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팟 캐스트-흔적의 역사

(313)
‘4㎜의 반전매력’…1500년간 ‘흠결’ 숨긴 78호 반가사유상 “세상사가 힘들 때 찾아와 영혼까지 치유받고 간다”는 문화유산이 있다.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이다. ‘반가사유’는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무릎 위에 얹고 손가락을 뺨에 댄채 생각에 잠긴 자세를 가리킨다. 출가 전 인간의 생로병사를 고민하고 명상에 잠긴 싯다르타(부처의 출가전 이름) 태자를 조각한 상에서 유래했다. 6~7세기에 유행한 반가사유상은 30여 구 남아있는데, 그중 국보 78호와 83호가 으뜸이다. ■78호보다 83호? 물론 문화재, 그것도 국보의 우열을 가린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다. 그래도 피어나오는 객쩍은 질문 하나가 있다. 78호와 83호 중 딱 한 점을 꼽으라면 어떨까. 대체로는 78호보다는 83호를 선호할 것 같다. 무엇보다 83호가 일본의 국보 1호(조각부문)인 일본 고류지(광륭사·廣隆寺..
숭례문, 교과서와 공문서에서 ‘국보 1호’ 꼬리 60년만에 뗀다 국보 1호 숭례문, 보물 1호 흥인지문, 사적 1호 포석정…. 문화재의 서열화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은 문화재 지정번호 제도가 60년 만에 개선된다. 기존의 지정번호는 ‘내부관리용’으로만 활용된다. 이에따라 각종 고문서와 교과서 등에서 ‘국보 1호 숭례문’은 ‘국보 숭례문’으로, 보물 1호 흥인지문은 ‘보물 흥인지문’으로, 사적 1호 포석정은 ‘사적 포석정’으로 표현이 바뀐다. 문화재청은 최근 문화재 지정번호의 개선을 골자로 한 올해 주요업무계획을 발표했다. 김현모 문화재청장은 “문화재 지정번호로 문화재가 서열화되고 있는 일부 인식을 개선하고자 관리번호로 운영하고, 비지정문화재까지 포함한 보호체계를 새롭게 마련할 방침”이라고 배경을 밝혔다. 개선안에 따르면 문화재 지정번호는 완전 폐지되지는 않는다. 문화..
백제의 '리즈' 시절을 웅변하는 석촌동 고분…100m 연접분의 정체는 “어, 이거 웬 구멍이야?” 2015년 5월, 서울 송파구 석촌동 고분군(사적 243호)을 관리하던 이가 이른바 석촌동 1호분의 북쪽 잔디광장에서 직경 25㎝의 동공을 발견했다. 순간 머리카락이 바싹 섰다. 고분군 밑으로 백제고분로 지하차도가 관통하고 있는데다 그 밑에서는 지하철 9호선 공사가 한창이었다. 도굴 가능성 뿐 아니라 당시 석촌호수 주변에서 심심찮게 나타나던 싱크홀일 수도 있었다. ■100m나 끊임없이 이어지는 연접분 한성백제박물관 조사팀의 시굴 결과 동공은 지하수 확보를 위해 팠다가 사적공원 지정 후 폐기된 우물터가 함몰되면서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런데 조사과정에서 의미심장한 현상을 목격했다. 관정 벽면에서 인위적인 석축열과 점토성토층이 드러난 것이다. 본격 발굴하자 깜짝 놀랄만한 유구..
'비운의 인종'이 ‘절친’ 신하에 그려준 ‘묵죽도’ 목판엔 어떤 뜻이… “…굳은 돌, 벗의 정신이 깃들었네. 조화를 바라시는 임금의 뜻을 이제 깨닫노니….” 비운의 왕 인종(1515~1545·재위 1544~1545)이 절친이자 스승인 신하에게 ‘정표’로 내린 ‘묵죽도’ 목판이 도난 15년만에 회수됐다. 문화재청 사범단속반과 서울 경찰청 지능수사대는 공조수사를 통해 2006년 2월 하서 김인후(1510~1560)를 모셨고, 201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서원)으로 등재된 필암서원(전남 장성)에서 도난된 ‘하서 유묵 묵죽도판’(전남 유형문화재 216호) 3점을 회수했다고 1일 밝혔다. ■도난문화재 34점 회수 사범단속반은 이 과정에서 1980년 도난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창 선운사 소장 ‘석씨원류’ 1점(전북 유형문화재 14호)과 2008년 도난된 충북 보은 선병국 가옥(국가민속문..
"해치는 '서울의 상징' 자격없다"…"물짐승 아닌 하마비일뿐" ‘아니 해치가 언제부터, 왜 서울의 상징이 되었을까. 그리고 원래 해태가 아니었나.’ 서울 시내 여기저기서 보이는 ‘해치 캐릭터’를 보고 늘 의아스럽게 생각했던 게 바로 ‘서울의 상징동물이 해치’라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서울시와 문화재청이 추진 중인 광화문 역사광장 조성계획에 ‘광화문 앞 월대와 해치상의 제자리 찾기’ 사업이 포함되어 지난해 11월부터 본격 공사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접했다. 호기심이 발동한 필자가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게 됐다. 광화문 앞 양옆에 서있는 해치상. 1870년(고종 4년) 10월 9일자를 보면 “대궐 문에 해치를 세워 한계를 정했으며, 조정 신하들은 그 안에서는 말을 탈 수가 없다”는 내용이 나온다. 경복궁 중건 때 해치상을 세움으로써 대궐의 안팎을 구별했고, 이곳에 이르러..
청와대터는 임금 측근들의 충성서약을 받은 회맹터였다 ‘회맹(會盟)의식’이 있었다. 중국 춘추시대(기원전 770~403)의 산물이었다.천자국인 주나라가 힘을 잃은 뒤부터 시작됐다. 강대한 제후국 군주는 이름 뿐인 주나라왕을 대신하여 천하를 주물렀다. ‘회(會)’는 일정한 의제와 장소, 시간을 정해 다른 제후국 군주들이 모이는 것을 이른다. ‘맹(盟)’은 회맹에 참여한 제후들이 차례로 제물의 피를 입술에 바르는 의식을 말한다. 이를 ‘삽혈(삽血)’이라 한다. 국보로 승격되는 ‘보물 제1513호 20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 숙종 때까지 20여차례에 걸쳐 공신이 된 인물들의 후손이 모여 충성서약을 맺은 결과물이다.|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입술에 피 바르는 의식회맹을 주도한 제후가 가장 먼저 삽혈했다. 이 제후는 다른 제후들에 의해 패자(覇者)로 추대됐..
최치원 초상화 속 '숨은그림'…두 동자승은 누가 왜 지워졌을까 예전엔 마산이었지만 지금은 경남 창원시 합포구로 행정지명이 바뀐 ‘월영대’를 얼마 전에 찾았다. 그곳에는 통일신라말 대문장가인 최치원(857~?)이 ‘월영대’라는 친필 글씨를 대자로 새긴 것으로 유명한 2m가 넘는 각석이 우뚝 서있다. 최치원이 가야산에 입산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머물러 ‘노닐며’ 대를 쌓아두고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유서깊은 곳이다. 최치원의 초상화인 ‘운암영당고운선생 진영’(경남 유형문화재 187호). 의자에 앉아 화면 왼쪽을 응시하고 있는 전신상의 최치원을 그렸다. 2009년 국립진주박물관의 X선 촬영결과 이 영정의 제작시기·장소를 알리는 화기(畵記)와 함께 두 동자승의 모습이 나타났다. |최현욱·곽홍인·신용비의 논문에서■고려·조선문인의 순례성지 ‘아득히 푸른 물결 위에 우뚝 솟은 바위…..
고아원에서 살았던 독립투사의 증손들…일가족 망명한 임청각의 사연 얼마 전에 경북 안동 임청각이라는 유서깊은 가옥이 일제강점기 이전의 모습으로 복원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보물 182호로 지정된 집인데요. 7년간 280억원을 들이는 사업이랍니다. 일제강점기에 중앙선 철도를 놓으면서 이 가옥의 앞마당을 관통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하는데요. 임청각은 80여 년 만에 진정한 독립을 이루는 셈이라고 하네요, 어떤 사연이 있는 지 알아봅니다. 석주 이상룡 선생. 일가족이 서간도로 망명하여 평생 독립운동을 펼친 분이다.문=임청각이 가옥이라고 했는데요, 보물로 지정될만큼 유서깊은 집인가보죠? 답=임청각은 경북 안동 낙동강 상류에 자리잡고 있는데요. 1515년(중종 10년) 지어진 가장 오래된 민가입니다. 고성 이씨 가문이 대대로 살았던 집이수요. 어느 방에서나 아침 저녁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