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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 캐스트-흔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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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최다 '26점'이 국가 보물인 안중근 유묵…감쪽같이 사라진 청와대 소장품은? “일전에 부탁한 글씨를 지금 씁시다.” 1910년 3월 26일 오전 9시, 사형 집행장으로 나가기 직전 안중근 의사는 호송관 지바 도시치(千葉十七) 상등병에게 “지필묵을 가져오라”고 했다. 지바는 재판을 받던 안의사를 법정~감방 사이를 호송해온 헌병이었다. 얼마 전 안의사에게 “휘호 한 점을 받고 싶다”고 요청한 바 있었다. 그러나 사형집행 당일까지 받지 못하고 있어서 체념하고 있었다.보물로 지정된 안중근 의사의 유묵 26점. 보물 569-1호부터 26호까지 지정됐다.(사진 외 맨왼쪽부터 1~26호) 안중근 의사는 사형언도부터 집행때까지 40여일간 200여 점의 휘호를 집중적으로 썼다.|안중근의사기념관 제공■마지막 휘호그런데 안의사(1879~1910)가 부동자세로 감방 앞에 서있던 지바를 보고 ‘얼마 전..
세종시대의 한글, 인공지능으로 복원해보니…독창적인 '돋움체'에 절로 감탄 “네(수양대군)가 해야 할 일이 있다.” 훈민정음을 반포(1446년 10월·세종 28년)한 세종이 7개월전 죽은 부인(소헌왕후·1395~1446)의 명복을 빌기 위해 둘째아들 수양대군에게 특명을 내린다.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편찬해서 불교신자인 부인을 추모하자는 것이었다. 이 명에 따라 수양대군(세조·1417~1468·재위 1455~1468)은 양나라 승우 율사(444~518)의 와 당나라 도선 율사(596~667)의 등을 바탕으로 을 편찬한 뒤 이를 훈민정음으로 번역했다.(1447년) 세종은 이 을 꼼꼼이 읽고 각 2구절에 따라 석가모니의 공덕을 찬양한 찬불가 583곡을 손수 지었다. 그것도 막 창제한 훈민정음으로…. 이것이 이다. 인공지능으로 복원해본 훈민정음 창제 초기의 한글활자. 1447년(세종 2..
960년 사위청문회 통과한 응렴(경문왕)…'엄청 예쁜' 둘째공주 점찍었지만 ‘경문대왕님(景文大王主), 문의황후님(文懿皇后主), 대랑님(大娘主)이 석등을 세웠다’. 전남 담양군 남면 학선리의 개선사터에는 화강암으로 만든 통일신라시대 석등(보물 제111호 개선사석등)이 서있다. 높이가 약 3.5m나 되는 석등의 8각 기둥에는 해서체로 쓴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다. 내용으로 미뤄볼 때 석등건립연대는 868년(경문왕 8년)이 분명하고, 명문은 891년(진성여왕 5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남 담양 개선사터에 있는 석등의 1933년 모습. 석등의 8각기둥에 해서체로 쓴명문이 새겨져 있다. 신라 경문왕와 부인인 문의황후, 그리고 대랑(대낭)이 석등을 조성했다는 내용이다.|김창겸 교수 제공 그렇다면 ‘경문왕과 부인인 문의황후’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 ‘대랑’은 누구일까. 왕와 왕후..
우월한 유전자 갖춘 '18남 4녀' 세종의 자식들…한결같이 똘똘했다 흔히 조선조 3대 임금인 태종(재위 1400~1418)은 왕권을 강화하고 신생국 조선의 기틀을 마련한 국왕으로 꼽힌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태종에 남긴 ‘불멸의 업적’을 꼽으라면 바로 ‘세종대왕’을 낳고, 세종대왕을 후계자로 바꿔 삼은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세종(재위 1418~1450)은 어떨까.놀라지마라. 세종은 정부인과 8남 2녀, 후궁까지 합하면 무려 18남 4녀를 두었다. 훈민정음 창제와, 4군6진 개척과 쓰시마(對馬島) 정벌, 측우기·자격루 등 과학기기 발명, 17만명 국민투표에 의한 공법실시, 농사직설 간행 등 필설로 다할 수 없는 업적을 쌓은 임금이 아닌가. 그런 분이 이렇게 자식복까지 많으니….(보물 제966호). 세종의 둘째딸인 정의공주가 죽은 남편 안맹담(1415~1462)의 명복을..
"사마천 소동파도 낙방했다"…김홍도 풍속도가 고발한 과거시험 '난장판' 단원 김홍도(1745~1806?)의 풍속화인데, 문자 그대로 난장판이다. 일산(혹은 우산)이 마당을 뒤덮었고, 일산마다 5명에서 6~7명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뭔가를 작당하고 있다. 그 사이 어떤 이는 행담(行擔·책가방)에 기대어 쪽잠을 자고 있다. 그러나 그림 윗부분의 표암 강세황(1713~1791) 글이 흥미롭다.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전성기인 30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공원춘효도’. 조선 후기 과거제도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고발·풍자하는 풍속화이다. 1952년 미해군이 가져갔던 작품이며, 미국 개인소장가가 갖고 있던 것을 이번에 서울옥션이 구입환수해서 경매에 내놓았다. 표암 강세황의 제발이 눈에 띈다. 봄날 새벽(춘효·春曉)의 과거장(공원·貢院) 풍경이라는 글이다. |서울옥션 제공 “봄날 새벽 과거시험장..
금은동 명품으로 치장한 1500년전 신라인…170cm 장신 여성이었다 피장자가 누구인가. 금동관을 펴서 얼굴을 덮고, 또 키가 170㎝ 내외에 달하는 장신이며, 금은장도까지 착장한 6세기초 신라 최상위 귀족 여성이 아닌가.지난 6월2일 경주 황남동 120-2호분을 발굴하던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은 금동신발이 노출됐다는 사실을 언론에 급히 공개했다. 금동신발이 발굴된 것은 1977년 인왕동 고분 발굴 이후 43년 만의 일이라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당시 발굴을 책임진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의 김권일 선임연구원은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냈다. “금동신발도 중요하지만 피장자의 머리 부분에서 노출된 금동달개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왜냐. 머리맡에서 노출되는 금동달개는 금동관의 부속일 가능성이 짙기 때문이었다.황남동 120-2호의 금동관 금드리개, 금귀고리, 가슴걸이 노출모습. ..
추사에게서 욕 바가지로 먹은 '미친 초서' 이광사 작품이 어땠기에 =보물 제1969호, =보물 제1982호…. 간송문화재단이 소장한 두 작품은 2018년 나란히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다. 비록 지금은 ‘코로나 19 재유행’으로 관람할 수 없지만 국립중앙박물관이 준비한 ‘새 보물 납시었네’ 특별전의 같은 공간에 전시되어 있다. 그러나 매우 어색한 조우다. 왜냐. 은 18세기 대표 서예가인 원교 이광사(1705~1777)가 친필로 쓴 서예이론서이다. 하지만 역시 보물로 지정된 추사 김정희(1786~1856)의 는 제목이 말해주듯 원교(이광사)의 필결(서결의 다른 표현)을 읽은 후 쓴 비판글이다. 그러니까 원교의 서예이론서와, 그 이론서를 ‘기본이 안됐다’고 비판한 추사의 글도 같은 해 나란히 보물이 되어 한자리에 출품된 것이다.원교 글씨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초서. 작..
"순종은 딴 생각말고 즐기라"며 만든 박물관의 웃픈 탄생 사연 …동물원 식물원도 최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개관 15주년을 맞아 조선왕실 문화의 진수가 담긴 ‘대표 소장품 100선’을 선정해 국립고궁박물관 홈페이지에 공개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공개된 ‘소장품 100선’은 조선왕실과 대한제국 황실의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유물들이라는데요. 그런데 하나 드는 궁금증은 우리나라 박물관의 역사인데요. 100년이 넘은 우리나라에서 박물관이 처음 설립된 이유가 좀 치욕스러운 대목이 있다는데요. 어떤 역사가 숨어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일제강점기 창경궁 모습.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문=동서양을 통틀어 박물관이 세워진 것은 언제인가요? 답=박물관을 영어로는 뮤지엄(museum), 프랑스어로는 뮤제(musee), 독일어는 뮤제움(Museum)인데요, 모두 고대 그리스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