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무왕릉으로 추정되는 전북 익산 쌍릉(대왕릉)은 생전에 치밀한 계획아래 조성됐을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 4월 50~70대 노년 남성의 인골이 출토된 전북 익산 쌍릉(사적 제 87호)의 대왕릉에서 백제고분으로는 가장 길이가 긴 묘도가 확인됐다.
이번에 확인된 무덤길. 4m50㎝ 가량의 흰선은 피장자 생전에 무덤을 조성하려고 판 흔적이며, 보라색 선은 피장자가 죽은 뒤 파낸 무덤길의 흔적이다. 가운데 파란색 선은 일제가 파낸 흔적이다. 왕릉이 피장자 생전에 철저하게 준비된 수릉이라는 얘기다.|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제공
쌍릉 중 대왕릉을 발굴중인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는 20일 길이 21m, 최대 너비 6m, 최대 깊이 3m 가량의 묘도(무덤 입구에서 시체를 두는 방까지 조성한 길)를 찾았다고 밝혔다. 석실입구의 묘도 너비는 4m 정도이고, 묘도 시작 부분의 너비는 6m 내외이다. 바닥의 높이는 80cm 정도로 석실 입구쪽이 높게 형성되어 있다.
익산 쌍릉은 오금산 줄기가 끝나는 남서쪽 능선에 대왕릉과 소왕릉이 180m 가량 떨어져 자리잡고 있다. 지난해 8월부터 일제강점기 1917년 야쓰이 세이이쓰(谷井濟一) 조사 이후 100년 만에 발굴조사가 펼쳐지고 있다.
특히 지난 4월 대왕릉 1차 발굴 결과 ‘50~70대 남성 노년층. 연대는 서기 7세기 중반. 키는 161~170.1㎝’로 분석된 인골이 확인된 바 있다. 따라서 이 인골의 주인공이 다름아닌 선화공주와의 혼인 등 서동설화의 주인공인 서동백제 무왕(재위 600~641년)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후 대왕릉 2차 발굴조사는 올 5월부터 7개월 동안 대왕릉 주변과 묘도를 중점적으로 조사해왔다.
이번 조사에서는 고분 축조 과정에서 석실이 먼저 조성되고 일정 시간이 지난 뒤 긴 묘도를 만들어 봉분이 완성된 사실도 확인했다. 따라서 대왕릉이 피장자 생전에 철저히 준비되었던 수릉(壽陵·살아생전 미리 조성한 임금의 능)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최완규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장은 “무덤 규모로 보나, 이번에 확인한 무덤길로 보나, 수습한 인골에 대한 과학적 분석으로 보나 대왕릉은 백제 무왕의 무덤임이 확실하다”고 밝혔다. 경향신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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