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유엔 사무총장(71)이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한 다음날(지난달 4일) 산둥성 태산(泰山)에 올랐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제와 새삼스레 인구에 회자되는 이유가 있다. 차기대권 후보로 거론되는 반총장이 중국 역대 황제들이 봉선(封禪), 즉 하늘신(封)·땅신(禪)에게 제사를 지낸 태산을 찾았기 때문이다. 하기야 대망을 품었던 김대중·노태우 전직 대통령을 비롯, 손학규·김중권씨 등 유력한 정치인들이 오른 경험이 있다.
반 총장이 태산에 올랐을 때 비가 내린 것도 참새들의 입방앗거리가 됐다. 중국에서 ‘태산에 오를 때 비를 맞으면 큰 뜻을 이룬다’는 우중등태산(雨中登泰山)의 속설이 있다는 것이다. 한데 이 속설이라는 게 석연치는 않다.
기원전 195년 진시황이 봉선을 위해 태산에 오를 때 폭풍우를 만났다. 시황제가 큰 나무 아래서 비를 피했다. 시황제에게 배척받고 있던 유생들이 ‘꼴좋다’고 비아냥댔다.
유생들은 “황제가 태산에 올랐지만 폭풍우의 저지를 받아 봉선을 행하지 못했다”는 헛소문을 퍼뜨렸다. 사마천은 “덕행을 갖추지 못한 황제에게는 봉선의식을 올릴 자격이 없음을 폭풍우로 알려준 것”이라고 못박았다.
그러면서 “시황제가 봉선제를 거행한 뒤 12년 만에 진나라가 망했다”고 했다.(<사기> ‘봉선서’) 지존인 황제가 비를 흠뻑 맞아 허둥대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얼마나 큰 낭패였을까. 사마천은 시황제의 태산 등정 때 비바람이 분 것을 분서갱유에다 포학정치로 민심을 잃은 황제에게 망국의 조짐을 보여준 것이라 해석한 것이다.
그러고보면 ‘우중등태산’의 최근 속설은 중국인 특유의 덕담으로 해석하면 좋을 것 같다.
비를 흠뻑 맞으면서 등정한 인사에게 ‘나쁜 조짐’ 운운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나중에 잘 되면 좋고, 안되면 그만이고….
이왕 태산 이야기를 하는 김에 근거없는 속설보다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태산의 금언을 떠올리면 어떨까. 먼저 ‘태산에 오르니 천하가 작게 보인다.(登泰山而小天下)’(<맹자> ‘진심’)는 공자왈이다. 깨달음을 얻으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위대한 역사가 사마천의 한마디도 새겨볼만 하다. 사람의 어떤 죽음은 태산처럼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처럼 가볍다.(惑重于泰山 惑輕于鴻毛)’(<한서> ‘사마천전·보임안서’)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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