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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킨 문무대왕 지난 6월18일 필자는 경향신문 70주년 기획인 '경향 70년, 70인과의 동행'이라는 답사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답사단원은 35명이었는데, 매우 즐거운 여정이었습니다. 답사단을 이끈 분은 저의 스승님이자 저명한 고고학자인 조유전 선생이었습니다. 조유전 선생은 서울대 고고학과 2기 졸업생으로 문화재청 전신인 문화재관리국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속으로 경주 감은사 황룡사지 안압지 월성과 백제 무령왕릉을 발굴하신 고고학자입니다. 이번 경주여행은 감은사-대왕암-장항리사지-월성-황룡사지-분황사지를 돌았습니다. 공통점은 '터'이자 '흔적'입니다. 하고많은 경주의 수많은 볼거리중에 왜 하필 터이고 흔적일까요. 저명한 고고학자와 떠나는 신라 1000년의 여행을 즐겨보시기 바랍니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는 2회에 걸쳐 고고학..
감은사 탑엔 문무왕의 사리가 안치돼있다 1997년 “감은사 동탑엔 문무왕의 사리가, 서탑엔 부처님의 사리가 각각 봉안됐다”는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추정은 불교계를 뒤집어 놓았다. 우선 연구소 측의 주장. 문무왕은 처음으로 서역식 화장 장례를 도입한 ‘불심 깊은 왕’이었다. 왕을 화장했을 때 사리가 나왔다면 분명 그의 원찰인 감은사, 그것도 동탑에 봉안했을 것이다. 서탑의 경우 사리병 장식물이 부처님의 열반을 향연하는 주악(奏樂)의 천인(天人)들인 반면, 동탑엔 삼국통일의 위업을 완수한 문무왕의 분위기를 상징하는 호법신중(護法神衆)인 사천왕이 장식됐다. 동탑사리기. 문무왕의 사리를 봉안했다는 설도 있다.국립문화재연구소가 그런 연구성과를 내놨다. 문무왕은 재세기간동안 사천왕사를 건립했을 정도로 사천왕 사상과 관계가 깊었던 군주였다. 또 서탑엔 ‘봉황..
보아텡 같은 이웃을 두면 좋다 “유색인종이라니 장난합니까. 저런 제품이 팔릴까요.” 지난 5월 독일의 극우단체인 ‘페기다(PEGIDA)’가 킨더 초콜릿바 포장지에 등장한 어린이 얼굴을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야유를 보냈다. 포장지 모델은 독일 축구대표팀 소속인 제롬 보아텡(27)의 어릴 적 사진이었다. 보아텡은 가나 출신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단 한번도 가나에 가본 적이 없는 독일 선수다. 반이민 정서에 편승한 ‘독일대안당(AfD)’의 알렉산더 가울란트 부대표가 기름을 부었다. “사람들은 축구선수로서 보아텡을 좋게 본다. 그러나 그를 이웃으로는 삼고 싶어 하지 않는다.” 보아텡(오른쪽)이 어릴적 사진을 새겨넣은 초콜릿바. 터키계 스타인 일카이 귄도간의 어릴 적 사진도 있다. 보아텡뿐이 아니었다. 가울란트는 대표팀 미..
윤동주의 서시, 어디서 썼을까 필자가 태어난 곳은 서울 종로 청운동 산1번지 13통 7반이다. 어디냐 하면 지금 청운동~부암동 사이를 뚫은 청운터널 바로 위쪽이다. 1974년 산동네가 철거된 뒤 그 상태로 놔뒀으니 지금은 수풀만 무성하다. 지금도 발굴해보면 60년대 동네의 흔적이 남아있을 것이다. 회사가 가까운 필자는 틈나면 청운동~옥인동과 인왕 스카이웨이 등을 거닌다. 자연스레 발길이 그리 간다. 옛 추억에 대한 향수라 할까. 타마구(아스팔트 찌꺼기를 코팅한 종이)를 지붕에 올려 겨우 비만 피하고 살았던 청운동 산동네 하꼬방의 추억은 늘 가슴 속을 후벼 판다. 필자의 코흘리개 시절의 기억이 선명한 청운·옥인 아파트는 최근 10년 사이 철거됐다. 북아현동 산비탈에서 바라본 서울 하늘. 윤동주 시인은 1941년 11월 북아현동 하숙집에..
12살 사진으로 그린 50살의 몽타주 몽타주(montage)는 ‘조합한다’는 뜻의 프랑스어(montor)에서 유래됐다. 건축용어였지만 구 소련의 영화감독인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1898~1948)이 무성영화 ‘전함 포템킨’(1925년)에서 영화 편집의 기법으로 정립했다. 즉 따로 촬영한 화면을 떼어 붙여서 새 장면이나 내용으로 만드는 연출방법이다. 예이젠시테인은 1905년 제정러시아 수병들의 반란을 다룬 ‘전함 포템킨’의 ‘오데사 계단 민간인 학살장면’에서 몽타주 기법을 썼다. 예컨대 계단 아래로 구르기 시작한 아기 태운 유모차와, 계단 밑 잔혹한 병사들의 행진을 병치시킴으로써 참혹한 정치상황을 표현했다. 이후 많은 영화감독들이 예이젠시테인의 혁신적인 시도를 오마주했다. 그러나 대중에게 익숙한 ‘몽타주’는 영화 연출 기법이 아니다. 범죄수사..
우리 조상들은 왜 탯줄에 목숨을 걸었을까 요즘 제대혈(탯줄 속 혈액)을 보관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2015년 제대혈 보관건수가 60만건에 달했다지요. 제대혈에 적혈구·백혈구·혈소판을 만드는 조혈모 세포가 풍부하고 연골·근육·뼈·신경 등을 만들 수 있는 간엽줄기세포가 다량 함유돼있어서 백혈병 같은 혈액질환과 뇌성마비 및 발달장애 치료에 활용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제대혈 보관은 신라시대부터 면면이 이어온 안태의식, 즉 태를 묻는 의식과 일맥상통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태를 묻는 의식은 중국에는 없었던 우리 고유의 풍습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조상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왜 그렇게 태를 묻는데 정성을 쏟았던 걸까요. 태를 어떻게 생각했기에 그렇게 신주 단지 모시듯 했을까요. 한가지 더. 조선조 영조 임금은 왜 도승지(비..
치명적인 커피의 유혹 교황 클레멘트 8세(재위 1592~1605)는 “이슬람의 음료인 커피를 엄금해달라”는 사제들의 아우성에 시달렸다. 견디다못한 교황은 “그럼 한번 맛이나 보자”고 커피를 마셔봤다. 교황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아니. 이렇게 맛좋은 사탄의 음료를 이교도(이슬람교도)만 마시게 한단 말입니까. 여기에 세례를 베풀어 정식 기독교 음료로 만듭시다. 그렇게 해서 사탄을 우롱합시다.” 교황마저 커피의 짜릿한 맛에 반해 아예 커피에 세례를 베푼 것이다. 여러 커피의 기원설 가운데 염소치기 소년 이야기가 재미있다. 즉 고대 아비시니아(에피오피아)의 염소치기 소년인 칼디는 어느 날 흥미로운 광경을 목격한다. 어떤 나무에서 맨질맨질한 녹색 잎과 빨간 열매를 뜯어먹은 염소들이 서로 머리를 부딪치며 흥분한채 춤을 추고 있지 않은..
허준 선생이 동의보감 쓴 진짜 이유 지난 1991년 민간인이 출입할 수 없는 민통선 이북 파주시 장단에서 두동강 난 비석이 발견됐습니다. 동양의 의성 허준 선생의 무덤이었습니다. 서지학자가 10년 가까이 신분을 숨겨가며 찾아낸 것입니다. 도굴꾼에 의해 파헤쳐졌지만 두동강난 비석에는 ‘陽平○ ○聖功臣 ○浚’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바로 ‘양평군 호성공신 허준’이었습니다. 허준 선생이 누구입니까. 타고난 천재성을 바탕으로 독학을 의술을 공부한 분입니다. 정치색이 없었으며 오로지 임금과 백성의 병을 고쳐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찼습니다. 천생 의사였던 셈입니다. 뭐니뭐니해도 허준 선생의 특등 공적은 저술이었습니다. 이 땅에서 나오는 637개의 향약 이름을 한글로 표기해서 백성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동의보감 편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