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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 역사

김연아 스케이트와 문화재의 자격

문화재와 문화유산은 같은 개념이 아니다.

 

문화재(文化財) 용어는 일본이 자국의 문화자산을 법제도로 만들면서 영어의 Culture Properties와 독일어 Kulturgut를 번역하면서 생겼다. 조상이 남긴 재보와 가옥, 토지 등 재화의 뜻이 강하다.

 

1830년대 프랑스가 역사건축물보호감독제도를 만들면서 사용한 개념은 ‘문화유산’이다. 조상이 남긴 물질문화는 물론 관습과 언어, 규범 등 정신문화까지 망라한 개념이다.

 

김연아 선수가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신었던 스케이트화. 이 스케이트화로 환상적인 연기를 펼치며 금메달을 땄으므로 장래 문화유산의 가치가 충분하다. 그러나 살아있는 사람의 물품을 문화유산으로 등록하거나 지정하는 것이 오버라는 여론오 만만치 않다. 

한마디로 문화재는 문화유산의 범위 안에 있는 작은 분야라 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조상의 유산을 보전·관리하는 관청 이름은 좁은 의미의 자산을 뜻하는 문화재청보다는 전통문화 전체를 일컫는 문화유산청이 더 어울린다.

 

그렇다면 몇 년 쯤 묵혀야 비로소 ‘문화유산’ 소리를 듣는가. 뚜렷한 기준은 없다.

 

다만 서양문물이 들어온 개항(1876년) 이전의 것을 ‘전통문화유산’으로 대접하는게 불문률이었다. 100년은 족히 지나야 묵은 장맛처럼 조상의 체취가 제대로 밴 문화유산으로 거듭난다는 것이다.

 

유네스코 총회도 1970년 채택한 ‘문화재 협약’은 ‘문화재란 비문·화폐·판각된 인장, 가구, 악기 등 100년 이상의 골동품을 의미한다’고 규정했다.

 

국보의 경우 1호(숭례문)부터 320호(월인천강지곡 권상)까지 개항 이후의 것은 없다.

그러나 개항 이후라도 역사적인 가치가 출중하면 국보는 아니더라도 보물의 자격까지는 얻을 수 있다.

 

안중근의사유묵(1909~10년·보물 569호)와 백범일지(1929년·보물 1245호), 황제지보(1897년·보물 1618호) 등이 그것이다. 2001년부터는 외연을 더 넓혔다.

 

100년은 아니지만 최소한 50년 이상된 근·현대유산이 ‘등록문화재’가 된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50년이 안됐지만 ‘긴급한 보호조치가 필요한 것’은 등록할 수 있다는 예외규정까지 두었다.

 

등록문화재 가운데 ‘현대자동차 포니 1’(1975년)과 ‘최규하 가옥’(1972년) 등 50년이 안된 근·현대 문화재가 32건이나 된다.

문화재청은 9일 새해업무보고에서 바로 이 ‘50년 예외규정’을 더 유연하게 적용할 계획을 발표했다.

 

‘하나의 예’로 김연아 선수가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 신은 스케이트화를 꼽았다.

 

이게 엄청난 논란을 일으켰다.

 

물론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긍정론도 나왔다.

 

그러나 올림픽 때마다 금메달을 주워담는 양궁선수들의 활은 어쩔거며 박지성의 축구화, 박세리의 양말, 박태환의 수영팬티는 어쩔거냐는 비아냥도 만만치 않았다.

 

‘오버’라는 것이다. 심지어 ‘김연아가 찍혔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정부가 괜히 챙기는 척하는 거 아니냐’는 의심까지 사고 있다.

 

사실 ‘김연아 스케이트’ 이야기가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2013년 당시 김황식 총리가 ‘예비문화재’의 도입을 강조하면서 ‘박세리의 골프채, 김연아의 스케이트, 서울올림픽 굴렁쇠’ 등을 꼽았다.

 

하지만 ‘예비문화재’ 도입은 관리체제만 복잡하게 만든다는 우려 때문에 무산된 바 있다.

 

문화재청은 이번 업무계획을 발표하면서 그저 ‘예시만 든 것’이라고 당혹스러워 한다.

 

장래 문화유산의 가치가 충분할 기념물을 미리 관리하겠다는 문화재청의 뜻은 가상하다.

 

그러나 아무리 ‘예시를 들었을 뿐’이라도 살아있는 사람의 신발까지 문화유산으로 대접한다는 것은 어쩐지 정서에 맞지 않는다.

 

일단 개인이 잘 관리하던가, 빙상박물관 같은 곳에서 잘 대접한 연후에 먼훗날 문화유산의 향기가 짙에 밸 때, 그때 가서 국가가 나서 관리해줘도 늦지 않다.

 

이번 문화재청의 ‘예시’는 본의 아니게 김연아 선수에게도 누가 되었다.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