칠기’라는 용어가 사용됩니다. 서긍은 대국의 자존심을 지킨 탓인지 “옻을 칠하는 기술은 그리 잘하지는 못한다(漆作不甚工)”고 전제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고려 나전의 정밀한 기술을..
조선의 화약은 왜 '똥천지' 길가의 흙에서 뽑아냈을까 ‘화약(火藥)은 원래 약(藥)이었다’는 말은 그렇다칩시다. ‘화약이 똥에서 나왔다’는 게 무슨 소리일까요. 국립진주박물관이 3월 22일까지 ‘화력조선’을 주제로 조선무기 특별전을 열고 있는데요. 그런데 발간을 앞두고 있는 특별전 도록 원고를 받아본 제 눈길을 끈 소재가 몇 있었습니다. 먼저 ‘화약(火藥)’이 당초에는 ‘약(藥)’으로 쓰였다는 게 눈에 띄더라구요. 화약은 9~10세기 무렵부터 중국 송나라 때부터 무기로 활용되었는데요. 그러나 그 이전에도 화약은 제조되었답니다. 화약은 염초(초석 혹은 질산칼륨·KNO3)와 숯, 유황을 혼합해서 만들죠. ■약재로 쓰인 화약 화약은 도교사상이 유행한 중국 한나라와 위진남북조 시대에 연단술(煉丹術)의 하나로 사용되었는데요. 연단술은 금단(광물로 만든 약)을 조제·..
일제는 조선 임금들의 탯줄까지 일장기로 덮어놓았다 조선왕릉은 유네스코가 인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2009년 왕과 왕비 무덤 44기 중 40기가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왜 4기는 빠졌을까. 제릉(태조 이성계의 정비 신의왕후릉)과 후릉(2대 정종과 정안왕후릉)은 북한 땅에 있으니 뭐 그렇다치자. 연산군(1494~1506)과 광해군(1608~1623)의 무덤도 제외됐다. ‘왕릉’이 아니라 ‘묘’이기 때문이다. 유네스코 등재명칭이 ‘조선왕릉’이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묘’는 빠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산군과 광해군은 만 12~15년간 조선을 다스린 임금이다. 정치적인 이유로 폐위됐지만 그것은 조선 왕조의 일이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까지 ‘왕릉’이 아니라 ‘묘’라는 딱지를 그대로 붙여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자격을 얻지 못했다. 21세기 대명천지에, ..
동굴 속 한줄기 빛을 따라갔더니 신라 진흥왕의 낙서가 보였네 2015년 12월 6일 일요일 오전 11시 무렵이었습니다. 모처럼 가족여행 중이던 박홍국 위덕대 박물관장은 울진 성류굴에 잠시 들렀습니다. 목적지인 봉화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기에는 너무 일러서 따뜻한 동굴에서 시간을 보내려 했던 겁니다. 그런데 동굴로 막 들어서려던 박관장의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동굴의 왼쪽 벽면에서 심상치않은 글자들이 보인겁니다. ‘癸亥(계해)’로 시작되는 명문이었는데요. 박관장은 울진군 학예연구사인 심현용씨에게 발견사실을 신고했습니다. 곧 본격조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동굴 입구의 벽면에서는 이미 조선 후기(1857년)에 새겨놓은 명문이 발견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명문과 불과 1m도 채 안되는 곳에 ‘삼국시대 명문’이 새겨져 있다는 것은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박홍국 관장의 ..
조선이 '고요한 아침, 은자의 나라'라고?…분통 터진 미국인 독립투사 서양에서는 ‘조선’을 어떻게 알고 있었습니까. ‘고요한 아침의 나라’니, ‘은자(은둔)의 나라’니 하는 표현이 유명하죠. 그러나 지금부터 120~130년 전에 이런 표현들이 조선(대한제국)을 왜곡하고 비하하는 것이라고 맹비난한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이 바로 호머 헐버트 박사(1863~1949)입니다. 헐버트가 힘을 주어 비판한 인물이 바로 (1882년)의 저자 윌리엄 그리피스(1843~1928)였습니다. 그리피스라면 조선을 서양에 알린 아주 유명한 동양학자이고, 국내에서도 서양인의 눈에 비친 조선 이야기를 할 때마다 단골로 인용되는 인물이죠. ■조선이 왜 은둔의 나라인가 그러나 1886년(고종 23) 육영공원(왕립영어학교) 교수로 입국한 이래 조선을 제2의 조국으로 삼았던 헐버트가 보기에 그리피스는 문외..
조선 호랑이 멸종의 원흉…임진왜란 출병 '가토 기요마사'였다 최근 국립민속박물관이 ‘호랑이 사전’을 발간했습니다. 이름하여 인데요. 단군신화에서부터 2018년 평창올림픽 마스코트까지 호랑이 관련 내용을 전부 수록하고 있습니다. 흐르는 세월에 둔감한 편인 저는 왜 뜬금없는 ‘호랑이 사전’이냐 생각했는데, 가만 보니 돌아오는 새해가 임인년 호랑이해더군요. 그래서 ‘호랑이 사전’이 출간된 김에 호랑이 이야기를 해보려구요. ■“우리나라는 호담국” 호랑이는 예부터 힘과 용맹을 겸비한 영험한 동물로 사랑받았죠. 때로는 친근하고, 때로는 해학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했죠. 육당 최남선(1890~1957)은 “우리나라는 호담국(虎談國)”이라면서 “호랑이 이야기로만 나 같은 책을 꾸밀 수 있고, 안데르센이나 그림(야콥·빌헬름) 형제가 될 수 있다”고 평했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과..
덕수궁 '대안문'이 '대한문' 된 까닭…일제 밀정 배정자 때문? 지금 서울 시내 덕수궁을 찾거나 혹은 지나치는 분들은 ‘공사중’임을 알리는 높다란 펜스를 보시게 될 텐데요. 대한제국의 황궁 정문인 대한문의 면모를 되찾는다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일제강점기에 사라진 대한문 월대(궁궐이나 전각 등 주요 건물 앞에 설치하는 기단)를 재현하는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초에는 재현공사가 올해 안으로 끝낼 예정이었는데요. 알아보니까 공사일정이 다소 늦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재현공사를 위한 사전 발굴 조사에서 조선 시대 유구가 확인된 건데요. 원래 이곳은 궁궐이기 전에는 남이의 역모사건에 연루된 조영달의 집터였는데요. 역모사건으로 집이 몰수된 뒤 영응대군(세종의 여덟째 아들·1434~1467)의 부인에게 돌아갔다가 성종(재위 1469~1494)의 형인 월산대군(1454~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