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나무의 어여쁨이여! 활짝 핀 그 꽃이로다.(桃之夭夭 灼灼其華)”(<시경(詩經)>)
 연산군이 인용한 <시경>의 한 구절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워낙 황음무도한 연산군이다 보니 채홍사가 간택한 여인을 희롱하는 싯구라 여길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틀렸습니다.
 연산군은 선남선녀들이 복사꽃처럼 화려할 때 시집·장가를 들어야 한다는 의미로 이 싯구를 인용했습니다.
 희대의 폭군이라는 연산군이 그랬는데 다른 임금들은 오죽했겠습니까. 옛 임금들은 노처녀·노총각의 결혼을 국가정책으로 삼았습니다.

혹자는 “혼인을 제 때 하는 것이 왕정의 급선무”라고까지 말했답니다. 시쳇말로 한다면 국가가 나서서 ‘솔로대첩’을 마련했다는 얘기입니다.
 심지어 가난한 남녀가 혼인을 치르지 못할 때는 일가친척이 나서 혼숫감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을 국법으로 정하기까지 했습니다.
 어느 임금은 서울은 한성부가. 지방은 감사들이 나서 결혼대책에 만전을 기하라는 특명을 내렸습니다. 제대로 된 대책이 없으면 처벌하겠다는 으름장을 놓기까지 했습니다.
 홀로 된 홀아비와 과부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홀아비와 과부, 즉 ‘환과’는 국가가 보살펴야 할 가장 불쌍한 사람들로 꼽혔답니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역대 임금들은 왜 이와같은 ‘솔로대책’에 목숨을 걸었을까요.
 또 하나 궁금한 게 있습니다. 그 시절, 노총각·노처녀의 기준은 어땠을까요. 몇 살이 되어야 노총각 노처녀의 반열에 들었을까요. 또 처녀 총각이라는 말은 과연 어떤 뜻이었을까요.
 얼마 후 2년 전 이맘 때에 이어 2번째로 이른바 ‘솔로대첩’이 열린다고 합니다.
 추운 겨울 옆구리가 시린 싱글들에게는 의미심장한 모임일 수도 있겠지요. 그나저나 2년 전처럼 여러가지 문제가 제기되어 행사가 속빈강정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애처롭기는 합니다. 심지어 옛 왕조시대에도 국가차원의 ‘솔로대첩’ 아니 ‘솔로대책’이 마련됐는데 말입니다.
 지금은 온갖 푸대접을 받아가며 민간차원에서 진행되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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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속 솔로대첩, 솔로대책

 경향신문 사회에디터

Posted by 이기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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