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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박근혜의 문화융성, 전두환의 정의사회 구현

정의(正義)란 무엇인가.

 

학자마다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철학자 존 롤즈는 ‘자유롭고 평등한 것’이라 요약한다. 공자와 맹자는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올바른 도리’라 했다.

 

그런데 인간의 지고지순한 가치인 ‘정의’가 무색해진 때가 있었다. 1980년대 한국사회이다. 총칼로 정권을 탈취한 전두환 당시 국보위상임위원장은 1980년 8월11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12 12사태를 일으켰고, 광주 민주화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한 전두환 세력이 내건 슬로건이 바로 '정의사회 구현'이었다. 그러나 정권내내 친인척 축근비리에 1080년대 한국사회는 전형적인 '불의사회'가 되었다.

“정당한 노력에 정당한 대가가 치러지는 그런 사회…정직하고 근면한 사람이 존경받고 대우받는 사회를 이룩하고자 합니다.…정의가 불의에 쫓기는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처럼 취급되는 사회에서는….”(경향신문)
이후 ‘정의사회 구현’은 이른바 제5공화국의 브랜드가 되었다.

 

그러나 정권출범 1년도 안돼 친인척 측근들이 ‘정의 사회’를 짓밟기 시작했다. 친동생(전경환)의 새마을비리와 이철희·장영자의 어음사기 사건 등 권력형 부정부패사건이 꼬리를 물고 터졌다.

 

서민들에게 강요된 ‘정의’의 토대 위에 친인척 측근이 마음껏 분탕질 한 것이다. 바름과 올곶음을 뜻하는 ‘정의’의 뜻이 졸지에 희화화했다.

지금 또하나 우스워진 단어가 있다. ‘문화융성’이다. 2013년 취임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12번이나 ‘문화융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는 뜬구름 잡는 모호한 개념이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주요 국정기조로 문화를 전면으로 내건 첫번째 정부라는 평가를 받았다.

 

오히려 하얀 도화지에 마음껏 ‘문화융성’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반색도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당시 국립서울현충원 방명록에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 등 3대 국정과제를 썼다. 그러나 비선실세의 국저농단으로 국민은 불행해졌고, 문화융성은커녕 부패만 융성해졌다.  

 

박대통령은 “문화가 일어설 때 국민들의 자긍심과 흥이 함께 일어난다”고까지 했다.

 

하지만 속셈이 어떠했는가. 박근혜표 문화융성이란 최순실·차은택 등 비선실세의 흥을 일으키고 배만 채워주는 돈놀이판 ‘부패융성’이었다. 전두환의 ‘정의사회’와 어쩌면 그렇게 똑같다는 말인가.

문화체육관광부의 올해 업무계획 때 ‘문화융성’이란 표현이 싸그리 빠졌다. “의혹도 있고, 다른 단어로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게 문체부의 설명이다.

 

이제와서 실체가 불분명한 용어라는 것을 반증한 꼴이다.

 

사실 대통령자문기구로 출범한 문화융성위원회의 홈페이지는 ‘문화융성’의 개념을 그래픽으로 정리해서 설명해놓았다.

‘행복을 만들고 경제를 살리고 마음을 열고 국격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 설명과 정반대로 시민을 불행하게 만들고, 경제계에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소통의 마음을 꽁꽁 닫아버리고, 국격까지 망쳐놨다.

 

흔적을 지워버리고픈 마음이 절로 든다.

 

이 뿐이 아니다. 대한체육회가 운영중인 37개 K스포츠클럽 명칭도 바꾸기로 했다. 최순실 게이트의 K스포츠재단을 연상한다는 이유로 K자를 뺐다.

 

‘K리그는 어쩌란 말이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본의아니게 엉뚱한 곳까지 피해를 주고 말았다. 새삼 웃음거리가 된 문화와 문화융성의 본뜻을 생각해본다.

 

문화와 문화융성이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의 기초(문화헌장)를 다지는 것이다.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