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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 부부 3년상 완전복원…제사상에 은어3마리 올린 이유 “영동대장군 사마왕(무령왕)이 62세가 되는 계묘년(523년) 5월7일 돌아가셨다. ‘신지(申地)’의 땅을 사서 무덤을 조성했다. 을사년(525년) 8월12일 대묘에 안장했다.” 1971년 7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백제 무령왕릉 발굴의 출토품은 5000점이 넘는다. 그 가운데 12건(17점)이나 국보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그중 ‘원톱’을 꼽자면 금은으로 치장한 화려한 유물이 아니다. 생뚱 맞지만 ‘돌판’ 2점이다. 무령왕의 발쪽에는 청동거울과 함께 청동신발도 놓여져있었다. 무령왕의 혼을 천상으로 올려줄 승선 도구로 삼은 듯 하다.|국립공주박물관 제공 ■무령왕릉 유물의 ‘원톱’ 하지만 예사로운 ‘돌판’이 아니다. 무령왕의 돌판, 즉 무덤 임자의 인적사항을 기록한 묘지석이다. 그 돌판엔 ‘주인공=사마(斯..
대체 '사경'이 뭐길래…화장실 갔다오면 '향수 목욕' 해야 했을까 “‘사경(寫經)’ 제작 전에 대소변을 보거나 누워 자거나 식사를 한 경우 향수로 목욕한 뒤 작업장에 들어가야 한다…” ‘사경’은 불경을 베껴 쓴 ‘경전’인데요. 754년(신라 경덕왕 13)에 제작된 가장 오래된 사경(·국보)에는 작업장에 들어가기 전에 치러야 할 경건한 의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초장부터 이상하죠. 이런 규정이라면 화장실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었겠네요. 또하나 인용할만한 기사가 에 있더군요. 유학자 최승로(927~989)가 982년(성종1) 올린 ‘시무28조’ 중 한 대목인데요. “신라 말 사경과 불상 모두 금·은을 사용해서 사치가 도를 넘었고 마침내 멸망에 이르렀습니다…그 관습이 사라지지 않고 있으니 반드시 그 폐단을 혁파해야 합니다.” 최승로의 언급이 심상치 않죠. ‘사경 제작’을 신..
남근형·구구단·신세한탄·가요·망부가…백제 '빅5' 목간 열전 종이가 발명(혹은 개량 또는 완성)된 것은 기원후 105년 무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종이는 오랫동안 폭넓게 쓰이지는 못했습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볼 수 있듯 나무(혹은 대나무)를 활용한 목간(혹은 죽간)이 보편적인 서사자료였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책(冊)’이라는 한자는 목(죽)간을 매단 모습의 상형문자에서 비롯됐죠. ‘전(典)’자는 책을 들고 있는 모습이죠. 사실 경제성과 내구성 측면에서 목(죽)간은 종이에 견줘 몇 수는 위였습니다. 왜냐. 목간은 주로 습기가 많은 우물이나 연못, 저수지, 배수지 같은 곳에서 집중 출토됩니다. 나무는 산소가 차단된 물 속에서 좀처럼 부식하지 않기 때문에 수백 수천년 동안 보존될 수 있거든요. ■‘구구단·남근형’ 목간의 정체 해방 이후 지금까지 확인된 삼국~..
'3대 천재' 최남선에게 '요즘 젊은애들은 한자를 몰라'고 혀를 찬 '전설' “오등(吾等) 玆(자)에 我(아) 선조(鮮朝)의 독립국 임과 조선인의 자주민 임을 선언 하노라….” 1919년 3월1일 민족대표 33인이 선언한 독립선언서의 도입부이다. 이렇게 시작되는 3·1 독립선언서 2부가 국가등록문화재로 등재되어 있다. 좀 이상하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조선의 독립국 임과~’가 ‘선조의 독립국 임과~’로 둔갑해있다. 왜 ‘조선’을 ‘선조’라 거꾸로 썼을까. 무슨 심오한 의미가 있을까. 허무개그 같지만 아니다. ■‘조선’과 ‘선조’, ‘박탈(剝奪)’과 ‘박상(剝喪)’ 그저 단순한 오자였을 따름이다. 독립선언서의 인쇄 과정을 두고 학계 논쟁이 정리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설처럼 떠도는 이야기가 있다.(조선일보 1986년 3월1일) 당대 최고의 서화가이자 3·1 독립선언의 민족..
김부식도 천대했던 가야, 유네스코가 세계유산 대접해준 이유는? “1000년 전 김부식이 천대했던 ‘가야’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며칠전 한국의 ‘가야고분군’이 제45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7개 가야고분군은 유곡리 및 두락리(전북 남원)·지산동(경북 고령)·대성동(경남 김해)·말이산(경남 함안)·교동 및 송현동(경남 창녕)·송학동(경남 고성)·옥전(경남 합천) 고분군입니다. 유네스코는 “주변국과 자율적이고 수평적인 독특한 체계를 유지하며 동아시아 고대 문명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가 된다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OUV)가 인정된다”고 평가했습니다. ■천덕꾸러기에서 백조로? 이 대목에서 저는 웃음이 나왔습니다. 생각해보십시요...
충무공이 찬 '큰 칼'은 '국보 장검'인가, '사라진 쌍룡검'인가, 아니면… 얼마전 ‘이순신 장검’(2점)이 국보로 지정되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이 뉴스를 접하는 여러분들은 학창시절 배웠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시를 떠올렸을 겁니다. ‘한산섬 달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閑山島月明夜上戍樓)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撫大刀深愁時)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何處一聲羌笛更添愁)’ 삼척동자도 다 알 법한 ‘한산도가’ 입니다. 심화학습에 들어간다면 ‘한산도 야음(夜吟·밤에 읊다)’이란 시도 있죠. ‘넓은 바다에 가을 햇빛 저무는데(水國秋光暮) 추위에 놀란 기러기 떼 높이 나는구나.(驚寒안陣高) 근심스런 마음에 잠 못 이루는 밤(憂心輾轉夜) 새벽달은 활과 칼을 비추도다.(殘月照弓刀)’ 두 시에는 국운을 건 결전을 앞두고 밤잠을 이루지 못한 충무공의 노심초사가..
백선엽은 왜 윤봉길 의사가 죽인 '시라카와 요시노리'로 창씨개명했나 “백선엽의 창씨명이 바로 백천의칙(白川義則), 즉 시라카와 요시노리이다.” 얼마전 윤봉길 의사(1908~1932)와 윤의사에게 ‘도륙된’ 시라카와 요시노리(1869~1932) 관련 기사를 쓰자 제법 달린 댓글이 있었다. 즉 ‘시라카와 요시노리(백천의칙)=백선엽의 창씨명’이라는 댓글이었다. 그 와중에 홍범도 장군(1868~1943) 등의 육사 교정 흉상 문제가 불거지자 소환되는 인물이 있었다. 바로 백선엽 장군(1920~2020)이었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홍범도를 비롯한) 독립영웅 다섯분의 흉상을 없애고 그 자리에 백선엽 장군 등의 흉상으로 대치한다면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 언급했다. “그 분(백 장군)은 일신의 출세와 영달을 위해 일제에 충성하는 길도 마다하지 않고 선택했지만 철거한다는 다섯 분의 영..
'칠(七)'자 기와에 '묻지마' 사적지정…'1500년 국제화약고였으니까'' 겨우 ‘칠(七)’라고 찍힌 명문 기와 조각이 나왔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덕분에 국가 사적으로 지정된(2002년 1월) 산성이 있습니다. 경기 파주 적성 중성산(해발 148m)에 조성된 칠중성입니다. 변변한 발굴조사 한번 없었습니다. 1982~2022년 사이 6차례에 걸쳐 지표 및 정밀지표조사를 벌이는데 그쳤습니다. 다만 2000년 정밀지표조사 때 성 주변에서 수습된 유물 중 ‘칠(七)’명 기와조각이 나온게 눈길을 끌었습니다. 한데 문화재위원회는 “더이상 볼 것도 없다. 향후 발굴조사 할 필요도 없다. 곧바로 사적으로 지정하자”는 결론을 내렸답니다. ‘칠’자 명문 기와조각 1점 나왔다고 ‘묻지마 사적 지정’을 했다는 얘기인가요. 경솔한 결정이 아니었을까요. 꼭 그렇게만 볼 수 없습니다. 사실 ‘발굴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