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기준으로 한국인의 전체 성씨는 5582개 정도다.
그 중 4075개가 한자 성씨가 아니니 단일 민족이니 뭐니 하는 것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 알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성씨와 비교해보면 새발의 피다. 지난해 말 미 연방 센서스국이 분석한 미국인의 전체 성씨(2010년 기준)는 무려 630만개였다. 이 가운데 390만개의 성씨는 단 한 사람씩이다.
작성 오류를 감안하더라도 다양한 성씨로 구성됐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부동의 최대 성씨인 스미스(244만명)의 비율이 전체인구(2억9500만명)의 0.82%에 불과하다.
2~4위인 존슨(193만명)과 윌리엄스(163만명), 브라운(144만명) 등의 수도 미미하다. 김(1069만명·21.5%)·이(731만명·14.7%)·박(419만명·8.4%) 등 특정 성씨가 절대다수인 한국인의 통계와 천양지차다.
한국 이민자의 성인 김씨가 미국 성씨의 77위(26만2352명)에 올랐다는 것이 특히 눈에 띈다. 콕스와 워드, 리처드슨, 왓슨, 브룩스 보다도 앞섰다.
이(Lee)씨는 23위에 랭크됐지만 중국인은 물론 백인·흑인계 중에서도 포함돼있으니 한국 성씨인지는 구별하기 어렵다.
한국계의 성이 확실한 박씨(289위·10만6696명)도 명함을 내밀었다. 한국인이 이민 행렬이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9848위에 불과한 트럼프(1만6263명)와 11만825위에 머무른 오바마(159명)를 멀찌감치 따돌렸다.
히스패닉 성씨의 도약은 더욱 눈부시다. 1990년 조사에서 18위였던 가르시아가 이번에 6위(112만명)로 급부상했다.
‘톱 20’에 무려 6성씨(가르시아·로드리게스·마르티네스·에르난데스·로페스·곤살레스)가 자리를 차지했다. 히스패닉 인구가 2000~2010년 사이 43%나 급등했음을 반영하는 통계이다.
‘장벽건설’과 ‘행정명령’으로 대표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정책이 바로 이런 통계에서 비롯됐다면 이것은 커다란 착각이다.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지만 트럼프 본인을 포함한 모든 미국인은 ‘이민자의 자손’이다. 1904년 뉴욕의 이민물결을 목격한 철학자 헨리 제임스(1843~1916)은 “혼합된 미국의 체제에 신선한 외국 물질을 도입하는 끊임없는 과정”이라 했다.
1908년 러시아 출신의 극작가인 이스라엘 쟁윌(1864~1926)은 다양한 인종이 섞여 미국인의 정체성으로 녹이는 과정을 연극(‘멜팅포트·Melting Pot)’으로 만들었다. 주인공 데이비드 퀴사노가 외친다.
“미국은 신의 용광로다. 모든 인종이 거대한 용광로에서 녹아 미국을 만든다.”
이 ‘멜팅포트’라는 용어는 오늘날의 미국을 만든 다원성의 힘을 추구하고 상징한다. 트럼프의 시대착오적인 반이민 정책은 미국의 근본까지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이 기사는 ‘김진웅의 <미국인의 탄생>, 살림, 2006’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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