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995년 헝가리와 오스트리아가 공동주최한 세계여자핸드볼 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제가 쓴 기사입니다. 한국선수들이 8전승 우승을 차지하기 위해 얼마나 혹독한 훈련을 거쳤는지를 보여주는 기사입니다. 이듬해 열린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에서 한국팀은 덴마크에 아깝게 져 은매달을 땄습니다.)
여자핸드볼이 세계최강의 전력을 갖추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피와 땀으로 얼룩진 강훈련의 연속, 사제 간의 강한 믿음이 있었기에 세계선수권대회 사상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11월 중순 태릉 선수촌 체력단련장, 임오경은 악에 바쳤다. 45도로 기울어진 ‘시트업’에 거꾸로 누워 윗몸 일으키기를 해야 했다. 하지만 남자의 억센 두손이 위에서 임의 양어깨를 부여잡았다. 정형균 감독은 “나를 밀어내고 일어나라”고 소리쳤다.
오기로 맞붙은 둘은 5분간이나 몸싸움을 했다. 더 이상 스승과 제자가 아니었다.
못 견딘 임오경은 급기야 감독의 허리를 물어 버렸다. 정감독은 그때서야 비명을 지르고 뒤로 넘어졌다.
오성옥, 역시 바르셀로나 금메달의 주역, 운동이 지겨웠던 데다 남자친구까지 생긴 그는 은퇴를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지휘봉을 잡은 스승은 그를 놔주지 않았다. 3월 대표팀의 태릉 선수촌 첫 훈련, 올림픽 직전 50Kg의 바벨을 들고 15회씩 3번을 들어 올렸던 오성옥은 겨우 30㎏을 들고 허덕거렸다. 감독의 질타가 터져 나왔다.
그 지경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오성옥은 남자선수들도 한 번 하기 어려운 점프스커트에 하루 온종일 메달려야 했다.
입에서는 단내가 풀풀 났다. 하지만 곁에서 감시하는 감독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
운동으로 단련된 남자코치들도 이들과 정면으로 부딪치면 발랑 나가떨어진다. 키가 10cm, 몸무게 10kg이상 차이나는 유럽의 거구들도 오성욱의 부딪치기 한방이면 번번이 넘어진다.
김랑은 한체대 출신만 편애한다는 비아냥을 들어가면서까지 뽑은 신인 포스트다.…그는 상대선수들의 목찌르기 반칙으로 시뻘건 손톱자국을 수없이 지니면서도 몸싸움을 벌였다.
수문장 문향자. 하루에 300개씩 윤태일 코치가 던지는 슛을 막아야 했다. 너무 지쳐 무의식으로 뻗은 두 손과 다리가 마비됐다. 어떻게 팔을 휘둘렀지도 모를 정도였다.
훈련이 끝나면 선수와 코치는 탈진상태가 됐다. 강철어깨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운동으로 단련된 남자 코치들도 이들과 정면으로 부딪치면 발랑 나가 떨어진다.
키가 10㎝, 몸무게 10㎏ 이상 차이 나는 유럽의 거구들도 오성옥의 부딪치기 한방이면 번번이 넘어진다. 선수들은 고통의 순간은 물론 길지만 보람이라는 과일은 달고 상큼하다는 걸 잘 안다.
이들은 또 8개월간 고난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올림픽 3연패의 과실을 따기 위해 다시 뛰어야 한다.|비너노이슈타트(오스트리아)/이기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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