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B. Tom’. 조선의 자주외교 의지를 실현하려고 고종(재위 1863~1907)의 지시로 만든 조선의 국새 ‘대군주보(大君主寶)’ 뒷면에 새겨진 미국인 이름이다. 이 이름은 나라와 왕실의 상징이라는 국새에 찍힌 ‘수치의 낙인’이라 할 수 있다. 국권을 지키지 못한채 일제강점기에 전리품으로 일본 궁내청으로 ‘납치’되었고,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정부로 돌아왔지만 한국전쟁 와중에 어이없게 불법반출된 국새, 그 오욕의 역사가 바로 ‘W. B Tom’ 이름에 담겨있다. 그나마 이 ‘대군주보’ 국새를 구입하여 소장한 재미교포의 기증으로 상처 난 모습 그대로나마 환수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재미교포 이대수씨가 기증한 조선의 국새 ‘대군주보’. 미국인인 듯한 W B. Tom의 서명이 선명하다. 고종이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맺을 즈음 청나라와의 사대주의를 청산 하고 자주외교를 펼치겠다는 의지로 제작한 국새다. 그러나 한국전쟁 즈음 미국인인 W B. Tom 이 어떤 경로인지는 모르지만 이 국새를 수중에 넣어 자기 이름을 새겨넣은 것으로 보인다.|국립고궁박물관 제공   

■사대를 청산하려고 만든 국새

문화재청은 1882년(고종 19년) 제작한 국새 ‘대군주보’와 효종의 업적을 기리려고 1740년(영조 16년) 만든 ‘효종어보’를 지난해 12월 재미교포 이대수씨(84세)에게서 기증받았다고 19일 밝혔다. 문화재청은 기증받은 국새 및 어보를 22일부터 3월8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일반에 공개한다.

‘국새’는 국가의 국권을 상징하는 것으로 외교문서나 행정문서 등 공문서에 사용된 도장을, ‘어보’는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의례용 도장을 일컫는다. 환수된 ‘대군주보’는 높이 7.9㎝, 길이 12.7㎝ 크기로 은색의 거북 뉴(龜紐·거북의 형상을 새긴 도장의 손잡이)가 인판(印板·도장 몸체) 위에 자리하고 있는 국새이다.

<고종실록> 1882년(고종 19년) 7월1일자 등은 “호조가 ‘대군주(大君主)’, ‘대조선대군주(大朝鮮大君主)’, ‘대조선국대군주(大朝鮮國大君主)’ 옥새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전까지 조선은 명나라와 청나라에게서 받은 ‘조선국왕지인(朝鮮國王之印)’이라고 새겨진 국새를 사용한 바 있다.

재미교포 이대수씨가 기증한 국새 ‘대군주보’(왼쪽)와 어보 '효종어보'. 

전문가들은 고종이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1882년)하는 등 당대 조선의 정세 변화에 발맞추어 중국과의 사대관계를 청산하고 독립된 주권국가로 전환을 꾀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고종실록> 1894년(고종 31년) 12월17일 자는 “주상 전하를 대군주 폐하로, 왕비전하를 왕후 폐하로, 왕세자 저하를 왕태자 전하로 호칭한다”고 밝혔다. 또 3년 뒤인 1897년(고종 34년) 9월8일 <고종실록>은 “만국의 지도자를 나라의 습속에 따라서 대황제(大皇帝), 대군주(大君主), 대통령(大統領)이라 부른다”고 소개했다.

‘대군주보’는 1882~1897년 사이에 사용됐다. 서준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외국과의 통상조약 업무를 담당하는 전권대신을 임명하는 문서(1883년)에 실제 날인된 예도 확인됐다”고 전했다. 또 1894년 갑오개혁 이후 새롭게 제정된 공문서 제도를 바탕으로 대군주(국왕)의 명의로 반포되는 법률, 칙령, 조칙과 관원의 임명문서 등에 사용된 사실도 있었다. ‘대군주보’와 함께 기증된 ‘효종어보’는 높이 8.8㎝, 길이 12.6㎝ 크기에 황색의 거북 뉴가 올려진 인장이다. 1740년(영조 16년) 영조가 효종에게 ‘명의정덕(明義正德)’이라는 존호를 올리며 제작됐다.

‘대군주보’의 날인. ‘대군주보’는 1882~1897년 사이에 사용됐다.|국립고궁박물관 제공


■이완용 아들의 폭언 ‘몇푼 안되는 어보잖아’

이번 기증 유물 중 ‘대군주보’에 새겨진 ‘W B. Tom’ 서명이 유독 눈에 거슬린다. 조선 왕조의 오욕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미국인 서명이기에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수난의 역사는 빙산의 일각이다. 다음 기사를 확인해보라.

“1924년 4월10일 아침 종묘안 영녕전에 안치되었던 덕종(성종의 아버지·추존왕·1438~1457)과 예종(재위 1468~1469) 어보가 분실된 사실이 확인됐다. 놀라운 소식을 들은 이왕 전하(순종)가 밤을 새우며 ‘보(寶)를 찾았느냐’고 물으시고….”

4월13일 동아일보는 종묘 영녕전에 안치되어 있던 덕종과 예종 어보의 분실사건을 보도하면서 “종묘내 절도는 500년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 개탄했다. 더욱 기가 찬 것은 실무책임자들의 작태였다.

어보 관리는 이른바 이왕직 산하의 예식과가 담당했다. 당시 예식과장은 매국노 이완용(1858~1926)의 아들인 이항구(1881~1945)였다. 그런데 그 이항구가 순종이 어보를 잃어버려 발을 동동 구르던 10일 아침부터 이왕직 차관 시노다 지사쿠(條田治策·1872~1946)와 골프를 즐긴 사실이 언론의 집중포화를 당했다. 그러자 이항구는 이해할 수 없는 망언을 내질렀다. 동아일보 4월15일자의 ‘이항구의 폭언’ 기사를 읽어보자.

“이왕직 예식과장 이항구는…조금도 근신한 태도가 없이…각 신문기자가 모인 자리에서 ‘종묘의 어보는 당장 쓰는 것도 아니고, 승하하신 뒤에 만들어놓은, 돈으로 쳐도 몇 푼 안되는 것인데 그만한 것을 잃었다고 좋아하는 꼴푸(골프) 놀이를 못한단 말이요?’라 했다.”

다음 말이 더욱 가관이었다.

“아니 그럼 집에서 술을 먹거나 기집(계집)을 데리고 노는 것도 못하겠구려!”

이것이 사람의 머리를 하고 짐승의 소리를 지르는 ‘인두축명(人頭畜鳴)’이 아니고서야 무엇이겠는가. 사건이 일어나기 두 달 전인 2월11일 일본의 기원절을 맞아 남작 작위를 받은 이항구였기에 기고만장이 하늘을 찔렀을 것이다. 잃어버린 덕종 및 예종어보는 “이왕직이 조선미술품제작소에 명하여 새로 제작하도록 했고, 위안제를 지낸 뒤 종묘에 다시 안치했다”는 매일신보 기사(1924년 5월2일)가 등장한다.

일본과의 통상장정세칙 및 비준 교환에 대한 국왕의 전권위웜장에 찍힌 ‘대군주보’. |규장각 제공

■국새 어보의 수난사

이렇듯 국새와 어보는 국권을 잃은 일제강점기 이후 엄청난 수난을 겪는다. 

<순종실록>은 국권침탈 6개월 후인 1911년 3월3일 “이왕직 차관인 고미야 미호마쓰(小宮三保松)가 옛 국새와 보새를 총독부에 인계했다”고 썼다. 이렇게 인계된 국새는 일왕의 진상품으로 바쳐져 일본 궁내청으로 들어가는 모욕을 겪었다. 옛날 금나라는 황제가 주관하는 제사에서 금나라 국새와 함께 패망국 국새를 궁궐 뜰에 진열했다(<금사>). 승전국의 자긍심을 높이는 행사였겠지만 패망국으로서는 굴욕적인 이벤트였을 것이다. 국권과 함께 국새를 빼앗긴 조선의 신세와 다를 바 없다.


■전쟁 중 잃어버린 국새 및 어보

1945년 8월15일 해방과 함께 미군정청이 일본 궁내청에 소장돼 있던 조선 및 대한제국 국새를 모두 인수하여 대한민국에 정식으로 인계했다. 1949년 2월3일부터 10일간 총무처 주관으로 되찾은 국새와 함께 대한제국 조약문서를 국립박물관에서 특별 전시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한제국의 국새는 일본에서 가져온 대로 전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전시회가 끝난 뒤 이 국새를 비전문기관인 총무처가 관리했던 게 뼈아픈 실책이었다. 전쟁 와중에서 국새를 모두 잃어버린 것이다.

1924년 종묘 영녕전에 안치된 덕종(성종의 아버지·추존왕)과 예종 어보가 분실된 사실을 보도한 동아일보 기사. 기사 옆에 종묘를 관리하는 이왕가 예식과장인 이항구(이완용의 아들)이 도난 사건이 일어난 4월 10일 ‘골프놀이에 취했다’는 폭로기사도 함께 실렸다. 

1965년 3월25일 동아일보 사설은 “국민 중 몰지각한 분자들은 외국인의 환심을 사려고 고귀한 물건을 선물하는 버릇이 있는 것 같고, 국보든 무엇이든 가리지 않는 악질적인 경우가 간혹 있다는 소문이 돈다”고 지적했다. 전쟁 중 잃어버렸던 ‘대원수보’, ‘제고지보’, ‘칙명지보’ 등 3과는 1954년 경남도청 금고에서 발견됐다는 기사도 등장한다. 경향신문 1952년 3월4일자는 전쟁 중 국새의 파란만장한 사연을 담았다.

“서울 계엄 만사부에서 옥새와 보검을 압수하여 한국은행에 보관 중인데 이번에는 미군이 우리나라 국보를 발견해서 계엄민사부에 전했다…옥새를 미국인이 소유하기까지 네 사람의 손을 거쳤다.”

왕실을 상징하는 도장이 이런저런 사람들의 손을 거쳐 급기야 미국인에게 넘겨졌다는 안타까운 사연이다. 이후에도 5월까지 서울 곳곳에서 옥새를 발견했다는 기사가 여럿 보인다. 동아일보 1952년 4월27일자는 “미군이 옥새를 감정 중이라는 첩보를 듣고 금은방 현장을 급습해서 옥새를 압수했다”고 썼다. 한국 전쟁중 종묘에 있던 어보 상당수가 도난당해 미군 수중에 들어갔던 정황을 알 수 있다.

이번에 환수된 ‘대군주보’ 국새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한국전쟁 전후 ‘W B. Tom’이라는 미국인이 어떤 경로인지는 모르지만 이 국새를 수중에 넣고는 자기 이름을 버젓이 새겨넣은 것이 틀림없다.

언론의 지적이 계속되자 이항구는 “(어보는) 돈으로 쳐도 몇 푼 안되는 것인데 그만한 것을 잃었다고 좋아하는 꼴푸(골프) 놀이를 못한단 말이냐”면서 “아니 그럼 집에서 술을 먹거나 기집을 데리고 노는 것도 못하겠구려!”라고 항변했단다. 기막힌 일이다.

■속속 돌아오는 왕조의 상징물

불행 중 다행으로 최근에는 미군이 가져간 이후 미국에서 유통된 국새나 어보의 국내환수가 상당수 이뤄지고 있다. 2009년 3월 재미교포가 소장한 고종의 지밀 국새라는 ‘황제어새’가 환수되어 보물(제 1618호)로 지정된 바 있다. 

2014년에는 미국 정부가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 방한을 계기로 ‘황제지보’ 등 9점의 국새 및 어보를 한국 정부에 돌려준 바 있다.

특히 2014년 문화재청이 미국 국토안보국(DHS) 소속 이민관세청(ICE)과 ‘한미 문화재 환수 협력 양해각서’(이하 양해각서)를 맺으면서 미군이 가져갔던 국새 및 어보의 환수가 급물살을 탔다. 미국 이민관세청은 문화재청과 함께 ‘호조태환권 원판’ 등 미국에 있는 불법 반출 한국 문화재에 대한 수사 공조를 추진했던 국토안보수사국(HSI)의 상급기관이다.

 

■국새 어보는 사유품이 될 수 없다

한가지 의문이 든다. 미국내 소장 중인 국새 및 어보가 불법반출됐다는 증거가 어디 있는가. 한국에서 돈을 주고 합법적으로 구입했다면 불법반출물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1945년 8월15일 해방 이후 미군정청은 일제가 빼앗아간 국새 및 어보를 고스란히 돌려준 적이 있다. 국새 및 어보는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 한 나라, 한 왕조의 상징물이라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국새 및 어보를 가져갔다가 돌려준 예도 있고, 금은방에 처분하려다 현장에서 적발된 예도 있다(경향신문 및 동아일보). 

매일신보 1924년 5월2일자. 어보가 도난되자 이왕가가 조선미술제작소에 명해 새로운 어보를 제작한 뒤 이를 종묘에 봉안하면서 ‘위안제’를 지냈다는 내용이다.

따라서 미국내에 소장된 국새나 어보를 유통 혹은 매매하는 경우는 불법으로 처벌받게 됐다. 비록 한·미간 양해각서를 맺기 전에 합법적으로 국새 및 어보를 샀다 해도 유통 및 매매하게 되면 미국 연방 도품(도난품)법에 따라 재산형 및 몰수형을 받게 된다.

한·미 간 양해각서는 미국내 불법반출 문화재, 특히 국새 및 어보의 환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2017년 역시 한·미 공조로 한국전쟁 때 미국으로 불법 반출이 된 문정왕후 어보(御寶)와 현종어보가 환수됐다. 두 어보는 개인 소장자의 판매로 LA카운티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문화재청이 2013년 이 어보를 도난품으로 규정하고 미국 국토안보수사국에 수사를 요청했으며, 진품 확인 및 법적 소송 절차 등을 거쳐 반환됐다.

경향신문 1952년 3월4일자, 미군이 옥새를 발견해서 서울 계엄사령부에 전달했다는 내용이다. 기사를 보면 “그런데 옥새를 미국인이 소유하지 되기까지 무려 4명의 손을 거쳤다”고 했다. 국새 및 어보관리가 얼마나 엉망이었는지 알 수 있다.

■자발적인 기증, 우호적인 환수의 예

이번에 문화재청에 기증된 국새(‘대군주보’)와 어보(‘효종어보’)의 경우 재미교포 이대수씨(84)가 1990년대 미국내 경매를 통해 정상적인 경로로 구입한 문화유물이다. 합법적으로 유물을 구입한 이대수씨로서는 무척 억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씨는 고민 끝에 국새 및 어보가 정부의 소중한 재산이라면 대한민국 정부에 돌려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여기에 2014년 ‘대한제국’ 국새를 포함한 9점이 대거 환수되고, 2017년에도 ‘문정왕후 어보’와 ‘현종어보’가 환수되는 기사들을 접하면서 기증 결심을 굳혔다.

미국에서 이씨의 기증을 도운 미주현대불교 발행인 김형근씨(64)는 “이대수씨가 국새 및 어보의 처리를 두고 고민하다가 나와 연결된 것”이라면서 “국내의 신영근씨(아도모례원 성역화위원장) 등을 통해 문화재청 기증이 성사된 것”이라고 전했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이번 환수는 압수나 수사와 같은 강제적 방식이 아니라 제3자의 도움과 소유자 스스로의 자발적 결심이 이뤄낸 성과”라면서 “우호적 환수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김병연 문화재청 국제협력과 사무관은 “조선시대에 제작된 국새 및 어보가 총 412점이지만 여전히 73점은 행방불명 상태”라면서 “국새 및 어보는 대한민국 정부의 재산이어서 소지 자체가 불법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사무관은 특히 국새 및 어보의 경우 “유네스코 123개 회권국을 비롯해 인터폴과 미국국토안보수사국 등이 행방불명 유물목록을 공유하고 있다”고 밝혔다.(이 기사를 쓰는데 ‘성인근의 <국새와 어보-왕권과 왕실의 상징>, 현암사, 2018년’을 참고했습니다.) 경향신문 선임기자

Posted by 이기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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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imduhan 2020.02.20 18: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과 한국은 전쟁을 하고 없으며 그래서 국새가 전리품이라고 간주된 사실도 없다.망상의 칼럼이다.

  2. 이규인 2020.03.02 0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들 잘 보고 있습니다. 역사에 대해 자세히 알아가는게 재미있고 아주 유익합니다. 즐겨찾기에 추가하고 시간날 때마다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