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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반갑도다! 훈민정음의 나타남이여!' <간송본>의 출현에 외솔의 외침 최근 문화재위원회는 (간송본)을 보관할 간송미술관 보호각의 청사진을 조건부 가결했다. 2021년 완공될 보호각에 들어설 문화유산은 국보 12건, 보물 32건, 시도지정문화재 4건 등이다. 이중 최고의 문화유산은 뭐니뭐니해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일제강점기인 1940년 우여곡절 끝에 확보한 국보 제70호인 이다. 보호각 설립 계획안의 가결을 계기로 훈민정음 해례본의 가치를 알아보고 최근 말썽을 빚고 있는 과 을 2회에 걸쳐 비교해보고자 한다. ①은 간송본의 출현에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가 “반갑도다!”라 감탄사를 외친 이유, ②는 과 과의 비교가 어림없는 이유를 밝히고자 한다. ----“어찌 뜻하였으랴. 수개월전 (훈민정음) 원본(이하 해례본)은 경북의 어떤 고가에서 발견되어 시내 모씨의 소유로..
'출생의 비밀'…고려 현종의 부모사랑 깃든 현화사 석등 공개 북한 땅 개성에 현화사라는 절이 있다. 북한의 국보유물(제139호)인 7층석탑으로 유명한 절이다. 이 절은 고려 현종(재위 1009~1031)이 불우하게 타계한 부모 명복을 빌기 위해 지은 사찰로 알려져 있다.그런데 ‘불우하게 돌아간’이라는 사연이 아주 흥미롭다. 이 절을 창건한 현종은 태조 왕건의 여덟번째 아들인 왕욱(王郁·?~996·훗날 안종으로 추존)과 헌정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그런데 현종의 어머니인 헌정왕후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개성 현화사에 있었던 석등. 현화사는 고려 현종의 ‘불우한 부모’를 추념하기 위해 세운 절이다. 이 절의 석등이 반출돼 1911년 일본인 골동품상인 곤도가 조선총독부에 팔아넘긴 것이다.|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즉 헌정왕후는 태조 왕건의 아들인 대종(?~969)..
"너의 목덜미가 좋고' 천재시인 이상이 썼다는 연서는 여성이 여성에게 보낸 편지였다 “나는 진정 네가 조타(좋다). 웬일인지 모루겟다(모르겠다). 네 적은 입이 조코 목들미(목덜미)가 조코 볼따구니도 조타….” 2014년 7월 제목만으로도 단박에 주목을 끄는 기사가 보도됐다. 당시 25살이던 이상(1910~1937)이 당시 23살 소설가였던 최정희(1912~1990)에게 보냈다는 핑크빛 연서였다. ‘1930년대 한국 모더니즘 문학을 이끈 시인이자 소설가 이상(1910~1937)이 23살 젊은 이혼녀이자 동료소설가에게 보낸 러브레터가 처음 발견됐다’는 것도 핫뉴스일텐데, ‘네 입과 목덜미까지 좋다’는 편지 내용까지 일거에 대중의 시선을 빼앗을만한 소식이었다, 이상이 최정희에게 보낸 연서로 소개된 편지. 그러나 편지 끝부분의 서명이 ‘이상(李箱)’이라 했지만 이상이 아니라 이제(李弟)이며,..
경주 쪽샘에서 출토된 1500년전 '행렬도 토기', 말갑옷의 비밀 경주에 ‘쪽샘’이라는 지명이 있다. 황오동·황남동·인왕동 일대의 약 38만㎡ 면적인데, 이곳에 쪽빛 하늘이 그대로 비치는 샘이 있다고 해서 ‘쪽샘’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신라의 천년고도 답게 경주는 그 어느 곳을 파도 유물밭인데, 바로 이 쪽샘 지구가 그렇다. 4~6세기에 살았던 신라 귀족들의 무덤이 800여기가 집중된 곳으로 유명하다. 1960년대부터 주택과 버스터미널이 들어서면서 고분 훼손이 심해지자 2002년부터 민가와 사유지를 매입하고 2007년부터 본격발굴하기 시작했다. 발굴은 20년 예정으로 진행되고 있다.2009년 경주 쪽샘지구 C 10호 목곽묘에서 확인된 말갑옷이 복원을 끝내고 첫 공개됐다. 복원결과 말갑옷은 736매의 철편으로 중무장한 신라 중장기병의 것임이 드러났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
조선의 김치사발이 오사카성 한채값 '일본의 국보'가 되기까지 ‘에비!’ 예전에 부모님이 말 듣지않은 아이를 달래고 어르기 위해 쓴 말이다. \‘무서운 괴물이 나타난다’는 경고성 메시지인데, 이 말의 유래를 아는 이는 드물다. 이 말은 ‘이비야(耳鼻野)’의 줄임말인데, 임진왜란 때 조선인의 코와 귀를 베어간 야만적인 일본인이라는 소리다. 말 듣지않은 아이를 어르려고 ‘코와 귀를 베어가는 일본 야만인이 온다’고 한 것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1536~1598)가 전국시대의 오랜 전쟁에 지친 다이묘(大名)를 무마하려고 베어온 코의 숫자에 따라 조선땅을 분배하기로 약속했다는 것이다.일본의 국보가 된 조선의 막사발 기자에몬 이도(喜左衛門 井戶). 이런 막사발들은 경남 진주지방에서 제삿날 김치를 담는 그릇이었다고 한다, 소장자였던 기자에몬(喜左衛門)의 이름을 땄다...
기마, 무용, 수렵…고구려 벽화를 빼닮은 '신라행렬도' 1500년만에 현현 말을 탄 인물 뒤를 따르는 사람들이 춤추는 듯한 모습이다. 활쏘는 사람들이 암수 사슴과 멧돼지, 호랑이, 개 등을 사냥하고 있고, 주인공인 듯한 인물이 개(犬)와 함께 행렬하고 있다. 안악 3호분이나 무용총 등 고구려 고분벽화의 행렬도와 흡사하다. 그러나 신라 특유의 선각문 기하학 문양들도 보인다.5세기대 신라 귀족 무덤으로 알려진 경주 쪽샘 44호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에서 고구려 고분벽화를 빼닮았지만 신라 특유의 문화도 빼놓지않은 ‘신라 행렬도’를 새긴 토기가 발견됐다. 행렬이라는 큰 주제 아래 기마·무용·수렵의 내용을 파노라마처럼 펼친 복합 문양은 신라 회화에서 처음 확인된 사례이다. 무덤제사와 관련된 유물로 추정된다.쪽샘 44호분 에서 확인한 ‘신라행렬도’ 토기. 굵은 선으로 된 부분이 찾아낸..
사명대사는 왜 "조선의 보배는 가토 기요마사의 목"이라 했을까 “승장 유정의 정예병이 왜적을 참획(斬獲)하는 공을 여러번 세웠다. 그렇지만 속세를 떠난 유정이 군직(軍職)은 원하지 않을 것이다. 특별히 파격적인 상을 내려 훗날의 공효를 거두지 않을 수 없다. 유정에게는 당상관(堂上官·정 3품 이상)의 직을 제수하여….” 1593년(선조 26년) 4월 12일 선조가 승병장인 사명대사 유정(1544~1610)에게 “당상관(정 3품 이상)의 상급을 내리라”는 특명을 내렸다는 내용의 기사이다. 그런데 이 기사를 쓴 사관이 붙인 평가가 폐부를 찌른다.“전란을 당해 날래고 건장한 장수들조차 두려움에 떨었는데 엄청난 전공이 도리어 죽을 날이 멀지 않은 늙은 승려에게서 나왔다. 이것이 어찌 무사들만의 수치이겠는가.” 의 사가는 쉰살이 된 사명대사의 분전을 인용하면서 임진왜란 때 ..
40대 여성, 그녀가 1500년전 영산강 유역을 다스린 지도자였다 ‘영산강 유역 다시벌(평야)을 다스리던 마한 출신 토착세력의 지도자는 40대 여성이었다. 그리고 이 여인은 금동관과 금동신발을 착용하고 있었다.“ 영산강 유역 전남 나주의 넓은 평야에 복암리 고분군이라는 대형 무덤떼가 자리잡고 있다. 그중 복암리 3호분에서는 3m에 가까운 대형옹관묘가 26기 출토되고 금동신발과 장식대도 등 최상급 유구와 유물이 쏟아졌다. 3세기~7세기까지의 무덤이 모인 고분박물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이 복암리 3호분을 마한 출신 토착세력 지도자들의 고분이라 평가한다.영산강 유역 드넓은 평야를 다스린 5세기 말 6세기 초 마한 토착세력의 지도자가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정촌고분의 피장자는 40대 여성이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사진은 발굴된 인골을 분석해 복원한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