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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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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탓이오'를 외친 임금 팝가수 엘튼 존의 노래 중에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가 있다. 1976년 발표된 이후 40년 가까이 사랑 받고 있는 ‘사과송(謝過頌)’이다. 말 그대로 ‘미안해’라고 한마디만 하면 될 일인데 무엇이 그렇게 가장 하기 어려운 말이라는 건가. 하지만 노래처럼 ‘사과’란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1960년 4·19 혁명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성명은 ‘국민이 원한다면 물러날 것이며…선거에 많은 부정이 있다 하니 다시 치르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사죄는커녕 ‘국민이 원한다면…’, ‘많은 부정이 있다 하니…’라는 가정법에서 유체이탈 화법의 원조격임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조운선. 충청도 태안 앞바다에서 특히 배사고가 많았다. 조선조 태종 때도 조운선 34척이 침몰..
당신은 '개고기'입니다 지금은 잘 쓰지 않지만 성질이 흉악한 사람을 ‘개고기’라 일컬은 때가 있었다. 살아서는 한없이 충성스럽고, 죽어서는 여름철 보양식으로 사랑받아온 개와 개고기가 왜 망나니를 뜻하는 나쁜 말로 변했을까. 어릴 적 악몽이 떠오른다. 해마다 복날이면 마을 한복판에 개를 매달아놓고 몽둥이로 매질을 가해 천천히 죽였던 그 끔찍한 기억 말이다. 온 동네 개들은 비명 속에 죽어가던 ‘동족’을 처절한 울부짖음으로 보내주었다. 개가 고통을 느껴야 호르몬이 분비돼 육질이 부드러워진다나 어쩐다나. 그 잔인한 의식이 끝나고 팔팔 끓는 개고기를 땀 흘려가며 먹었던 바로 그 사람들…. 망나니 같은 그들의 잔인함에서 비롯된 말이 ‘개고기’라는 표현이 아니었을까. 김준근의 '기산풍속도'. 개도살자가 복날 개를 잡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태조 왕건이 낙타를 굶겨죽인 이유 942년(태조 25년) 일어난 만부교 사건은 고려 475년 역사 가운데서도 최대 미스터리로 꼽힌다. “고려는 거란이 보낸 사신 30명을 유배시키고, 낙타 50필을 만부교 밑에 매달아 굶어죽게 했다.”() 태조는 “거란이 발해를 하루아침에 멸망시켰으니 무도함이 심하다”는 이유를 꼽았다. 이 대목에서 상당수 연구자들은 고구려·발해의 계승자로서 고토 회복을 염두에 둔 태조 왕건의 북진정책을 잘 보여준 것이라고 해석했다. 북한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의 만부교(낙타교) 상상도. 태조 왕건이 거란이 보내온 낙타 50마리를 굶겨 죽인 사건은 지금도 수수께끼 같은 외교분쟁으로 운위된다. 실제로 태조 왕건은 거란을 공존해서는 안될 나라로 여겼다. 태조는 이른바 ‘훈요 10조’를 남기면서 특히 거란을 겨냥한 조목을 2개나..
세작인가 X맨인가 간첩질이나 스파이 노릇을 뜻하는 말 중에 ‘세작(細作)’이라는 어려운 말이 있다. 당나라 육덕명이 “첩자(諜者)의 첩은 간첩의 첩이며, 지금으로 치면 세작이다”라 풀었으니 첩자·간첩·세작은 다 같은 말이다. 세작은 절대 비겁한 전략이 아니다. ‘용간(用間)’편은 ‘백성들의 희생을 최소화해서 승리를 얻으려면 반드시 첩자를 통해 적정을 살펴야 한다’고 했다. 피를 흘리지 않고 이기는 법이니 전쟁에서 가장 핵심적인 책략이라 할 수 있다. 4만근의 황금을 첩자들에게 풀어 초나라 항우와 범증의 사이를 갈라놓은 한나라 진평의 계책은 세작의 전범으로 꼽힌다. 세작인들은 초나라로 들어가 책사 범증이 항우를 배신할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린다. 의심에 빠진 항우가 적정도 살필 겸 사신을 보낸다. 그러자 유방이 ‘몰래카메라’..
파란만장한 창의문 옛길 어릴 적 창의문(서울 종로) 근처에서 자랐던 필자에게 지금도 떠오르는 기억의 조각들이 몇 편 있다. 늘 굳게 잠겨 있던 자하문(紫霞門·창의문의 별칭)과, 수확철이면 어머니가 문밖 과수원에서 한 대야씩 사왔던 능금, 소나무에서 후드득 떨어지는 송충이, 그리고 끔찍한 1968년 1월21일의 밤…. 그런데 필자의 어릴 적 기억들이 창의문의 심상찮은 역사와 맞닿아 있으니 웬일인지 모르겠다. 창의문은 소의문·광희문·혜화문과 함께 조선의 4소문으로 건립됐지만 초창기부터 출입이 통제되는 비운을 맛봤다. “창의문이 경복궁을 위에서 찍어누르는 형국이니 소나무를 심어 출입을 금해야 한다”는 풍수가들의 주장 때문이었다. 창의문은 인조반정의 현장이기도 하다. 1623년 3월13일 장단부사 이서 등이 이끄는 인조반정군은 창의문..
'사무사(思無邪)'와 아베 정권 “시 300편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생각에 사특함이 없는 것이다.(詩三百 一言以蔽之 曰思無邪)”( ‘위정편’) 유명한 공자의 ‘사무사(思無邪)’ 발언이다. 공자는 민간에서 전승됐던 시 300여편을 모은 을 가리켜 ‘생각에 사특함이 없는 주옥같은 시 모음집’이라고 칭송했다. ‘사무사’는 공자의 창작 용어가 아니다. 의 한 편인 ‘노송(魯頌) 경편(경篇)’에 등장하는 ‘사무사’ 구절을 인용했을 뿐이다. 무라야마 전 일본총리는 9일 열린 고노 전 관방장관과의 대담에 앞서' 방명록에 사무사(思無邪)를 적었다. 아베 신조 총리의 역사왜곡을 꾸짖는 것이었다.|연합뉴스 “~생각에 사특함이 없으니 말(馬)을 생각함에 이에 미치는구나(思無邪 思馬斯조)”라는 대목이다. 이 시는 춘추시대 노나라 희공이 백성들의 밭을 피해 ..
시진핑의 고사성어 외교 “과거를 잊지말고 앞날의 가르침으로 삼자.(前事不忘 后事之師)”( ‘조책’)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3월 독일 베를린 강연에서 일본의 난징 대학살을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는 뜻의 고서성어를 인용했다. 지난해 9월 미-중 전략경제대회에서는 “자기가 원치 않은 일은 남에게 시켜서는 안된다(己所不欲 勿施於人)”는 ‘안연’을 떠올렸다.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지 말고 상대방을 인정하라고 미국 측에 주문한 것이다. 시진핑의 ‘고전 인용’은 정평이 나있다. 그 가운데 즐겨 인용하는 것이 와 송나라 시인 소동파의 시라고 한다.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방문 때는 ‘천리 멀리 한껏 바라보고자 다시 한 층을 오른다(欲窮千里目 更上一層樓)’는 당나라 시인 왕지환의 ‘등관작루(登관雀樓)’를 인용했다. 지난해 ..
벼, 쌀, 밥…똑같은 타밀어와 한국어 드라비다인은 유럽 아리아족의 침입 때(기원전 15세기) 인도 남부로 쫓겨난 토착민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드라비다인의 언어(타밀어) 가운데 한국어와 유사한 단어가 400~1300개나 된다고 한다. 쌀은 sal, 벼는 biya, 밥은 bab, 풀(草)은 pul, 씨(種)는 pci, 알(粒)은 ari, 가래(농기구)는 kalai, 사래(밭고랑)는 salai, 모(茅)는 mol이라 한단다. 볍씨를 ‘아리씨’라 하는 것도 흥미롭다. 아빠와 엄마(암마), 언니(안니)의 경우도 거의 같은 발음이고, 궁디(엉덩이), 찌찌(남성 생식기) 등 신체기관의 명칭도 심상치 않단다. ‘현대 한국어=알타이어 계통’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배워온 사람들이라면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는 이야기이다. ‘위서 동이전’은 “중국 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