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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 캐스트-흔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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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2~3점 뿐이라는 안평대군 친필, 오구라 유물에 숨어있었네 ‘어, 안평대군의 글씨가 있네. 진적이 거의 없다고 하더니만….’ 얼마 전 필자가 이른바 ‘일제강점기 오구라(小倉)와 오쿠라(大倉)의 한국 문화재 반출’ 기사를 준비하면서 이른바 ‘오구라 유물’의 도록을 훑어보았다. 도록은 2007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가 국외소재 문화재 조사사업의 하나로 일본 도쿄(東京) 국립박물관을 찾아가 4차례에 걸쳐 조사했던 1100여 점의 사진과 함께 유물 설명을 곁들였다(국립문화재연구소의 ‘해외소재문화재조사서 제12책’, 2005). 필자는 주로 일본의 중요 문화재 및 중요 미술품으로 지정된 39건을 위주로 기삿거리를 찾았다. 그러다가 회화·전적·서예 부문까지 훑어보던 필자의 시선이 머문 곳이 있었다.일제강점기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1870∼1964)가 반출해간 ‘오구라 유..
신라의 바둑 공주, '아담사이즈' 금동관 쓰고 1500년만에 재림했다 ‘바둑 고수’였던 신라 공주가 ‘아담 사이즈 금동관’ 등으로 치장한채 환생한 것일까. 미성년자로 짐작되는 신라여성이 무게 약 1000t(트럭 약 200대분)에 달하는 돌무지에 묻혀있다가 1500년 만에 홀연히 등장했다.2014년부터 경주 쪽샘지구를 조사해온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44호 돌무지덧널무덤에서 무덤주인공이 착장한 금동관(1점), 금드리개(1쌍), 금귀걸이(1쌍), 가슴걸이(1식), 금·은 팔찌(12점), 금·은반지(10점), 은허리띠 장식(1점) 등 장신구 조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주인공 주변에서는 비단벌레 딱지날개로 제작된 금동 장식 수십 점과 돌절구·공이, 바둑돌(200여 점)과 운모(50여 점) 등이 쏟아져 나왔다.경주 쪽샘 44호분 주인공의 출토현황. 순금제 드리개를 늘어뜨린 금동관과 ..
한국문화재 털어간 '큰 창고(오쿠라) 작은 창고(오구라)'는 누구? “장관님, 오쿠라(大倉)가 아니라 오구라(小倉)입니다.” 2015년 2월 웃지 못할 기사가 하나 떴다. 한 시민단체 소속 학생들이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공개질의서를 보냈다는 것이었다. 당시 문화부 장관이 2014년 11월 열린 한·중·일 문화장관 회의에서 일본 문무과학성 대신에게 “오쿠라 컬렉션 등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가져간 한국문화재를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는 것이다. 오구라 유물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전 경남 출토 금관’. 신라의 전형적인 ‘출(出)자’형이 아니라 가야의 특성인 ‘초화(草花)’ 형 금관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도록에서 오쿠라와 오구라는 엄연히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자성으로 오쿠라는 ‘대창(大倉)’이고, 오구라는 ‘소창(小倉)’이다. 예전엔 큰 대(大)자를 ‘오..
15m '세한도'엔 중국 한국 문사 20명 댓글 달려있었네…여백 5m는 무엇? “절개가 견고하다가 급한 순간에 변하는 이도 있다…군자가 소나무와 잣나무의 절개를 배우는 이유를 알 수 있다고 했다…세상을 떠나 있으니 걱정이 없다는 심정으로 추사옹의 마음을 엿보다.”(장악진)1845년(헌종 11년) 청나라 명사 장악진(생몰년 미상)이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세한도’(국보 제180호)를 본 뒤 남긴 감상평이다. 장악진 뿐이 아니다. 청나라 문사 16명과 조선의 오세창(1864~1953)·이시영(1869~1953)·정인보(1893~1950) 선생 등 4명까지 모두 20명이 ‘세한도’에 줄줄이 시쳇말로 ‘긴 댓글’을 달았다. 물론 20개의 댓글이 모두 ‘선플’로 도배했으니 ‘세한도’의 명성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을 만 하다. 애초에 세로 23.9㎝, 가로 70.4㎝ 정도였던 ‘세..
"해시계를 종로거리에 걸라"…세종대왕이 천기를 누설한 이유 “때를 아는 것보다 중한 것이 없는데…밤에는 자격루가 있지만 낮에는 알기 어려워…신(神)의 몸을 그렸으니 어리석은 백성을 위한 것이요. 해에 비쳐 각(刻)과 분(分)이 환하고 뚜렷하게 보이고, 길 옆에 설치한 것은 보는 사람이 모이기 때문이다.”1434년(세종 16년) 10월2일 기록이다. 세종이 ‘어리석은 백성’을 위한 또하나의 발명품을 선보였다는 내용이다. 즉 해시계인 앙부일구(仰釜日晷)를 시내 혜정교(종로 1가 광화문우체국 부근)와 종묘 앞에 설치했다는 것이다. ‘하늘을 우러러 보는(仰·앙) 가마솥(釜·부) 모양에 비치는 해 그림자(日晷·일귀)로 때를 아는 시계’라는 뜻이다. 이것은 1859년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궁전 북쪽 끝에 설치한 빅벤보다 415년이나 빠른 공중시계탑이라 할 수 있다.국외소..
'돌담장으로 폐쇄한 성문'…통곡하며 헐어야 했던 강화성의 흔적 13세기 전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몽골군에게도 아킬레스건이 있었다. 바로 물에 대한 경외심이었다. 부족을 통합한 칭기즈칸(재위 1206~1227)이 ‘물이나 재에 방뇨하는 자는 사형이 처한다’(제4조), ‘물에 손 담그는 것을 금한다. 물은 반드시 그릇으로 떠야 한다’(제14조)는 법을 제정했을 정도였다. 물이 부족한 초원·사막지대에 사는 부족이었기에 당연했다. 몽골군의 침입에 맞서 도읍을 옮긴 고려가 쌓은 강화 중성의 흔적. 몽골의 압력으로 성을 폐쇄한 뒤 돌담장으로 메워버린 흔적이 고스란히 보였다.|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 제공 그런 면에서 고려조정이 몽골군이 침입하자(1231년) 강화섬으로 피란처를 삼은 것은 신의 한수였다고 할 수 있다(1232년). 고려는 강화섬에 궁성에 해당되는 내성과 도성 격인 중..
이미 131년전 한글 모음(ㅏㅗ ㅣ ㅜ)을 미국언론에 소개한 외국인 한글학자 “(한자 대신) 한글로 쓰면 선비와 백성, 남자와 여자 누구나 널리 보고 쉽게 알 수 있을 것인데, 사람들은 도리어 한글을 업신여기니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어째 글 내용이 심상치 않다. 꼭 훈민정음 서문의 느낌이 난다. 다음 내용을 보면 더욱 알쏭달쏭해진다.“이런 이유로 필자가 비록 조선말과 한글에 익숙하지 않은 어리석은 외국인이지만 부끄러움을 잊고 특별히 한글로 세계 각국의 지리와 풍속을 대강 기록하려 한다.”호머 헐버트는 1889년 에 ‘한국어(Korean language)’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한글에 매료된 헐버트는 “한글의 모음은 하나 빼고 모두 짧은 수평, 수직의 선 또는 둘의 결합으로 만들어진다”면서 기고문에 직접 ‘ㅏ ㅗ ㅣ ㅜ’를 그려 표현했다. 국제사회에 처음으로 한글을 자모까..
러시아공사관 독립문 설계한 러시아 청년…을미사변 새벽에 무엇을 목격했나 아파나시 이바노비치 세레딘-사바틴(1860~1921)이라는 긴 이름의 러시아 건축가가 있다. 한국명으로는 살파정, 살파진, 혹은 살파령으로 일컬어진 인물이다. 1860년 우크라이나 폴타바의 몰락한 지주가문에서 태어나 1883년(고종 20년) 23살의 나이에 우연한 기회에 조선땅을 밟았다. 그런데 이름을 거론하긴 했지만 사바틴은 개화기 이후 조선을 드나들었던 다른 유력 서양인에 비해 대중적으로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사바틴은 한국 건축사에 결코 소홀히 다룰 수 없는 인물이다.명성황후 시해사건의 몇 안되는 목격자인 러시아 건축가 사바틴이 그린 경복궁 내 시해장소 지도. 고종에 의해 시위대 부대장으로 임명된 사바틴은 1895년 10월8일 새벽 경복궁에서 숙직하다가 천인공노할 시해사건을 목격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