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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보물만 149점…삼성가의 ‘국보 100점 프로젝트’ 아시나요 지난 4월28일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뉴스가 떴다. ‘세기의 기증’으로 표현된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의 기증이었다.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평생 모았다는 소장품 1만123건(2만3000여점)이 국립중앙박물관(9797건·2만1600여점)과 국립현대미술관(1226건·1400여점)에 기증됐다. ■“유물연구에만 최소 5년 걸릴듯” 특히 기증품 중에는 국보 14건, 보물 46건 등 총 60건의 국가지정문화재가 포함됐다. 진경산수화의 전범이라는 (국보 216호)와 뒤늦게 진가가 드러난 (국보 258호), 현존하는 고려 유일의 (보물 2015호), 단원 김홍도(1757~1806?)의 마지막 그림인 (보물 1393호) 등이 손꼽히는 기증품들이다. 그 뿐이 아니다.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비지정인 고려불화(수월..
‘백제의 요서경략’ 설파하면 ‘사이비’ ‘국뽕’인가 한국사를 공부하다 보면 희대의 기현상과 마주치게 된다. 바로 ‘백제의 요서(遼西·랴오시) 경략’ 관련 기사이다. 를 비롯해 10곳이 넘는 중국 역사서에 명백하게 기술되어 있는데도 그저 ‘설’이라는 모호한 표현이 통용된다. 최근 배달된 이도학 한국전통문화대 교수(융합고고학과)의 단행본(·서경문화사)을 읽고, 기자의 버킷리스트라 할까 예전부터 꼭 다루고 싶었던 ‘백제의 요서경략’ 기사를 쓰기로 했다. 과문한 기자가 이 교수의 주장이 타당한지 아닌지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이교수의 책을 바탕으로 역사서에 등장하는 ‘백제의 요서경략’ 관련 기사를 검토해보고, 어떤 주장이 타당성이 있는지, 객관성을 지니고 있는지 짚어보려 한다. ■중국사서에 등장하는 백제의 요서경략 기사 ‘백제의 요서경략’은 백제가 한때 ‘중국..
"'독립문' 현판글씨, 매국노 이완용의 작품이랍니다." 저는 일제강점기 문화재지정 관련 자료를 들춰보다가 뭔가 이상한 대목을 발견한 적이 있습니다. 일제가 1935년 서울 독립문을 고적(제58호)로 지정했다는 기사인데요. 그것도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인 이마이타 기요노리(今井田淸德)가 주재하는 회의에서 확정했다는 겁니다. ■독립문을 문화재로 지정한 이유 그 뿐이 아닙니다. 그보다 8~9년 전에는 독립문이 방치되어 아예 붕괴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바 있는데요. 이때 “이 참에 헐어버리자”는 의견도 개진됩니다. 그런데 조선총독부는 4100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대대적인 보수공사에 나섭니다. 어째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독립문이라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켜야 할 일제가 왜 대대적인 보수공사에 나서고, 그것도 모자라 아예 ‘천세에 남을 문화재’로 지정했던 걸까요. ..
30년전 '쉬쉬'하며 감췄던 일본식 고분…이제는 말할 수 있다 “아니 이건….” 1991년 3월 26일 전남 함평 신덕고분을 찾은 국립광주박물관 조사팀이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고분의 원형부 서쪽에 드러난 도굴구덩이가 보인 것이다. 더욱이 이 도굴구덩이는 불과 며칠 전에 판 흔적이 분명했다. “팠다가 다시 메운 구멍에는 부러뜨린 소나무 가지가 채 마르지도 않은 상태로 들어있었습니다. 주변에서 갓 베어진 소나무가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도굴 구덩이 주변에는 약간의 철기 부스러기와 도자(刀子·작은 칼)편이 흩어져 있었습니다.”(성낙준 당시 국립광주박물관 학예연구관의 회고) ■생생한 도굴 흔적 그야말로 ‘따끈따끈한’ 도굴 흔적이었다. 당시 이어령 문화부장관이 직접 검찰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검찰 수사를 의뢰했다. 강도높은 검찰 수사가 계속되던 어느 날이..
몽골 쿠빌라이는 왜 “고려만큼은 특별대우하라!”고 명했을까 2018년 강화 옥림리 주택신축부지를 조사하던 한백문화재연구원 발굴단은 의미심장한 유구를 확인했습니다. 이곳은 고려시대에 조성된 강화중성(길이 8.1㎞)의 한 지점이었는데, 그곳에서 9기의 목책구덩이가 보인 겁니다. 열을 이룬 목책구덩이는 성벽 외부로 돌출된 능선에서 치(雉)와 마른 도랑을 조성한 흔적이었는데요. 치와 마른도랑은 아시다시피 외부의 침입을 막는 방어시설이죠. ■울부짖으며 성을 헐었던 강화백성들 그런데 목책구덩이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목책에 사용된 나무기둥을 뽑아내려고 인위적으로 기둥자리를 파내고 흙을 다시 메운 흔적이었는데요. 한마디로 인위적으로 성을 헐어버렸다는 얘기죠. 이 대목에서 를 한번 들춰볼까요. “1259년(고종 49) 6월 18일 강도(강화도)의 내성을 헐었다. 몽골 사신(주고..
1000년 전 지독한 여혐 발언의 장본인은 다름아닌 김부식이었다 올림픽 와중에 양궁 대표팀 안산 선수의 숏컷을 두고 페미니시트라고 공격하는 등 젠더 논쟁을 부추기는 현상이 있었는데요. 참 쓸데없는 논쟁이 아닌가 여겨져요. 그냥 무시해도 좋을 이야기를 굳이 기사로 다뤄서 논쟁을 부추겨서 방문자수 장사하는 황색 저널리즘도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번 주는 역사 속에서도 지금 이 순간 읽어보면 참으로 기막힌 여혐발언을 한 김부식의 사례를 들어 역사속 젠더논쟁(주로 여혐발언)을 살펴봅니다. 문=안산 선수 이야기는 외국언론에서도 크게 다뤘다죠? 답=3관왕을 차지한 안산 선수의 선전 모습을 다룬게 아니라 숏컷머리를 했다고 해서 온라인 상에서 페미니스트라고 공격받고 있는 안산 선수를 다룬 거죠. 2문=역사적으로 젠더 논쟁을 부추긴 사례가 있다면서 어떤 사례입니까? 답=를 편찬..
“국왕은 절대 출입금지 지역”···‘화장실 고고학’의 은밀한 세계 혹시 ‘화장실 고고학’이라는 용어를 들어보셨습니까. 1970년대초 미국에서 처음 시작된 개념인데요. 옛 사람들의 배설물(기생충알 혹은 씨앗)로 당대의 식생활 및 건강상태 등을 복원하는 고고학의 한 방법론이죠. 1980년대부터 일본에서도 각지에서 확인되는 화장실유적과 기생충알을 활발하게 연구해왔죠. 얼마전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에서도 대형 화장실 유구가 확인됐는데요. 1991년 경복궁의 복원 정비가 시작된 이후 꼭 30년 만에 처음으로 화장실터가 나왔다는 게 좀 재미있습니다. ■경복궁에서 확인된 첫번째 화장실 그럼 화장실이 왜 그렇게 보이지 않았을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복원 정비한 곳은 아무래도 궁궐의 중심축, 즉 왕과 왕비가 정사를 돌보고 생활했던 공간이었거든요. 생각해보면 왕과 왕비는 화장실을..
아무도 눈치못챈 세종의 ‘숨겨진 업적’…‘신의 한수’ 될 줄이야 실물로 보이지 않았던 세종대왕 업적의 편린이 얼마전 서울 도심 공평동에서 쏟아져 나왔습니다. 금속활자 ‘갑인자’는 물론, 종합 자동 물시계인 옥루(자격루)와 해시계·별시계 겸용인 일성정시의 등 세종이 심혈을 기울인 국책사업의 결과물이 모습을 드러낸 겁니다. 따지고 보면 세종대왕의 업적이 한둘입니까. 훈민정음 창제와 해시계·물시계·측우기 등 과학기술 장려, 대마도 정벌과 4군6진 개척, 그리고 편찬 등 손으로 꼽을 수 없죠. 더 있죠. 요즘 주목받고 있는 금속활자(경자자·갑인자)의 개발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그런데 ‘숨겨진 세종대왕의 업적’이 한가지 더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만약 세종의 이 업적이 없었다면 아마 고려·조선의 역사는 송두리째 사라졌을 겁니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리일까요. ■신의 한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