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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 역사

닭의 항변, ‘닭대가리를 모독하지 마라’

흔히 머리 나쁜 사람을 흔히 ‘새대가리’ ‘닭대가리’라 놀립니다. 서양인들도 ‘Birdbrain’이라 손가락질 합니다. 그러나 한가지 아셔야 합니다. 적어도 한국인들이 새와 닭을 폄훼한다면 그것은 누워 침뱉기격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보십시요. 혁거세(신라)·주몽(고구려)·수로(가야) 등이 모두 난생신화의 주인공들이 아닙니까.
따지고보면 동이계는 원래 새를 숭상하는 종족이었습니다. 닭은 더욱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박혁거세가 태어난 우물이 바로 계정(鷄井·나정)이고, 부인 알영은 같은 날 계룡(鷄龍)의 왼쪽 갈비에서 태어났습니다. 알영의 입술은 닭부리 같았답니다. 경주 김씨를 비롯한 신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는 어떻습니까. 김알지가 태어난 숲에서 흰닭의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서 신라를 닭의 숲, ‘계림’이라 부른답니다. 따지고보면 시계가 없던 시절 수탉의 울음소리는 어둠을 뚫고 밝은 세상의 개막을 알리는 서곡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지금까지 닭을 ‘재수없는 닭대가리’ 쯤으로 폄훼되고 있습니다. ‘암탉이 울면 어쩌구’ 하는 ‘어혐속담’이 여전하고 요즘엔 너도나도 ‘닭’이라는 성을 붙여 현직 대통령을 풍자하고 있습니다. 무지몽매한 혼군(昏君)의 실정을 죄없는 ‘닭’에 견주니 가만 있는 닭으로서는 ‘의문의 1패’를 당한 셈입니다. 그렇지않아도 해마다 10억 마리의 닭이 희생되는 판입니다. 요즘엔 2500만마리의 닭이 조류인플루엔자 때문에 말 그대로 떼죽음을 당했습니다. 새삼 어미닭도 병아리의 아픔을 보고는 애틋한 모정을 느낀다는 최근의 연구결과가 있답니다. 정유년이 시작됐지만 닭의 수난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닭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115회는 ‘닭의 항변-닭대가리라 부르지 마라’입니다.

 

머리 나쁜 사람을 흔히 ‘새대가리’ ‘닭대가리’라 한다.

 

또 깜빡깜빡 잘 잊어버리면 ‘까마귀 고기를 드셨냐’는 핀잔을 듣기 일쑤다. 

그만큼 닭으로 대표되는 새의 지능이 일차원적이라는 얘기다. 이 속설은 서양에도 있다.

 

영어에서 ‘머리 나쁜 사람’을 ‘Bird brains’이라 하며 경멸하는 것을 보면….

 

뇌가 작으니 지능이 낮을 수밖에 없다는 선입견 탓일까. 그러나 새를 보라. 머리에 비해 뇌가 작은 편이 아니다. 당연히 새에게도 지능은 있다.

 

박혁거세가 태어난 계정(나정). 닭의 우물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혁거세의 부인인 알영도 같은 날 계룡의 왼쪽 갈비에서 태어났다. 알영은 닭부리 같은 입술을 갖고 있었다.

■새대가리의 반전
물론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의 지능지수를 판정하기는 어렵다.

 

1960년대 연구결과를 보면 까마귀의 경우 숫자 3을 셀 정도의 지능으로 알려졌다. 앵무새는 6까지, 가마우지는 7까지 셀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가마우지의 지능은 중국의 광시좡족자치구를 흐르는 리강에서 가마우지를 이용해서 물고기를 잡는 어부들을 관찰함으로써 밝혀냈다. 어부들은 가마우지의 목에 줄을 죈채 물고기를 잡게 한다. 잡은 물고기를 삼키지 않고 뱉어내게 한 것이다. 그러나 보상은 있다. 7마리를 잡게 한 뒤 목줄을 푸는 것이다.

 

그러면 가마우지는 해방감을 만끽한채 8마리째 잡은 ‘보상’ 물고기를 삼킨다. 다소 잔인한 방법이지만 조류학자들은 이 낚시법에서 가마우지가 숫자를 7까지 센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즉 7마리 할당량을 다 채웠는 데도 목줄을 풀지 않으면 가마우지는 태업에 돌입한다.

 

어부가 아무리 잡아끌어도 꿈쩍도 않고 횃대에 슬픈 표정으로 앉아 있다. 7마리 할당량을 채웠으니 빨리 목줄을 풀어달라는 무언의 시위인 것이다. 목줄을 풀면 가마우지는 자기 몫인 8번째 물고기를 잡으려 쏜살같이 물속으로 다이빙한다.

다른 새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나름의 지능이 있다. 상당수 새들은 자신들의 둥지에 있는 알의 수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또 자신의 알을 남의 새 둥지에서 키우는 기생 뻐꾸기들은 자신의 알을 남의 둥지에 놓기 전에 원주인의 알 하나를 깜쪽같이 치워버리는 깜찍한 바꿔치기를 감행한다.

중국 구리린(桂林) 리강의 어부들은 가마우지를 활용해서 물고기를 잡는다. 목끈으로 가마우지의 목을 죄고 7마리를 사냥하게 한 다음 목끈을 풀어준다. 가마우지는 이때 비로소 자유롭게  물고기를 잡아먹는다. 만약 8마리째가 되었는데도 목끈을 풀어주지 않으면 가마우지는 난리를 친다. 가마우지가 7이라는 수의 의미를 안다는 뜻이다.  

더 신기한 일도 있다. 뉴칼레도니아 까마귀는 긴 시험관 속 작은 양동이에 있는 먹이를 먹기 위해 철사를 구부려 갈고리 모양으로 만든다.

 

덕분에 야생동물 가운데 가장 똑똑하다는 침팬지보다도 똑똑한 까마귀라는 찬사를 받는다. 미국의 이렌느 페퍼버그 브랜다이스대 교수에게서 30년 동안 말을 배운 천재 앵무새 알렉스는 영어 단어 150여개의 의미와 색깔, 모양, 개수를 이해한 것으로 유명하다.

 

알렉스는 1~6까지의 숫자를 셌으며, ‘있다’ ‘없다’의 의미를 스스로 깨우쳤다. 심지어 파란 열쇠 두 개와 빨간 열쇠 두 개를 보이고 파란 열쇠가 몇 개냐 물으면 ‘두 개’라 대답하고, 차이점을 물으면 ‘색깔’이라 했다. 이를 두고 누가 새대가리라 할 것인가.

 

■닭의 모정
닭은 어떨까. 닭도 나름의 뇌를 갖고, 엄마의 정도 지니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영국 브리스톨대의 존 에드거 교수가 2011년 왕립자연과학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이다. 즉 강한 바람을 맞은 병아리들의 깃털이 구겨지자 어미닭의 심장박동수가 높아졌다. 또 안구 온도도 눈에 띄게 떨어졌다.

 

김알지가 태어난 것으로 알려진 계림. 닭의 울음소리를 듣고 숲속으로 가보자 황금궤짝이 보였고 그 밑에 흰 닭이 울고 있었다고 한다. 궤짝으로 태어난 아이가 경주 김씨의 시조 김알지였다.

병아리가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음을 일러준다. 이것은 닭도 애정과 고통을 느끼는 공감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준다.

2014년 과학학술지인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는 이른바 ‘똑똑한 새(Brainy birds)’라는 논문이 실렸다. 즉 닭의 울음소리를 24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이 소리들이 다양한 소통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수탉은 닭을 잡아먹는 포식자를 발견하면 사납게 경고음을 낸다. 그러나 주변에 다른 수탉만 있으면 경고음을 내지 않는다. 왜냐. 라이벌인 다른 수탉이 잡아먹히면 자신에게는 오히려 이득이기 때문이다. 이 영악한 새를 두고 누가 ‘닭대가리’라 폄훼할 것인가.

 

■알에서 태어난 박혁거세, 주몽, 김수로, 김알지
더구나 남을 자꾸 새대가리, 닭대가리 하고 경멸하면 스스로에게 침을 뱉는 행위가 된다.

왜냐. 신라의 조상인 박혁거세와 김알지, 김수로왕을 비롯한 가락국 임금들, 고구려의 동명왕(주몽) 등을 보라. 모두 난생설화의 주인공들이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다 나와있다.

 

예컨대 북부여의 유화부인은 햇빛에 감응하여 임신한 뒤에 알(卵)을 낳았다. 훗날 한 남자아이가 알을 깨고 나왔는데 골격과 외모가 영특하고 호걸다웠다. 이 아이가 바로 주몽(동명왕)이다.

 

가야의 시조 김수로왕은 어떤가. 기원후 42년 구지봉 위에 하늘로부터 자줏빛 줄이 내려왔다. 붉은 보자기가 있었다. 보자기에 싸인 금합을 열어보니 해처럼 둥근 알 6개가 있었다. 6개의 알이 변해서 아린아이가 되었는데 용모가 훤칠했다. 이 중 한 어린이는 대가락국의 수로왕이 됐고, 다른 5명도 5가야의 임금이 됐다.

 

변상벽의 ‘암탉과 병아리’. 암탉도 병아리의 아픔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연구결과가 최근에 나왔다.|국립박물관

신라 시조 박혁거세 역시 알에서 태어났다.
“기원전 57년 나정(계정·鷄井)의 곁에 이상한 기운이 번개처럼 땅에 드리우더니 웬 흔 말 한마리가 무릎을 꿇고 절하는 시늉을 했다. 살펴보니 말은 보이지 않고 그 곳에서 큰 알이 있었다, 갈라보니 갓난아이가 나왔다. 큰 알이 박과 같았기 때문에 박(朴)을 성으로 삼았고, 이름을 혁거세라 했다.”

 

■동이족의 새(鳥) 토템
아닌게 아니라 동이족과 새는 밀접한 사이다.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전’을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신라인들은 스스로 소호금천(少昊金天)의 후예이므로 김씨라 했다. 김유신묘의 비석에서도 ‘소호씨의 자손’이라 했다. 남가야의 시조 수로도 신라와 성이 같다.”

그런데 <삼국사기> ‘백제본기 의자왕조’도 “신라인은 자칭 소호금천(少昊金天)씨의 후손인 까닭에 성을 김씨라 했다”고 기록했다. 소호금천은 중국신화에서 새를 숭상한 동이족의 수령으로 알려져 있다.

 

동이족의 후예로서 대륙을 석권한 상(은)나라의 건국신화도 고구려·신라·가야와 똑같은 난생신화라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사기> ‘은본기’에 등장하는 탄생신화를 보라.

“은나라 시조 설(契)의 어머니는 간적(簡狄)이다. 그녀는 제곡(황제의 증손자)의 둘째부인이다. 간적 자매가 목욕을 하러 가는데 제비가 알을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 간적이 이를 받아 삼켜 잉태했다. 그가 설이다.”

설은 기원전 1600년 무렵 상나라를 건국한 성탕의 직계 선조이다. 상나라의 탄생신화에 등장하는 간적 부인을 보면 고구려의 유화부인 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 동이족은 누가 뭐래도 새를 토템으로 삼은 종족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닭부리 부인 알영
그런데 더 기막힌 새는 닭이다. 한국 역사와 닭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우선 박혁거세와 그 부인인 알영(閼英)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박혁거세가 태어난 날, 사량리 우물가에서 계룡(鷄龍)이 나타나 왼쪽 갈비에서 여자 아이를 낳았다. 자색이 뛰어났지만 입술이 닭의 부리 같았다. 여자 아이를 월성의 북천으로 데려가 목욕시키니 그 부리가 튕겨져 나갔다. 사람들은 두 명의 신성한 아이(박혁거세와 알영)을 모셔 잘 길렀다. 두 성인의 나이가 13살이 되자 혼인시켰다. 박혁거세는 왕이, 알영은 왕후가 됐다.”(<삼국유사>)

우선 박혁거세와 알영은 나이와 태어난 날까지 같은 동갑내기였다는 것이 흥미롭다. 또하나, 박혁거세가 태어난 우물이 계정(鷄井·혹은 나정), 알영이 탄생할 때 출현한 동물이 계룡이었다는 것 덕분에 신라를 ‘계림(鷄林)’이라 칭했다는 설이 있다.

후술하겠지만 신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가 태어나자 숲속에서 닭이 울었기 때문에 나라 이름을 ‘계림’으로 고쳤다는 설도 있다. 어떤 경우든 신라인의 조상과 ‘닭’은 불가분의 관계임을 알 수 있다.

 

전 민애왕릉에서 출토된 닭 유물. 당시 신라인들은 닭의 신을 숭상할 정도였다.

또하나 신라인의 어머니인 알영은 누가봐도 닭의 형상을 갖고 태어난 여인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겠다. 참고로 박혁거세와 알영 부부는 2대왕 남해차차웅(재위 4~24년)을 낳았다.

 

■신라가 닭의 숲, 계림(鷄林)인 이유
그런데 앞에서 잠깐 실마리를 던졌지만 신라 김씨의 조상까지 파고 들어가면 더욱 기막힌 사실(史實)을 얻을 수 있다.

“기원후 65년 금성(경주)의 서쪽 숲에서 닭우는 소리가 들렸다. 재상 호공이 가서 보니 나뭇가지에 금색 궤짝이 걸려 있고 흰 닭이 그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궤짝을 열어보니 작은 남자 아이가 그 안에 있었다. 자태가 훌륭했다. 왕이 기뻐하며 ‘이는 어찌 하늘이 내게 내려준 아들이 아니겠는가’라며 거둬 길렀다.”(<삼국사기>)

<삼국유사>는 더 나아가 “서쪽 숲 시림(始林)의 가운데로 크고 밝은 빛이 비쳤으며, 자색 구름이 하늘에서 뻗쳐 내려왔다”고 더욱 더 판타지를 가미했다. 호공이 가서보니 그 빛이 상자에서 나왔고, 흰 닭이 나무 밑에서 울고 있었다면서…. 상자를 열자 아이는 곧바로 일어났다고 한다. 

어쨌거나 아이를 얻은 탈해 이사금(재위 57~80)은 아이의 이름을 알지(閼智)라 했다. 알지는 우리 말(鄕言)로 ‘아이(小兒)’를 일컫는다. 남해차차웅이 알지를 안고 궁으로 돌아오자 새와 짐승들이 춤추면서 뛰놀며 앞다퉈 따랐다. 왕은 길일을 잡아 알지를 태자로 책봉했다.

 

■김알지와 닭의 울음
그런데 <삼국유사>를 보면 김알지가 훗날 태자의 자리를 파사 이사금(재위 80~112)에게 양보하고 재야에 묻혔다.


그랬으면 김알지와 신라왕계의 사이는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삼국유사>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긴다.

“김알지는 황금궤짝에서 나왔으므로 김(金)씨를 성으로 삼았다. 알지 이후 (7대가 흘러) 미추가 나왔다. 미추가 즉위하니 신라 김씨는 알지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닭을 숭상하는 신라인의 관념은 당대 국제적으로도 유명했던 것 같다. <삼국유사> ‘귀천축제사’조를 보면 천축인(인도인)들이 보는 신라인의 모습이 묘사돼있다.

“천축인은 해동(신라)을 구구타예설라라 한다. 구구타는 계(닭)을, 예설라는 귀하다는 뜻의 귀(貴)를 일컫는다. 천축인들은 ‘신라인은 닭신(鷄神)을 숭상하기 때문에 그 깃을 꽂아 장식한다’고 했다.”

닭을 얼마나 사랑했으면, 닭의 깃을 머리에 꽂아 장식하는 이가 당대의 패션피플이 되었을까.

닭을 그려넣은 조선시대 제기.|궁중유물전시관

김알지는 비록 왕위를 양보했지만 앞서 인용한대로 7대손인 미추왕(재위 262~284)이 김씨왕조를 열었다. 신라 56대 임금 가운데 김씨가 38명에 달한다.

지금 경주 김씨를 비롯하여 김알지를 시조로 둔 이른바 경주 김씨의 본관만 해도 270여개에 달한다. 경주 김씨만 해도 180만명(2015년)에 달하며, 김알지 계열의 신라 김씨(부안·안동·김녕·언양·강릉·광산·언양·우록 등)와, 김씨에서 갈려나간 다른 성씨(안동 권씨, 강릉 왕씨, 광산 이씨, 감천 문씨, 수성 최씨)까지 합하면 어떨까. 솔직히 얼마나 많은 김알지 계열의 사람들이 존재하는 지 파악하기조차 어렵다.

그밖에 고구려 동명왕이나 가야 6국의 시조들 또한 알에서 태어났다는 탄생설화를 공유하는 한 닭이나 새를 함부로 폄훼할 수 없을 것 같다.

 

■닭벼슬은 입시출세의 상징
따지고보면 닭처럼 상서로운 동물도 드물었다. 한나라 경학자 한영이 지은 <한시외전>은 닭에게는 5가지 덕이 있다고 했다.

“머리에 붉은 관을 쓰고 있어 문채(文彩)가 난다. 다리에는 긴 뒤발톱과 날카로운 발톱을 지녀 무(武)을 겸비했다. 강한 적을 앞에 두고도 감히 싸움을 벌이니 용기가 있고, 먹이를 얻으면 ‘꼬꼬’하면서 서로에게 고하니 인의(仁義)가 있으며, 날이 샘을 고하여 해시계와 같으니 믿음을 지킨다.”

이렇게 옛 사람들은 닭이 머리 위에 볏을 달고 있는 모습을 보고 닭벼슬(鷄冠)이라 했다. 벼슬 관(冠)자가 무엇인가. 과거급제와 같은 입신출세를 의미했다. 그래서 조선시대 사람들은 닭의 그림을 서재에 걸었다.

 

어떤 경우엔 닭벼슬처럼 생긴 맨드라미를 닭과 같이 그렸다. 이것은 관 위에 관을 더한다는 ‘관상가관(冠上加冠)’의 뜻이니 ‘출세운, 관운이 터져라’는 바람을 담은 것이다.

특히 조선의 닭은 품질이 좋기로 유명했다. <본초강목>을 보면 “조선의 닭이 좋다하여 중국의 세력가들은 조선까지 와서 닭을 구해간다”고 했다.

 

■새벽에 닭이 10번 울면…
닭은 또 귀신을 몰아내고 사악한 기운을 쫓는 축귀와 벽사의 동물로 여겨졌다. 그래서 새해가 되면 닭그림, 닭피, 닭 등을 즐겨 사용했다.

닭을 그린 경남 충무지역의 민화

 

예컨대 <동국세시기>를 보면 새해를 맞는 가정은 닭그림을 벽에 붙여 액을 몰아내려 했다. ‘닭울음점’도 있었다. 설날 꼭두새벽에 우는 첫닭의 울음을 셌다. 만약 열 번 이상 울면 그 해는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이것을 계명점(鷄鳴占)’이라 했다.

그럴만도 했다. 닭의 울음소리는 어두운 밤을 보내고 여명을 알리는 신호였다. 사람들은 밤에 횡행하던 귀신이나 요괴도 닭 울음소리가 들리면 일시에 사라져 버린다고 믿었다.

 

그래서 어두운 시대를 끝내 견뎌내면 어떻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수 있으며, 닭의 울음은 바로 밝은 세상을 알리는 서곡으로 여겼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런만큼 닭은 상서롭고 신통력을 지닌 서조(瑞鳥)였다. 중국 한나라 시대의 저작물인 <회남자>는 “하늘의 닭, 즉 천계가 해 뜰 때에 울면 천하의 닭들이 모두 따라서 운다(天鷄日出卽鳴天下鷄皆鳴)”고 했다. 새벽을 알리는 영물이었던 것이다.

 

■암탉이 뒤집어쓴 누명
또하나 닭의 효용가치는 ‘정확한 시보(時報)’다. 시계가 없었던 시절을 상상해보라. 새벽닭 울음으로 새 아침을 맞이했다.

<시경>을 보면 “닭이 울면 부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는 시간”이라 했다.

만약 새벽 제 시간에 울지 않으면 어찌되는가. 바로 그게 문제다.

 

제시간에 울지 않으면 만사가 뒤죽박죽 된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제때 울지 않거나 울 시간이 아닌데 우는 것을 불길하게 여겼다. 초저녁에 닭이 울면 재수가 없고, 오밤중에 울면 불행하고, 해가 진 뒤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도 나왔다.

이런 맥락에서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여혐속담’도 등장했다.

왜? 우렁차고 긴 닭의 울음은 수탉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암탉은 생태학상 ‘꼬꼬댁 구구’ 하는데 그친다.

그러니까 암탉의 울음은 세상이 정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새벽에 암탉이 울었다면 보통 비정상이 아닌 것이다.

 

그러니 남성들이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서슴없이 여험발언을 해대는 것은 어쩐지 군색하다. 예컨대 기원전 1046년 주나라 무왕이 상나라 마지막 임금인 주왕을 정벌하러 나설 때 “암탉은 새벽에 울지 않는데 울고 있으니 집안(나라)이 망한다(牝鷄之晨 惟家之索)”는 명분으로 출사표를 던졌다. 상나라 주왕이 부인(달기)의 말만 믿고 정사를 어지럽혔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으로 치면 정말 군색한 명분을 내세웠다고 비난 받을만 하다. 주왕의 실정은 다른 곳에 있었다. 주왕은 당시 최고의 덕목이었던 하늘신·조상신에 대한 제사를 지내지 않았고, 포악한 정치로 백성들을 괴롭혔다. 나라를 망친 장본인은 바로 남편 주왕인데, 애꿎은 달기에게 책임을 물어 ‘암탉 운운’한 것이다.(<사기> ‘은본기’)

닭으로서는, 그것도 암탉으로서는 참으로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쓴 셈이다.

 

■닭을 모독하지 마라
그로부터 정확히 3062년이 지난 요즘 닭의 누명이 재현됐다.

 

‘그네’라는 이름에, ‘닭’이라는 성을 붙여 현직 대통령을 풍자하고 있다. 닭의 입장에서는 의문의 1패를 당했다. 무지몽매한 혼군(昏君)의 실정 때문에 세상이 이 지경이 됐는데 ‘닭’이니 뭐니 하며 공연한 무고를 당하고 있다.

천마총에서 발굴한 달걀껍질. 1500년 가까이 흘렀지만 멀쩡하다. 달걀은 다산과 풍요의 상징이기도 했다.

지금 지구촌엔 200억마리의 닭이 인간의 먹잇감이 되기 위해 사육되고 있다. 지난해 한국에서 도축된 닭은 9억6700만마리에 달한다.

 

4인 가정으로 치면 1년에 80마리의 닭을 먹는 셈이다. 게다가 요즘엔 조류인플루엔자 때문에 무더기로 생죽음 당하고 있다. 닭의 해인 정유년이 시작되었는데도 닭의 수난은 계속되고 있다.

어미닭도 병아리의 아픔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연구결과를 염두에 두자. 인간을 위해 도축되고, 때로는 생매장을 당하는 닭에게도 감정이 있으며, 어미닭의 모정이 존재한다는 것을….

 

게다가 고구려·신라·가야의 역사가 난생신화를 담고 있고, 심지어 신라의 경우 닭의 숲, 즉 ‘계림’이라 할만큼 닭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못난 인간을 욕하려고 ‘닭대가리’ 운운하는 것은 누워 침뱉기일 수 있다. 거꾸로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허튼 짓해서 닭을 공연히 욕먹이는 인간이 되어서도 안되겠다. 그것은 닭에게도 모독이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이 기사는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의 2002년 중앙대 박사논문인 ‘한국 띠동물의 상징체계 연구’를 주로 참고해서 썼습니다. 과학칼럼니스트 현수랑이 네이버에 2014년에 쓴 ‘KISTI의 과학향기 칼럼-우린 억울해! 새 대가리의 역습’도 보았습니다. 새의 지능(Bird intelligence)과 관련해서는 위키피디아 영문판을 보았고, ‘똑똑한 새’와 관련된 국내 언론들의 기사를 참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