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씩씩한 남자 만들기…박노자 | 푸른역사
대한민국 남자들은 “행정서류가 잘못됐으니 다시 입대하라”는 악몽에 이따금 시달린다. 재입대해서 ‘진짜사나이’라는 군가를 부르며 훈련 받는 꿈을 꾼다. 그러면서 꿈에서도 “이것이 정녕 꿈이기를…”하고 간절히 바라다 깨는 일도 있다. 이렇게 악몽을 꿀 정도인데도 늘 “사나이는 군대 갔다와야 철이 든다”는 소리를 듣고 산다. 게다가 ‘태극전사’, ‘수출전사’라는 갑옷을 입고 나라와 가정을 책임져야 했다. 이렇게 ‘애국’과 ‘효’, ‘가족부양’이라는 세마리 토끼를 잡아야 했던 ‘대한민국 남성성’의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저자는 1900년대 후반을 중심으로 ‘씩씩한 남자’의 ‘계보’를 캐냈다. 그에 따르면 구한말 양반과 평민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남성성은 사뭇 달랐다. 금욕과 의분강개, 자기희생을 선비의 최고 덕목으로 꼽았다. 반면, 때로는 폭력을 구사하는 ‘행동하는 남자의 패러다임’은 평민의 몫이었다. 일본인을 살해함으로써 ‘국모시해’의 울분을 앙갚음한 김구 선생이 대표적이다.
이런 상반된 남성성의 패러다임은 1900년대 근대적 남성성으로 수렴되면서 계몽주의자들에게 계승된다. 새 조선을 꿈꿨던 계몽주의자들은 ‘애국적 남성의 훈련된 신체’를 강조했다. 예컨대 사가들이 주군을 시해한 역적으로 폄훼한 연개소문은 크롬웰과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비견되는 ‘애국적 독립주의자’로 영웅시됐다.
식민시대 때 훈육되고 군사화한 남성성 모델은 해방 이후 권위주의적 병영국가를 경험하면서 구체화했다. 이후에는 ‘체력은 국력’인 시대의 ‘몸짱’→대기업 시대의 ‘훈련된 수출전사’→명문대를 나와 삶의 질을 따지는 웰빙족으로 변모해갔다. 그런데 저자가 지금 제안하는 미래의 바람직한 ‘씩씩한’ 남성상을 읽으면 왠지 가슴이 답답해진다. 저자가 제안하는 ‘미래의 남성성’은 여성과 가사를 분담하고 육아노동에 적극 참여하면서 촛불시위와 같은 각종 사회문제 해결에 몸을 내던져야 하는 남성이다. 한마디로 ‘슈퍼맨’이 돼야 한다는 소리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 남성들은 저자가 힘들여 제안하지 않더라도 여성과 사회를 배려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사나이의 책무를 져라’는 유무언의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그게 우리 시대 남성의 초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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