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

(1372)
"미국 침략자가 한국 국보 통째로 약탈"…텅빈 박물관, 1950년 극비 유물 수송 작전 “미국의 침략자들이 한국의 국보 유물을 송두리째 약탈했다”. 한국전쟁 도중 동베를린 영화관에서 구 소련 측이 방영한 뉴스였다. 경복궁 내 국립박물관 진열실의 텅빈 모습을 보여주고 ‘미군의 약탈’ 운운하며 맹렬히 비난한 것이다. “저게 대체 어찌 된 것인가”. 1957년 9월 한국을 방문한 월남(베트남)의 응오 딘 지엠 대통령(재임 1956~1963)과 경복궁 산책에 나선 이승만 대통령(재임 1948~1960)의 얼굴이 싸늘하게 변했다. 한국전쟁 중 공습을 받아 1만2000 조각으로 파괴·방치된 탑 1기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다름아닌 외국정상과 거닐다가 보았으니 얼마나 큰 망신인가. 이 탑이 법천사지 지광국사 현묘탑(국보 제101호)이다. 북한군의 남침으로 전황이 급박했던 1950년 7월25일 국립박..
지하물리탐사로 비운의 백제 성왕릉의 존재 특정할 수 있나 지하물리탐사로 비운의 백제 성왕의 무덤이 특정될 수 있을까. 사비 백제의 도읍은 부여다. 천도(538년) 이후 관산성 전투에서 신라군에게 죽임을 당한 성왕(재위 523~554)과 위덕왕(554~598), 혜왕(598~599), 법왕(599~600), 무왕(600~641), 의자왕(641~660)까지 6명의 임금이 이곳에서 절정기의 백제 예술을 창조했다. 지하물리탐사결과 각 고분이 현재의 복원 규모보다 5~10m 가량 넓은 규모였음이 확인됐다.|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부여 능산리 고분군은 멸망 후 당나라로 끌려간 의자왕과, 익산 쌍릉에 부부묘를 조성한 것으로 알려진 무왕 외에 4명의 임금이 묻힌 곳으로 추정됐다. 1757년(영조 33년) 제작된 전국읍지()도 이곳을 ‘능산(陵山)’으로 표시할만큼 예부터 백제..
내시의 정원도 문화재가 된다…논란의 성락원, 이조판서 별장은 아니지만 ‘이조판서 심상응의 별서는 아니다. 뒤늦게 내시의 별서로 밝혀졌지만 그래도 명승의 자격은 있다’. 문화재청은 지난달 24일 문화재위원회 천연기념물분과를 열어 명승 제35호 ‘성락원’을 지정해제하고 명승 명칭을 ‘서울 성북동 별서’로 바꿔 재지정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명승 제35호 ‘성락원’에서 명승 제○○호 ‘서울 성북동 별서’로 바꾼다는 것이다. 성락원 영벽지. 당초 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의 별서로 명승이 됐지만 뒤늦게 고종의 호위내관인 황윤명의 별서로 밝혀졌다. |문화재청 제공 이 별서는 1992년 조선조 철종 이조판서 심상응의 별장이자 의친왕의 별궁으로 인정되어 명승(제35호)으로 지정됐다. ‘200년 역사 품은 조선의 비밀정원’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문화재관리국(현 ..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원나라 법전이 대한민국 보물 되는 이유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내에만 남아있는 원나라 법전이 대한민국의 보물로 지정예고됐다. 문화재청은 최근 현존하는 단 하나뿐인 원나라 법전인 ‘권1~12, 23~34’와 ‘장용영 본영 도형 일괄’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또한 보물 제419-3호인 ‘권4~5’는 국보로 승격하기로 했다.세계에서 유일하게 국내에만 남아있는 원나라 법정인 . 이번에 대한민국의 보물로 지정예고됐다.|개인소유(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관리)이중 ‘지정조격 권1~12, 23~34’는 비록 완질은 아니지만 국내외를 통틀어 우리나라에서만 발견된 현존하는 유일의 원나라 법전이다. 경주 양동마을의 경주 손씨(慶州孫氏) 문중에 600년 넘게 전래되어 온 문적이다. 학계에서는 조선초기에 활약한 경주 손씨의 손사성(1396~1435)과 손소(1433~..
1400년전 신라 '애기부처' 보물되는 사연 얼굴이 둥글고, 살은 통통하고…. 일제강점기인 1925년 무렵 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에 흥미로운 불상이 전시되고 있었다. 돌로 만들었고, 앉아있는 형상의 미륵불이었다. 이름하여 석조미륵불의자상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경주남산고적보고서인 (1940)에는 “이 불상은 1924년 10월10일 경주 남산의 장창곡의 고분에서 출토된 것”이라고 소개했다.경주 남산 장창곡에서 확인된 석조여래미륵삼존상. 동안의 모습이어서 ‘애기부처’라는 별명을 얻었다.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하지만 왜 이런 불상이 고분에서 출토됐겠는가. 발견된 불상 주변에 고분이 5~6구 흩어져있는데다 무너져내린 돌방(석실)에서 발견되었기에 ‘고분(돌방무덤) 출토’라 잘못 판단한 것이다.그런데 불상은 한 구가 아니었다. 은 “이미 원래 자리에서 벗어..
해인사 폭격멍령을 거역한 김영환 장군 유품이 문화재된다 ‘빨간 마후라는 하늘의 사나이…’. 6·25전쟁 당시 공군 초대 10전투비행전대장이던 김영환 장군(1920~1957)은 공군의 상징인 ‘빨간 마후라’로 알려진 인물이다. 김영환 장군은 제1차 세계대전 때 붉은 색으로 도색한 전투기를 타고 80여 대의 연합군 항공기를 격추한 독일 공군의 에이스 만프레도 폰 리히토벤을 흠모했다. 그러던 김영환 장군이 형수가 만들어준 자주색 마후라를 두르고 다니면서 ‘빨간 마후라’가 일약 한국 공군에서 유명해졌다. 공군 창설과 발전의 중심인물이면서 해인사 폭격명령을 거부해서 해인시와 고려대장경을 구해낸 김영환 장군의 명패. 이 명패는 해안사 폭격명령을 거부했을 당시의 명패이다.|문화재청 제공 여기에 1964년 전투조종사를 소재로 한 ‘빨간 마후라’ 영화가 상영됨으로서 영화주제..
"합시다. 을노브(love)!"…조선의 영어열풍, 일제가 어떻게 망쳤나 “‘모던뽀이’는 ‘시크’해야 하고 ‘모던껄’은 ‘잇트’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1931년식 첨단인의 마땅히 가져야 할 현대성이다. ‘스마트’한 것을 자랑하는 ‘모던’이…신감각파적 ‘에로’ ‘그로’를 이해치 못해서야 될뻔한 일이냐”.잡지 1931년 6월1일자에 실린 이 글은 1920~30년대 불어닥친 영어열풍의 단면을 보여준다. 일상대화나 잡지·신문 등에 글을 쓸 때 영어를 섞어 쓰지 않으면 행세하지 못했다. 그런 판국이니 당시 신문에서는 거의 날마다 등장하는 영어신조어를 소개하는 ‘신어해설’란을 만들기도 했다.(동아일보 1931년 3월9일)지석영이 1908년 다산 정약용의 아동 학습교재인 에 한자를 중심으로 한글, 영어, 중국어, 일본어 발음을 표기해놓은 새로운 교재를 만들었다. ‘love’는 ‘을러브’..
1990년대 제작된 '가짜 총통'이 지금도 버젓이…조선 화기 800여점 분석해보니 1992년 8월 한산도 앞바다에서 인양했다는 ‘총통’(발사무기)이 일사천리로 국보(제274호)로 지정됐다. 이름하여 ‘귀함별황자총통’이었다. ‘만력 병신년(1596년·선조 29년) 6월 제작된 귀함(거북선)의 황자총통은 적선을 놀라게 하고, 한 발을 쏘면 반드시 적선을 수장시킨다(龜艦黃字 驚敵船 一射敵船 必水葬)’는 명문이 새겨져 있었다. 거북선에 장착한 화포가 발견됐다는 것이니 국보 중 국보로 평가받을 만했다. 그러나 이 총통은 어이없게도 4년 만(1996년)에 국보에서 전격 해제된다. 조선시대 총통은 휘어질지언정 깨지지는 않게 주석함유량을 5~10wt%(중량퍼센트·weight percent) 정도로 맞추었다. 발사 때의 충격으로 총통이 깨지면 인명이 다칠 수 있기에 최악의 경우에는 휘어지도록 만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