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걸그룹의 원조라면 1997년 결성한 베이비복스나 SES 등을 꼽는다.
하지만 그보다 60여년 전에 활약한 걸그룹의 비조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저고리 시스터즈’다.
비조(鼻祖)란 무엇인가. 어떤 일을 가장 먼저 한 사람이나 사물의 시초를 일컫는다.
동양에서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자라는 태아는 코부터 그 형태를 갖춘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그래서 코 비(鼻), 조상 조(祖)를 써서 비조라 한다. 그런 의미라면 걸그룹의 비조는 저고리시스터즈라는 이야기다.
저고리시스터즈를 만든 이는 당시 OK레코드사를 설립한 이철(1904~1944)이란 인물이다.
이철은 ‘타향살이’의 고복수를 스카우트했고, 엘리지의 여왕인 이난영을 납치하다시피 모셔왔던 흥행의 귀재였다. 그런 그가 1935~39년 결성한 것이 바로 ‘저고리시스터즈’다.
이미 ‘목포의 눈물’로 스타덤에 올랐던 이난영과 ‘연락선을 떠난다’의 장세정은 ‘비조 걸그룹’의 핵심보컬이었다. 여기에 일본 쇼치쿠(松竹) 및 다카라스카(寶塚) 가극단 출신의 이준희와 김능자, 가수겸 무용가인 서봉희까지 5인조 걸그룹이었던 셈이다.
해외파까지 가세한 당대의 톱가수와 무용가가 총출동해서 노래와 연기, 춤 등 다재다능한 재능을 선보였다. ‘눈물젖은 두만강’의 김정구는 생전에 저고리시스터즈의 무대를 생생하게 증언했다.
“저고리시스터즈…. 그 얼마나 소박하고 우리 구미에 맞는 이름입니까. 이난영과 장세정이 색동저고리와 족두리를 썼고…. 서양노래를 부를 땐 새하얀 드레스로 맞춰 입고…. 이들이 무대에 서면 훤했습니다.”(동아일보 1973년 3월 21일)
노래의 컨셉트에 따라 의상도 다채롭게 바꾸었으니 요즘의 걸그룹과 다를 바 없다. 저고리시스터즈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이철은 김해송·박시춘·송희선·현경섭·이복본 등을 멤버로 ‘아리랑보이즈’를 결성했다.
이 역시 보이그룹의 비조인 셈이다. 저고리시스터즈는 이후 ‘아빠는 풍각쟁이야’의 박향림과 심연옥·나성려 등을 새 멤버로 들여 활발한 활동을 펼치다가 해방 후 해산됐다.
‘저고리…’의 계보를 이은 걸그룹은 1953년 결성한 ‘김시스터즈’다.
‘저고리…’의 리드보컬이었던 이난영이 두 딸(김숙자·애자)과 조카(이민자)를 발탁했다. 기타·베이스·드럼 등 20여개의 악기를 직접 연주하고 춤까지 선보이며 인기를 끌었다.
급기야 1959년부터 14년간 미국무대에 진출했고 ‘에드설리반쇼’에 20여차례나 출연했다. 에드설리반쇼는 1964년 영국 리버풀 출신의 비틀즈가 세계 진출을 알린 역사적인 무대이다.
김시스터즈의 인기가 만만치 않았음을 웅변해주는 대목이다. 김시스터즈가 1962년 발표한 ‘찰리 브라운’은 빌보드 싱글차트에 이름을 올렸다.
그런 김시스터즈의 미국활동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다방의 푸른 꿈’)가 곧 개봉된다는 소식이 들린다.
어머니이자 고모(이난영)가 걸그룹의 비조였다면 딸과 조카는 한류 걸그룹의 원조였던 역사가 재조명되겠다. 새삼스레 김정구 선생의 말마따라 저고리시스터즈라는 토속적인 이름이 이름이 웃음을 자아낸다.
난무하는 정체불명의 외국이름보다 훨씬 정겹지 않은가.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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