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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래자 思來者

고구려 사신 그려진 아프로시압 벽화의 속살, 국내연구진이 밝혀낸다

1965년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드 시의 아프로시압 도성지에서 도로공사 중 매우 흥미로운 동서남북 4면 벽화가 발견됐다. 

정면(서벽)의 벽화는 7세기 중반 사마르칸트 왕 바르후만을 알현하는 외국 사절단 행렬을 그렸다. 좌측면(남벽)에는 남부지역인 수르한다리야에서 시집오는 결혼 행렬이 그려져 있다. 하얀 코끼리 등 위에 올라탄 신부를 말을 탄 시녀들이 주위를 에워싸고 있다. 

1965년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아프로시압 도성지에서 발견된 궁전벽화. 7세기 중반 사마르칸트 바르후만 왕을 알현하는 외국 사절 가운데 고구려 사신으로 추정되는 두 인물이 보인다.|문화재청 제공

그 뒤를 낙타와 말을 탄 행렬이 따르고 있다. 우측면(북벽)에는 여인이 배를 타고 악기를 연주하고, 사람과 동물이 싸우는 내용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이 벽화가 국내학계의 관심을 끈 것은 서벽의 외국 사절 행렬도 때문이었다. 서벽의 벽에 보이는 등장인물은 모두 58명이다. 정면 상단의 바르후만왕을 중심으로 가운데에는 예물을 바치려고 차례를 기다리는 대열과 그 좌우에 앉아있는 그룹과 그 아래의 사절들이 보인다. 

학계는 행렬도의 오른쪽 맨 마지막에 서있는 두 사람이 한반도에서 파견한 사절이라고 보았다. 상투머리에 새의 깃을 꽂은 조우관(鳥羽冠)을 쓰고 있다는 것이 우선 꼽혔다. 

또 긴 상의에 검은색 띠를 두른 허리, 헐렁한 바지에 뾰족한 신발을 신고 팔짱을 끼고 있는 모습은 당시 삼국시대 사람들의 복식과 일치하다는 것이었다. 

아프로시압 궁정벽화의 복원도 모두 58명의 등장인물이 보인다. 오른쪽 끝에 고구려 사신인듯한 두 인물이 보인다.|이성제의 ‘650년대 전반기 투르크계 북방세력의 동향과 고구려’, <동북아역사논촌> 65집, 동북아역사재단, 2019에서

무엇보다 차고있는 환두대도가 당대 고구려인이 차고 있던 검과 형태가 같다는 점도 꼽혔다. 조우관을 쓰고 환두대로를 찬 이 두 사절의 국적이 ‘고구려’라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두 사절이 아프로시압 궁전을 찾은 시기는 7세기 중반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4월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아프로시압 박물관을 방문해 이 벽화를 살펴보기도 했다.

문화재청은 최근 고구려 사절단 모습이 그려진 아프로시압 궁전벽화의 보존·관리 상태에 대한 현지조사를 마치고, 벽화 파편 11점을 지난해 12월 국내로 들여와 최근 과학적 분석을 마무리했다. 문화재청은 문재인 대통령 방문 때 우즈베키스탄과 이 궁전벽화의 보존을 위해 함께 노력한다는 양해각서를 맺은 바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원들이 아프로시압 궁전벽화를 현지조사하고 있다.|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국내로 들여온 벽화 파편들에 대한 전자현미경 분석, X선 형광 및 회절분석, 열분석 등 과학적인 분석을 다양하게 시행했다. 

그 결과 벽화의 제작기법과 청색·적색·흑색 등 채색 안료의 성분과 광물 조성, 과거 보존처리에 사용된 재료를 확인했다. 또 궁전벽화의 모든 시료 바탕에는 석고가 사용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 청금석 및 적색 안료는 주토(朱土·산화철이 많이 포함되어 붉은 빛을 내는 광물의 하나)를 썼고, 흑색은 납을 함유한 광물성 안료로 채색했다는 점을 알아냈다. 

서민석 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관은 “특히 흑색의 경우 대부분 먹을 사용한 국내전통 채색기법과는 다른 특징으로 확인됐다”면서 “앞으로 중앙아시아와 한반도 간 벽화 제작기술과 안료의 유통경로를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경향신문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