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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바람난 올림픽 선수단? 곧 리우 올림픽이 열립니다. 올림픽 열기가 예전같지 않다고 하지만 그래도 시작이 되고, 메달레이스가 펼쳐지면 관심을 끌 것입니다. 세상에 즐거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 4년간 선수들이 흘린 땀을 보상받는 올림픽 무대를 감상하는 것 자체가 행복한 일이겠지요. 한국은 지금으로부터 68년전인 1948년 런던올림픽에 처음 참가했습니다. 당시의 신문을 보거나 당시의 증언을 들으면 정말로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 같습니다. 참가비를 마련하려고 복권을 발행한 이야기, 금메달은 따논 당상이라고 큰소리쳤다가 줄줄이 탈락한 마라톤 선수들, 최소한 은메달 동메달은 확실하다고 떵떵 거리다가 0-12로 참패한 축구 선수들, 경기 전날 공업용 용액을 술로 착각해서 마셨다가 밤새도록 뒹굴었던 선수와 아나운서 이야기 등등. 참으로 파란..
부여의 남진 혹은 신라의 간접지배? ㆍ4세기 국내산 갑주 대거 출토 ‘임나일본부설’ 허구를 밝히다 흥분한 조합원이 휘두른 호미는 조합과 부산시의 창구역을 맡은 박유성의 귀 밑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쳤다. “모골이 송연했어요. 주민들도 흥분할 만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집에 대한 애착이 어지간하잖아요. 새 연립주택을 지으면 집값이 올라갈 것이 뻔했는데, 문화재 때문에 포기해야 한다니 얼마나 화가 나겠어요.”(박유성씨) 일촉즉발의 대치상황은 부산시의 대안마련으로 극적인 타협점을 찾는다. 현장의 토지매입에 적극 나서는 한편, 집을 지을 수 없게 된 조합원들에게 다른 곳(연산동·구서동 등)에 집을 우선 마련해주는 방안을 찾은 것이다. “지금 보면 배울 점이 많아요. 부산시가 발빠르게 시민들의 재산권도 보장해주고 문화유산도 지키는 윈윈 전략을 ..
부산 시내 한복판에서 찾은 처녀분의 실체 ㆍ가야고분 속 신라 금동관의 사연을 더듬다 피란민의 애환이 담긴 무허가 판자촌. 지상의 가난한 이들의 삶터 밑엔 부유하고 강력했던 1500년전 선인들이 잠들어 있었다. 그들은 말이 없었지만 말머리장식 뿔잔·철덩어리·금관은 그들이 할 수 없는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었다. 한국전쟁 때 피란민들이 터전을 잡았던 부산 동래 복천동 구릉. 그러나 이곳은 자연구릉이 아니라 AD 2~AD 7세기 사이 500년간이나 조성된 옛 선인들의 공동묘지였다. “눈보라가 휘날리던 바람 찬 흥남 부두에~이 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는 한국전쟁으로 피란길에 오른 이들의 애환이 담긴 노래다. 노래가사에서 절절이 담겨있듯 부산은 전쟁의 참화를 피해 내려온 ..
'전하! 사면은 소인의 다행이오, 군자의 불행이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광복절을 맞아 사면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맞습니다. 대통령은 헌법 79조에 따라 사면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면권은 대통령이 휘두르는 무소불위의 권한일까요. 아닙니다. 헌법 11조를 보면 대통령의 사면권 보다 더 중요한 대목이 나옵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왕조시대에도 사면권은 임금의 절대권한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역대 군주들은 사면권을 되도록이면 신중하게 처리하려 했습니다. 물론 만백성의 어버이로서 용서해주고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역대 군주와 신하들의 뜻은 분명했습니다. ‘잘못된 사면은 임금과 백성 모두를 해치는 행위’라는 구양수의 지적과 ‘사면은 소인의 다행이며, 군자의 불행’이라는..
졸지에 사기꾼이 된 파스칼 블라즈 파스칼(1623~1662)하면 명상록 와, “인간은 갈대에 지나지 않지만, 생각하는 갈대”라는 명언이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파스칼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수식어가 있으니 바로 수학천재였다. 르네 데카르트(1595~1650)는 1639년 블레즈 파스칼이 불과 16살의 나이에 발표한 ‘원추곡선의 기하학’ 논문을 “믿을 수 없다”고 일축했다. “이건 걔(파스칼)가 쓴 게 아니야. 아버지가 쓴 게 분명해.” 데카르트조차 미처 깨닫지못할 정도의 수학신동이었던 것이다. 판사 출신 세무감독관인 아버지(에티엔)는 오로지 독학으로 아들을 가르쳤다. 특히 수학은 15살 이후에나 배우라고 했다. 블레즈 파스칼은 희대의 신동이었다. 철학과 신학, 심리학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수학에 관한한 불세출의 천재라 해도 과언이 아..
외교행낭과 반기문 1948~63년 두 차례나 주한 미대사관 문정관으로 근무했던 그레고리 헨더슨은 한국문화재 수집광이었다. 헨더슨은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된 1962년 이후 가야~조선시대에 이르는 보물급 문화재 1000여점을 아무런 제지없이 반출해갔다. 외교행낭을 이용한 것이다. 1984년 7월 9t짜리 트레일러를 단 소련의 트럭이 스위스 국경선에 도착했다. 외교 분쟁이 일어났다. 소련측은 외교행랑이라 했고, 스위스측은 ‘9t짜리 행낭이 어디 있냐’고 반격했다. 트럭은 지루한 실랑이 끝에 서독으로 향하지만 그곳에서도 11일간이나 옥신각신했다. 서독은 “스스로 움직이는 자동차(트레일러)가 어떻게 외교행낭일 수 있냐”고 주장했다. 결국 ‘9t 외교행랑’은 본에 있는 소련의 공관 안에서 세관검사를 받았다. 트레일러 안에는 207개의..
세종이 특별사면을 주저했던 까닭은 632년(정관 6년) 당태종(재위 626~649)이 천하의 사형수 390명을 방면했다. 그러면서 “이듬해 가을 사형을 집행할 때 다시 돌아오라”는 다짐을 받았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모든 사형수가 이듬해 약속한 날짜에 돌아온 것이다. 태종은 이를 가상하게 여겨 사형수들을 모두 사면해주었다.() 당대 시인 백거이는 ‘칠덕무(七德舞)’라는 시에서 당태종의 치세에 찬사를 보냈다. “원망하는 궁녀 삼 천 명을 궁궐에서 내보내고, 사형수 사백 명이 자진해서 옥으로 돌아왔다오.(怨女三千放出宮 死囚四百來歸獄)”() ■당태종의 셀프미담 만들기 그런데 좀 미심쩍다. 뭔가 미담을 꾸며낸 듯한 냄새가 난다. 형제들을 참살한 이른바 ‘현무문의 정변’(626년) 끝에 즉위한 태종의 ‘셀프미담’일 가능성이 짙다. 굳이 사형수..
비호감 몽골말(馬)의 세계제패 '상당한 시간’을 뜻하는 ‘한참’ 단어에 몽골말(馬)의 체취가 남아있다. 예전에 몽골제국이 세계를 호령한 으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역참제도였다. 도로 40㎞마다 말을 갈아 탈 수 있는 참(站)을 마련했던 것이다. 그러니 매번 팔팔한 말을 갈아타는 몽골인들은 지금의 기준이라면 가히 LTE급 속도로 유라시아 동서의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참과 참 사이의 거리(40㎞)를 ‘한참’이라 일컬었던 것이다. ‘한차례 일을 하거나 쉬는 동안’의 뜻에서 나온 말이다. 쉬면서 먹는 밥을 새참이니 밤참이니 한 것도 예서 나왔다. 몽골의 말은 몸집도 작고 볼품도 없다. 털복숭이에 머리가 크고 목도 굵으며, 눈은 작고 다리가 굵고 짧다. 성질까지 더러우니 비호감의 전형이다. 몽골의 남자아이들은 3살이 되면 말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